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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그리스에서 배운다

중앙일보 2012.02.15 00:01 종합 33면 지면보기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
그리스 의회가 13일 자정을 넘기는 격론 끝에 유로존이 요구한 긴축안을 찬성 199, 반대 74로 통과시켰다. 연내 33억 유로(GDP의 1.5%)의 추가 재정 삭감을 골자로 3억 유로의 연금 삭감 및 최저임금 22% 삭감, 공공부문 근로자 1만5000명 감원이 포함되어 있다. 긴축안 통과는 예상한 대로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불러 도심 방화사태가 벌어졌다.



 어쨌든 이걸로 그리스는 3월 20일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145억 유로)를 상환할 수 있어 디폴트라는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리스 사태는 해결될 것인가. 답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왜 그리스 사태는 해결이 이리 어려운가.



 그리스는 민간 채권단과의 협상을 통해 민간이 보유한 국채의 70%를 탕감 받고, 이자율도 대폭 낮춘 30년 국채로 전환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그리스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시각이 점차 우세해지고 있다. 급기야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민간이 아닌 공공부문,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이 보유한 550억 유로 규모의 그리스 국채에 대한 탕감을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ECB 및 독일 정부는 이를 즉각 거부했다. 전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속내용은 간단치 않다. 만일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다른 가난한 EU 국가들(PIIGS)이 모두 부채 탕감을 요구할 게 뻔하다. 사실상 지난주 초에 이미 아일랜드는 만일 ECB가 그리스 국채에 대한 탕감 조치를 취한다면 자신들도 동일한 조치를 받기를 기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2011년 ECB는 유로채권시장에서 아무도 그리스 국채를 사주려 하지 않자 자신들이 직접 시장에서 그리스 국채를 계속 사주는 마지막 보루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이때 사들인 국채에 대한 탕감은 거부하고 있어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리스를 구해준 ECB가 그리스 사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ECB가 자신들이 보유한 국채에 대한 탕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ECB는 그리스 국채를 시장에서 매우 할인된 가격에 매입했는데, 이를 액면가로 상환 받게 되는 셈이다. 그럴 경우 그리스 경제로부터 자신들이 지원한 금액보다 훨씬 많은 돈을 뽑아가는, 즉 그리스 입장에서는 통화량이 줄어드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이러한 통화량 감소는 가뜩이나 가라앉고 있는 그리스 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 뻔하다. 즉 ECB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



 이제 공은 그리스 국민 손으로 넘어갔다. 추가 긴축안을 놓고 국회를 통과시키느니 마니 싸우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이미 해외로 도피시켜 예치해 두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유로존 가입 이전의 복지 수준으로 회귀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들이 지속되는 한 그리스의 디폴트 문제는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점화되어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EU 집행부와 금융시장도 어느 정도는 그리스 디폴트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희생 없이는 외부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진정한 해결책은 그리스 경제 주체들의 책임 있는 고통 분담 외에는 찾을 수 없다.



 그리스 사태는 우리에게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올해 선거를 앞두고 여야 가릴 것 없이 선심성 복지예산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그 결과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재정 지출은 늘리기는 쉬우나 일단 늘린 걸 줄이기는 몹시 어렵다. 그리스 사람들의 극렬한 시위가 그 증거다. 집권에 급급해 국익을 해치는 정치인들을 멀리해야 한다.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며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하태형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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