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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늑대개 …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중앙일보 2012.02.13 00:31 종합 27면 지면보기
몸 길이 1.6m, 길고 뾰족한 얼굴, 커다란 귀, 길고 무성한 잿빛의 털, 직선으로 곧게 뻗은 꼬리…. 연쇄살인범 ‘질풍’의 인상착의다. 질풍은 늑대의 피를 이어받은 늑대개. 늑대개는 키우는 데 보통 개보다 두세 배의 애정이 필요하지만, 일단 마음을 열면 주인 외에는 절대 따르지 않는다. 가족을 소중히 하는 늑대의 피가 섞여서다.


16일 개봉 영화 ‘하울링’ 유하 감독

유하 감독은 “형사 은영 역을 맡은 이나영은 동물과 친화적인 눈빛이 있다. 늑대개 질풍과 교감하는 장면에서 그 눈빛이 몽환적으로 표현됐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 ‘하울링’(16일 개봉)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나쁜 인간들을 응징해가는 질풍의 이야기다. 말 못하는 질풍의 사연을 대신 얘기해주고, 교감하는 인물이 신참 여형사 은영(이나영)이다. 남자 형사들에게 차별당하는 은영은 살인도구로 길러진 질풍을 쫓으며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에서 폭력의 문제를 다뤄온 유하(49). 그는 “몇 년 전 노나미 아사의 원작소설 『얼어붙은 송곳니』를 읽고서 늑대개의 고독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시인으로도 유명한 그를 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왜 늑대개에 ‘꽃힌’ 건가.



 “늑대개는 인격체로 대해줘야 마음을 연다는 부분에서 울림이 느껴졌다. 질풍의 주인 강명호(조영진)가 가족으로 대해줬기 때문에 질풍은 가족보다 더 충실한 ‘보은’을 한다.”



 -질풍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괴물 아닌가.



 “강명호는 복수를 위해 가족 같은 개를 살생에 내몬다. 개만도 못한 건 질풍이 물어 죽이는 악인(惡人)들이나 주인이나 마찬가지다.”



 -가족주의를 비판했다고 했는데.



 “질풍에 투영된 인간의 사악한 욕망은 가족을 위해서라면 남을 해쳐도 된다는 이기적 가족주의와 맞물려 있다.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를 넘어서는 마음의 교감이 필요하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늑대개가 그걸 상징한다.”



 -질풍은 왜 고독한가.



 “강명호는 병원에 갇힌 신세가 되고서도 질풍이 스스로 살인을 하도록 놔둔다. 질풍을 가족처럼 아꼈다면 질풍이 생포되도록 경찰에 협조했어야 했다. 질풍은 버림받았다는 것도 모른 채 마지막 범행대상을 찾아 도시를 헤맨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한다.



 “그래서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말을 하지 않나.”



질풍을 연기한 ‘시라소니’는 진짜 늑대개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도 나왔다.
 -인간의 이기심을 고발하는 것인가.



 “사람보다 인간적인 늑대개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를 반추해보고 싶었다.”



 -은영과 상길(송강호) 콤비가 사건 내막을 파헤쳐가는 과정이 너무 친절해 보인다.



 “스릴러 영화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에서 (질풍의 공격대상인) 범인을 초기에 내보였다. 이 영화는 인간성찰 드라마다.”



 -마지막에 강명호가 죽고, 딸 정아(남보라)가 사는 건 원작과 반대다.



 “사적인 복수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뜻에서 강명호를 죽게 했다. 정아를 살린 건 송강호의 아이디어였다. 은영과 정아, 상처받은 두 영혼이 새로운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기고 싶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강명호와 딸 정아, 질풍이 같은 밥상에서 밥 먹는 장면이다. 원작에는 없지만 가족이 어떤 건지 한 컷으로 보여준다.”



 -은영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풍을 쫓는 장면이 강렬했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권상우)를 여자로 바꾼 게 은영이다. 조직에 동화되지 못한 두 인물은 각각 쌍절곤과 오토바이로 체제 전복을 시도한다.”



 -질풍의 고독감을 보여주는 장면이 부족했다.



 “사실 엄두를 못 낸 부분도 있다. 개를 데리고 영화 찍는 게 어디 쉽나. 가만히 서 있게 하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질풍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고생시켜 미안했다. 지금껏 본 개 중에서 가장 잘 생겼다. 원래 보신탕을 안 먹지만 개가 들어간 욕은 앞으로도 안 쓸 거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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