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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와 사랑에 빠진 '소피아 부인'의 정체

중앙일보 2012.02.15 00:27 경제 1면 지면보기
한국 증시가 이번엔 ‘소피아 부인’과 사랑에 빠졌다. ‘소피아 부인’은 유럽 캐리 트레이드(이하 유로 캐리) 자금을 말하는 증권가 용어다.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고, 약세를 보이고 있는 통화를 빌려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2000년대 중반엔 와타나베 부인(엔 캐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스미스 부인(달러 캐리)의 한국 증시 사랑이 각별했다. 여기에 ‘왕씨 부인’으로 불리는 차이나 머니(중국계 자금) 등 바깥 나라 ‘부인’들이 우리 증시를 기웃거리다 보니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소피아 부인, 한국 증시에 빠지다
올해만 4조7000억 투자

 최근 소피아 부인의 기세는 엄청나다. 국내 주식을 쓸어 담고 있다. 덕분에 우리 증시는 6개월 만에 2000선을 회복했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국내 증시에 들어온 유럽계 자금은 4조7000억원(13일 현재), 전체 외국인 투자자 8조8000억원의 절반을 넘는다. 1998년 증시 개방 후 한국 증시를 좌지우지해 온 미국계(2조4000억원)보다 배 가까이 많다.



대우증권 김학균 투자전략팀장은 “과거 와타나베 부인, 스미스 부인처럼 우리 증시 수급에 활기를 넣어주며 증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며 “유럽계 자금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로 캐리의 유입은 지난해 12월 유럽중앙은행(ECB)의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ECB는 4830억 유로(713조원)를 1%대의 저금리로 은행에 3년간 빌려줬다. 유럽 재정위기를 타개하고,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조치다. ‘돈줄’을 확보한 유럽 은행들은 이를 금리가 높고, 통화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신흥국에 넣었고, 이 가운데 일부가 우리나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소피아 부인’의 투자 성적표는 괜찮다. 주요 투자처인 신흥국 증시가 올해 가파르게 상승한 덕분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ECB가 기준금리를 내린 뒤 유로화를 빌려 신흥국에 투자한 유로 캐리는 1월 말까지 약 8%의 수익을 거뒀다. 달러 캐리는 1% 수익을 내는 데 그쳤고, 엔 캐리는 0.3%의 손실을 봤다.



 그렇다면 소피아 부인은 얼마나 오래 우리 증시에 머무를까. 하나대투증권 양경식 투자전략부 이사는 “G3인 일본(0.1%)·미국(0.25%)·유럽(1.0%)이 전례 없는 초저금리를 이어가고 있다”며 “브라질·인도·헝가리 등 신흥국과의 금리차가 많게는 10%포인트 이상 나 금리차가 좁혀질 때까지는 신흥시장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이달 말 ECB가 3000억~6000억 유로의 추가 LTRO를 재개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투자증권 유익선 연구원은 “오는 3월 ECB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도 있는 만큼, 유로 캐리가 크게 확대되지는 못하더라도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부각되면 급격히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 특히 최근 유입된 유럽계 자금의 약 3분의 1은 영국계라는 점에서 단기 자금 성격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외국인은 지난해 우리 증시에서 9조 5000억원을 순매도했는데, 이 가운데 영국계가 6조원을 차지했다.



  한국투자증권 박중제 연구원은 “유럽이 재정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달러·엔 캐리처럼 장기투자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유로화 가치의 방향성에서 해답을 찾으려 한다. 유로 캐리도 자금을 회수하려면 다시 유로화로 환전해야 한다. 현재 값이 싼 유로화가 회수 시점에 비싸진다면 ‘소피아 부인’이 손에 쥐는 수익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유로화 약세가 이어지면 유로 캐리가 계속되지만, 반대로 강세로 반전할 경우 환차손 우려 때문에 자금을 회수한다는 얘기다.



장기대출 프로그램 (LTRO·Long Term Refinancing Operation)



유럽중앙은행(ECB)이 1%대의 저금리로 유럽 은행에 3년간 돈을 빌려 주는 제도다. 처음에는 1년짜리 대출로 시작했으나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지난해 12월 만기를 3년으로 늘렸다. LTRO 시행 이후 고공비행을 하던 이탈리아 국채 금리가 6% 아래로 하락하는 등 유럽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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