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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인 누나와 경찰 간부 父 청탁 얘기를…"

중앙일보 2012.02.15 00:39 종합 27면 지면보기
예전 한국사회의 부패고리를 풍자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전직 세무공무원 최익현(오른쪽·최민식)은 먼 친척인 조폭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잡고 금품 로비와 인맥을 동원해 카지노 등 이권사업을 따낸다. 익현은 형배와 다른 조폭 보스 김판호(조진웅) 사이를 오가며 자기이익을 챙긴다.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화제다. 1980~90년대 조폭과 권력 사이에서 거간꾼 역할을 하던 한 남자(영화 속 표현으로 ‘반달’, 조폭과 일반인의 중간이라는 뜻)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에 비친 검찰의 부정적 이미지도 도마에 올랐다. ‘부러진 화살’에서 판사가 지탄의 대상이 됐다면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흉포한 검사가 이슈가 됐다. 영화에서 검사들은 피의자를 폭행하는가 하면, 뇌물을 받고 수사를 무마해준다. <중앙일보 9일자 22면>

관객 300만 돌파 눈앞 ‘범죄와의 전쟁’ 윤종빈 감독
“얘기 나누고 싶다” 검찰 전화 받고 영화 흥행 실감했다





개연성 높은 스토리, 활달한 액션, 사회적 논란 덕분에 흥행도 순조롭다. 14일, 개봉 13일 만에 관객 270만 명을 돌파했다. 이번 주말 300만 명을 넘길 전망이다.



 감독은 30대 초반의 윤종빈(33). 각각 군대와 호스트바를 배경으로 한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보이즈’ 등 문제작을 만들었지만 흥행감독은 아니었다. 그는 “며칠 전 대검찰청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영화의 흥행을 실감했다”고 했다. 검찰 측은 “외부에서 보는 검사의 모습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감독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만남을 거절했다고 한다.



 영화는 감독의 말대로 100% 허구다. 하지만 감독은 “경찰 간부였던 아버지를 지켜봤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영화 곳곳에 녹아있다”고 했다. 윤 감독을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 최근 그의 영화 세편에는 모두 하정우가 출연했다. 한 살 위인 하정우는 술친구이자 ‘영화적 동지’다. [변선구 기자]
 - 대사 ‘살아있네’가 유행어가 될 조짐이다.



 “부산에서 고교 친구들끼리 쓰던 말이다. 맛있는 오뎅을 먹어도, 예쁜 여자가 지나가도 ‘살아있네’ 했다. 건달들끼리 쓰는 은어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에서 ‘반달’ 최익현(최민식)이 조폭 보스 최형배(하정우)가 쓰던 그 말을 따라 하는데, 이는 익현이 조폭세계에 동화됐다는 뜻이다.”



 -검찰이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도가니’ ‘부러진 화살’ 같이 사회고발성 영화는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이기적 가족주의를 비판하고 싶었다. 출세를 위해 혈연·학연·지연 등 뭐든 엮어대는 병폐 말이다. 누굴 만나든 촌수부터 따지는 최익현은 그런 ‘꼰대’의 전형이다.”



 -‘민나 도로보(みんな泥棒, 모두 도둑놈들이라는 뜻, 83년 MBC드라마 ‘거부실록’의 한 대사)’가 주제 아닌가.



 “그렇다. 서민 등쳐먹는 조폭이나, 정치적 이유로 조폭 때려잡는 권력이나, 거기에 기생하며 떡고물 챙기는 관리들이나 모두 도둑들이다.”



 -아버지가 80년대 경찰간부 아니었나.



 “아버지의 월급만으로 우리 가족이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그런 얘기를 판사인 누나와 자주 했다. 아버지 덕분에 근사한 콘도에서 휴가를 보냈고, 아버지 주변 사람으로부터 용돈도 받았다. 청탁전화도 수시로 걸려왔다. 경찰간부가 이 정도인데 검찰, 정치권은 오죽했겠나. 정도의 차이일 뿐 먹고 살기 위해, 가족 부양을 위해 우리의 아버지들이 모두 그랬을 거다. 그 고리를 우리 세대에서 끊어야 한다.”



 -하필 왜 지금 그런 얘기를 던졌나.



 “돈에 미쳐 돌아가는, 시대역행적인 사회가 싫었다. 그래서 아버지 세대를 돌아보고 싶었다. 군대(공수부대) 다녀와서 군대라는 폐쇄된 사회(‘용서받지 못한 자’)가, 강남 살면서 황금만능주의(‘비스티보이즈’)가 내 의식을 지배했듯 지금은 시대역행이라는 화두에 몰입돼 있다.”



 -최익현의 권총에는 총알이 없는데.



 “불완전한 권력인 최익현 본인을 상징한다. 그는 아들을 검사로 만들면서 비로소 권총에 실탄을 채운다. 영화를 2012년 현재로 끌고 온 것은 그렇게 살아온 이들이 기득권이 돼 있고, 그들의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님’이라는 속삭임에 얼굴에 검버섯 핀 최익현이 돌아보는 엔딩신은 ‘그래서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물음표를 남긴다. 관객에게는 ‘이 양반이 당신의 아버지다. 당신도 그렇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범죄와의 전쟁=1990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발표한 특별선언. 조폭 사건 등 강력범죄를 소탕해 민생치안을 확립한다는 취지였다. 2년 만에 강력범죄가 5.9% 감소했지만, 실적 위주의 강압적인 수사와 검거가 이뤄졌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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