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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 꿈 목마른 청소년들 … 멘토와 함께 희망을 연주하다

중앙일보 2012.02.07 04:00 1면 지면보기
클로버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있다. 아직은 서툰 실력이지만 연주에 임하는 자세만큼은 진지하다. [사진=조영회 기자]



풀뿌리희망재단, 클로버 청소년 오케스트라 창단

#꿈1 용성(11·가명)이는 뇌졸중으로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의 어린 나이인데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아버지마저 병석에 누워 있어 용성이는 약간의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언제나 활력이 넘치는 용성이는 또래 초등학생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씩씩한 어린이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겠다는 당찬 포부도 있고 꿈을 이룰 만한 음악적 재능도 타고 났다. 이미 수차례 입상 경력이 있는 용성이는 지난해 충남 홍성에서 열린 지역대회에서 3학년 전체 학생 중 대상을 차지하며 많은 음악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대학 교수가 진단하는 절대음감 판정에서 고등학생 정도의 절대음감을 과시해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기도 했다.



용성이는 “언제 저에게 좋은 기회가 올지 몰라 피아노·바이올린·플롯 등 악기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음악은 힘든 가정 환경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에요. 지금은 비록 모든 환경이 어렵고 힘들지만 세계적인 무대에서 공연하는 그날이 올 때까지 결코 음악을 놓지 않을 거예요” 아직 철이 들기에 어린 나이지만 용성이의 다부진 마음은 이미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도 된 듯 든든하기만 했다.



#꿈2 유진(9·가명·여)이의 가족은 셋이다. 어머니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언니. 얼마 전까지 어머니는 자활후견기관에서 틈틈이 일하며 생계를 꾸려왔지만 몸이 아픈 언니를 돌보느라 요즘에는 일을 할 수 없는 처지다. 정부 보조금만으로 3명의 식구가 생활하다 보니 어린 나이지만 유진이는 또래 친구들보다 성숙해 보인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성숙한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애잔하게 하지만 밝고 쾌활한 성격의 유진이는 엄마와 언니를 챙기는 일에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유진이가 클로버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원한 이유도 음악을 좋아하는 언니 때문이다. 무대에 선 자신의 모습을 언니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유진이는 나사렛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뮤직스쿨에서 음악과 인연을 맺었다. 음악은 장애가 있는 언니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처음에는 미술이 좋았지만 음악을 배우면서 선생님들에게 칭찬 받는 것이 좋아 음악을 더 사랑하게 됐어요. 지금은 뮤직스쿨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난타를 배우고 있는데 모두 재미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음악을 하고 싶은 건 사랑하는 언니가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무대에서 멋진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어요.” 해맑은 유진이의 미소 속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빈곤, 가족 해체, 다문화, 소년소녀 가장….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일 수 밖에 없는 어린이들에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은 그저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할 수도 있다. 꿈을 먹고 자라나야 할 어린이들이 ‘꿈은 사치’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 걸까. 지난달 31일 경제적 지원을 넘어 어린이들의 재능을 키워줄 수 있는 특별한 후원 행사가 열려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재)풀뿌리희망재단(이사장 이충근·이하 희망재단)이 시설 아동과 저소득가정 아동, 다문화가정 아동 등 39명의 단원들로 구성된 ‘클로버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것. 가족 간의 관계에 있어 깊은 상처를 경험한 아동·청소년들의 긍정적 자아 형성과 자존감 회복을 위해 꿈의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것이다.



 희망재단에 따르면 빈곤·범죄·마약·무기 등 열악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던 베네수엘라의 청소년들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기적과도 같이 새로운 삶을 개척한 ‘엘 시스테마’의 사례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희망재단은 엘 시스테마의 사례처럼 위기에 처한 취약계층 아동·청소년들에게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지원하기 위해 천안에서는 처음으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특히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교육적·사회적·문화적 격차를 해소시키고 다양한 개인들의 조화와 소통이 이뤄지는 사회통합을 실현하고 지역사회 예술가들의 나눔 동참을 통해 공동체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실제 천안시립교향악단 김성한 단무장(지휘자)을 비롯, 각 악기별 강사진이 자원봉사에 나서기로 했으며 그 외에 대학생과 생활 음악인으로 구성된 21명의 악기지도 보조교사도 이미 오케스트라와 함께하길 희망했다. 또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어린이들은 ‘왜 나만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하나’라는 비관적인 사고를 ‘나만큼 힘든 사람들도 최선을 다해 삶을 바꿔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전환하는 특별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희망재단 박성호 상임이사는 “그동안 취약계층 아이들의 보호를 위한 경제적 지원에 치중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단순한 보호를 넘어 어린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원해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됐다. 아이들이 연주하는 것은 음악이지만 앞으로 이 아이들은 음악을 통해 희망을 연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거쳐간 아이들이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단원들의 언니·누나 역할을 맡게 된 이해원 간사는 “이제 막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인데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고 설레인다.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도 가정 형편상 엄두를 내지 못했던 아이들이 이번 기회에 마음껏 꿈을 펼쳐 가길 기대한다”며 기뻐했다.



◆풀뿌리희망재단=천안의 복지 활동가 윤혜란씨가 2005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 ‘떠오르는 지도자’ 부문을 수상하고 받은 상금 5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600여 명의 시민들이 기부한 3억4000만원을 설립기금으로 2006년 8월 설립된 한국 최초의 지역사회재단이다.



글=최진섭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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