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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와 친해지는 비결 ‘여행’] 42일간 유럽 다녀온 고형욱·창빈 부자

중앙일보 2012.02.15 03:20 Week& 5면 지면보기
문화평론가 고형욱(45)씨는 지난해 여름 중3 아들을 데리고 42일간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계획을 알리자 주변에는 “미쳤냐”며 말리는 이들뿐이었다. 아들 고창빈(서울 광남고 1)군이 고교 입학을 앞둔 상황이라 “뒤처지지 않으려면 선행학습에 신경 쓸 때”라는 지적이었다. 고씨의 결단은 단호했다. “열심히 하는 아이라면 여행지에 가서도 할 건 하겠죠. 여행 간다고 공부에 손 놓을 녀석이라면 집에 있다고 공부할 리 없죠.”


“몰라” “아무거나” 하던 아이…20일 지나자 새벽까지 수다

고씨가 아들과 긴 여행을 결심한 이유는 ‘소통’ 때문이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붙여보려고 이것저것 물어도 돌아오는 말이라곤 “몰라” “글쎄” “아무거나” 같은 심드렁한 단답형 대꾸뿐이었다. 고씨는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시기가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유럽 여행은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던 셈이지요(웃음).”



 

아들에게 일정 선택권 주고 도우미 역할



여행을 떠나기 전 원칙부터 세웠다. 아빠가 묻는 말에 "아무거나” “아빠 하고 싶은 대로”라고 답하는 건 금기어로 정했다. 영화·그림·와인 등 유럽 문화에 해박한 고씨는 유럽 여행 내내 아들의 전담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비싼 미술관에 데려가 유명한 명화를 보여주고 구구절절 배경 설명을 해줘도 아들은 뚱한 표정으로 ‘그래?’라고 한마디밖에 안 하는 거예요. 그때마다 속에서 불덩어리가 올라왔어요.”



여행 코스도 아들이 선택하게 했다. 첫 방문지인 스페인 마드리드에 6일간 머물면서 아들이 유럽 도시에 적응할 시간도 줬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도 아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고씨의 노력에도 아들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아들은 “아빠와 단 둘이 가본 여행이 처음이라 난감했다”고 털어놨다. “여행 가기 전까지 서로 거의 말을 안 했으니까요. 여행 가서도 며칠 동안은 아무 얘기도 안 했어요.”



열흘쯤 지나자 아들이 먼저 아빠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다리 아프다” “배고프다” “쉬었다 가자”로 시작해 한두 마디씩 대화가 늘어갔다. 고전주의 화가의 작품 앞에서 열변을 토하며 설명해 주는 아빠에게 아들은 “난 추상화가 좋아”라며 딴죽을 걸기도 했다. 고씨는 “화가 나기는커녕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시큰둥하던 아이가 자기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기뻤다.



여행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날 늦잠을 자기 일쑤였다. 아빠는 아들의 진로 문제와 친구관계에 대한 소소한 걱정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고, 아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인생 계획들에 대해 얘기했다. 고씨는 “여행 목적이 아들과 대화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여행지를 제대로 못 보는 건 아무 문제가 안 됐다”고 말했다.



조급한 마음 버리고 아이에게 시간 쏟아야



유럽 여행을 마친 뒤, 두 번의 여행을 더 다녀왔다. 같은 해 겨울방학에 제주도에서 2주, 지난 겨울방학 때 대만에서 3주를 함께 보냈다. 이제 아들은 “지금은 아빠와 대화가 잘 통한다”고 말한다.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뒤엔 어느 때보다 공부에 집중해 고1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2등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씨는 “자식을 키우는 일에 ‘드라마틱한 반전’ 같은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화가 늘고 관계가 돈독해졌지만 부모의 욕심만큼 아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그래도 그는 아들과의 여행을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로 꼽는다. 대화를 가로막던 장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와 소통하려면 부모가 쏟아부어야 할 ‘절대 시간’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아들과 여행을 간 건 그동안 아들에게 무심했던 시간을 한꺼번에 만회하기 위해 택한 저만의 방법인 거죠.”



고씨는 사춘기 자녀와 가까워지려는 부모들에게 “조급함·거짓말·위선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소홀하다 사춘기 자녀와 멀어졌다면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아이를 위한 시간부터 내야 한다는 것이다. “주말에 잠깐 대화하겠다며 아이에게 훈계만 늘어놓곤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아이가 알아주겠지’라고 착각하면 소원해진 관계를 극복할 수 없어요.”



아들에게 진심을 보여주려고 고씨가 한 노력은 여행뿐이 아니다. 고씨는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즉시 휴대전화를 없앴다. 일이나 대외적인 약속을 핑계로 아들을 우선순위에서 제쳐두는 일은 없을 거란 각오의 표현이다.



주변의 시선도 달라졌다. 여행을 떠나기 전엔 “미쳤냐”고 말렸던 이들이 지금은 “부럽다”고 조언을 구한다. 고씨는 “꼭 멀리 여행을 다녀오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가까운 공원이든 미술관이든 아이와 함께할 장소를 정했다면 꼭 사전 답사를 다녀와야 해요. 아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부모가 배려하고 이끌어줘야 하기 때문이죠.”



고씨가 대만 여행 중에 아들에게 가장 자주 한 말은 "늦은 건 아무 것도 없다”였다. 아들에게 한 말이지만, 자신에게 건넨 위로이기도 하다. "저도 아들이 중3이 돼서야 부자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으니 많이 늦었죠. 그만큼 더 노력하고 애쓰고 있고요.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간 제대로 통하는 날이 오겠죠.”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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