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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38) 외환은행 <2> 홍세표 눈물의 이임식

중앙일보 2012.02.14 00:30 경제 2면 지면보기
1999년 2월 홍세표 당시 외환은행장(왼쪽)은 아쉬움 속에 은행을 떠났다. 위기 속에서 외자 유치의 공을 세웠지만 은행 부실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됐다. 사진은 98년 12월 LG반도체에 대한 금융 제재를 결의하는 채권단 회의 모습. [중앙포토]


1999년 2월 11일 홍세표 외환은행장은 이임식에서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다시는 환란이 없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당부했다던가. 신문을 읽으며 착잡했다.

남겠다는 홍세표 행장에게 … “안 됩니다” 잘라 말했다



 그는 끝까지 은행에 남고 싶어 했다. 얼마 전 “행장이 안 되면 이사회 의장을 맡게 해달라”고 내게 말했다. “안 됩니다.” 나는 말을 잘랐다. 이사회 의장이라니. 이사회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시장에 “경영진을 교체했다”는 명분을 내걸 수 없게 된다.



 “원칙은 원칙입니다. 한국은행이 돈을 넣어준다 해도 크게 보면 나랏돈입니다. 명분 없이 투입할 수 없습니다.”



 내 목소리가 싸늘하게 들렸을 것이다. 너무 냉정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옆집 사는 사이였다. 매봉산 자락의 작은 빌라였다. 집사람들끼리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끼어들 여유가 없었다. 살벌한 시절이었다. 그 역시 이런 인연에 기대려는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코메르츠은행에서 추가 출자를 받으려면 내가 은행에 있어야 해요. 이사회 의장만 맡고, 자잘한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씀은 더 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없습니다. 조흥은행 위성복 행장도 물러났습니다.”



 “정히 그렇다면…. 새 행장은 내부 사람을 앉혀 주세요. 코메르츠와 대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요.”



 “그건 약속 못 드립니다. 외부에서 영입하는 게 모양새가 좋습니다.”



 “…더 생각해 보십시다.”



 98년 12월 금융감독위원장실에서의 대화는 이렇게 결론 없이 끝났다. “코메르츠 투자를 유치했다”며 힘차게 내 방문을 열어젖힌 게 5월, 7개월 만에 찾아온 홍 행장은 할 말을 잃은 채 방을 나갔다.



 진퇴양난(進退兩難). 외환은행을 바라보는 정부의 심정이 그랬다. 코메르츠만 아니었다면 모든 게 간단했을 것이었다. 한국 경제가 그렇게 어려울 때 도와준 의리의 자본, 그래서 “감자(減資·자본금을 줄임)는 없다”는 조건으로 들여온 외국 자본. 단비처럼 반갑던 그 돈이 되레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외환은행은 밑 빠진 독 같았다. 코메르츠가 투자한 3500억원으로는 부실을 메울 엄두도 못 냈다.



 공적 자금을 넣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합병이나 감자 같은 노력이 있어야 국민세금을 쓸 명분이 생길 때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약도 그랬다. 결국 코메르츠가 “추가 출자를 하겠다”고 나섰다. 조건이 있었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한국은행이 함께 출자를 하라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거절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 하나를 돕겠다고 발권력을 동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재정경제부가 설득했지만 요지부동. 그때 정부가 묘수라고 짜낸 방법이 ‘우회 출자’였다. 한국은행이 수출입은행에 출자하고, 수출입은행이 외환은행에 출자하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사실상 정부 지원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했다. 다른 은행들과의 형평도 맞춰야 했다. 그래서 경영진 교체 카드를 꺼낸 것이다.



 99년 2월 홍 행장은 사람을 보내 의견을 전해 왔다.



 “깨끗하게 물러나리다. 대신 후임엔 이갑현 상무를 앉혀주셨으면 합니다.”



 이갑현.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주변에서 “깨끗한 사람”이라는 평이 들렸다. ‘하지만 외부 사람을 앉혀야 명분이 생기는데….’ 이런 갈등을 없애준 것은 최장집 당시 고려대 교수다. 젊어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가깝다고는 할 수 없다. 경외감이랄까. 어려우면서도 존경하는 마음이 드는 이였다. 그가 전화로 이갑현의 이름을 꺼냈다. “고등학교 동기인데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절대 이런 말 할 사람이 아닌데….’ 그 전화에 내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 홍세표 행장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그를 밀고 있기도 했다. 2월 말 그렇게 이갑현 외환은행장이 취임했다. 한국은행 출자 논의도 마무리된 시점이었다. ‘이제 외환은행이 자리를 잡는가.’ 이 행장의 취임 소식을 들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외환은행이 그때부터 더 먼 길을 돌고 돌게 될 줄은 몰랐다.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든다. 홍세표 전 행장이 계속 외환은행을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라면 더 좋은 해법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그 위기 속에서 기적처럼 외자를 유치해 온 수완을 발휘해서 말이다. 그가 떠난 외환은행은 다시는 기적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구조조정을 미룬 데다 대우와 현대 그룹이 휘청이면서 완전히 주저앉았다. 행장들은 임기를 못 채우고 줄줄이 물러났다. 도리 없이 외국 자본에 매각했지만 먹튀 논란에 휩싸인다. 매각을 담당했던 공무원까지 험한 꼴을 당했다. 모두 내가 정부를 떠난 뒤에 벌어진 일들이다. 이 안타까운 일들을 속수무책 지켜만 봤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끼우는 것. 최근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다시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이것이 긴 이야기의 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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