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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구의 서울 진(眞) 풍경 ③ 종로구 광장시장

중앙일보 2012.02.14 00:27 종합 26면 지면보기
광장시장은 서울시민의 활기찬 일상을 상징한다. 먹고, 입고, 자고, 지난 한세기 한국인의 얼굴과도 같다. 시장 먹거리 장터 한가운데 좌판의자 위에 올라가 찍은 파노라마 사진이다. 주변 건물의 가게들도 거의 식당으로 바뀌었다.


도시는 동네와 시장이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포도송이 같은 동네들과 활기찬 시장을 빼고 서울을 말하기는 어렵다. 누군가 몇 시간 밖에 서울 구경할 시간이 없다면 나는 그 사람을 데리고 광장시장에 가겠다. 마약김밥과 육회, 빈대떡과 막걸리가 빠지지 않겠지만, 5,000여 개의 가게로 넘쳐나는 시장 속을 누비는 것은 참으로 진기한 경험이 될 것이다.

100년 역사 광장시장, 6개 길 만나는 ‘로터리’ 숨어있다



 서울 광장시장엔 얼굴이 없다. 그냥 몸 속이다. 길에서 들어서는 순간 왁자지껄 사람과 물건들이 가득하다.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되는 건 기본이고, 어느 한 모퉁일 돌거나, 문 하나만 지나도 금방 다른 물건과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투명하게 덮인 하늘에선 빛과 그림자가 쏟아지고, 아래에는 가게간판과 매달린 전구들이 눈부시다. 2층에 올라 헤매다 보면, 어느새 종로가 청계천이 되고, 낮은 밤이 되고 만다.



 광장시장은 종로 4가와 5가, 청계천과 종로 사이의 블록 안에 들어 있지만, 모태가 된 배오개(이현)시장은 종로 한복판에 있었다. 지금 종로 4, 5, 6가의 넓은 길이 그대로 장터가 된 것으로, 차가 없던 시대에 종로 큰 길로 사람이 모여들고 장이 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대한제국기 전차가 등장하면서 커다란 변화가 밀려온다. 도로를 정비하고 전차선로가 건설되면서, 배오개시장 상인들은 장사할 다른 곳을 찾아야 했다.



 1905년 회사를 설립하고 계획대로 라면 광장시장은 지금쯤 청계천 위에 지어진 특이한 한옥상가로 남았을지 모른다. 개천을 복개하고 1층은 상가, 2층은 집으로 쓰는 주상복합의 한옥(架橋建屋)을 짓고, 위치도 종각 아래 광교와 장교 일대로 잡았다. 하지만 일본자본이 들어온 남대문 시장의 견제와 때마침 일어난 큰 홍수로 계획은 취소되고, ‘광장’이란 이름만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처음 대지 9,400㎡(약 2800평)에 한옥 245칸, 함석집 53칸, 188개 점포로 시작하여, 지금은 전체 블록 4만1300㎡(약 1만2500평)에, 5000여 점포가 동서 330m, 남북 160m에 들어선 ‘거대하고 입체적인 시장’이 되었다. 직물, 의류, 한복, 구제품, 수의, 혼수, 침구에 야채와 생선 같은 농축산물과 반찬, 먹거리가 있으며, 지하의 의류부자재나, 3층 위로 자리한 맞춤이나 가공, 수선가게와 창고들이 가게들과 긴밀히 연계돼 있다.



 그래도 간단히 보자면, 광장시장은 크게 광장시장 주식회사에 속한 가게들과, 속하지 않은 다른 상가와 노점들로 구분된다. 특이한 것은 광장시장 주식회사와 다른 상가들이 서로 다리를 놓아 2층에서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상만큼이나 커다란 시장이 입체적으로 펼쳐져 있는 셈이다.



 한편 블록 내에는 은행지점 7개와 새마을 금고 3개가 고래에 붙어 있는 빨판상어처럼 시장 안팎에 자리한다. 엄청난 물량과 사람이 오가는 광장시장의 에너지가 그대로 현금의 흐름이 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광장시장의 중심을 이루는 건축물은 1957~59년 사이에 차례로 지어졌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서울영상민속지 구술로 보는 상인이야기’외 다른 자료를 종합해 보면, 당시 폭력조직을 이끌고 상인연합회 회장 자리를 거머쥔 이정재의 주도로 일본인 설계자를 데려와 지었다. 하나를 짓고 분양을 한 후, 그 돈을 받아 다음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완성 되었을 때 광장시장은 일대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건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속에 ‘와, 이런 데가 다 있네!’ 할 정도로 밝고 높은 공간이 있다. 동서로 4개, 남북으로 2개, 모두 6개의 길이 통하는 원형의 공간이다. 건축에서는 ‘로톤다(rotonda)’라고 하지만, 시장 사람들은 ‘과일 로터리’라고 부른다. 싱싱한 과일이 자동차처럼 빙빙 원을 그리며 도는 장면이 떠오르는 흥미로운 이름이다. 로톤다가 아직도 어려운 분들은 로마의 판테온이나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을 떠올리면 좋을 듯하다.



 안에 들어서면, 두 계단이 마주보며 둥근 벽을 따라 올라가고, 벽에는 ‘100년 전통 광장한옥부’ 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그 아래로 고급과일과 폐백, 이바지 음식과 침구, 수의, 한복을 파는 가게들이 펼쳐져 있다.



위대한 건축물과 비교할 수는 없어도, 소박한 건축공간과 우리의 삶이 어우러진 묘하고 역동적인 도시의 풍경이다. ‘광장시장 로톤다’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몸 속 깊이 들어있는 심장처럼, 광장시장의 중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인의 지난 한세기와 동고동락 해오면서….



조정구



◆조정구(46)=건축가. 2000년 구가도시건축 설립. ‘우리 삶과 가까운 일상의 건축’을 화두로 삼고 있다. 대표작으로 서울 가회동 ‘선음재’, 경주 한옥호텔 ‘라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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