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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집어들고 인생 제2막 연 주부들

중앙일보 2012.02.07 02:53
낯설었던 촬영 장비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주부영상동아리 1기 회원들. 영상 교육을 통해 새로워진 자신들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감독·배우·작가로 1인 다역 “엄마 작품 괜찮다” 딸 찬사에 으쓱

시인 김춘수는 노래했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고. 여기 ‘아줌마’란 이름 뒤에 감춰진, 자신만의 빛깔과 향기에 걸맞은 자아 찾기에 나선 주부들이 있다. ‘고양영상미디어센터 제1기 주부영상동아리’다. 두 번째 인생의 수줍은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그들을 만나봤다.



‘ USB’가 뭔지도 모르던 아줌마 신세계 발견



 지난해 4월 개관한 고양영상미디어센터는 영화 상영은 물론, 영상미디어 교육을 실시하고 장비도 빌려주며 미디어도서관도 운영하는 공공 미디어서비스 시설이다. 지난해 8월부터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영상미디어 교육을 시작했다. 이곳 김강오 차장은 “단조로운 일상 생활에 머물기 쉬운 주부들이 새롭게 창조성을 자극 받고 창작과 표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이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USB 메모리(컴퓨터에 사용하는 이동식 저장장치)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컴맹 주부김은주(40)씨가 영상미디어 교육을 신청한 것은 두 아이를 초등학교, 중학교에 보내고 나서 문득 ‘아, 이제 나도 두 번째 인생을 살아야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씨에게 영상미디어의 세계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



 주부 김미화(39)씨에게는 멀티미디어학을 전공하는 딸이 있다. 그는 매번 딸이 잘난 척하며 영상물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이를 경이롭게 듣곤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오기 비슷한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은퇴 교사인 조은경(50)씨는 미디어에 끊임없이 노출되는 아이를 어떻게 올바로 교육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고양영상미디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주부 영상미디어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11명의 주부들은 이처럼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일상 속의 특별한 오아시스를 찾아 모여든 이들이다.



 교육은 무더위와 함께 시작됐다. 창의성을 일깨우는 12번의 ‘창의적인 예술가 되기’ 교육, 다양한 매체를 익히고 실습하는 매체교육 등이 3개월에 걸쳐서 진행됐다. 결석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수업 열기는 밖의 무더위를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강의가 끝나고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편집하며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었다. 한 달 반 동안 서로의 작품에 배우로, 스텝으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12월 17일 80여 명의 지인들 앞에서 생애 첫 작품을 선보였다. 김미화씨는 딸로부터 “엄마 작품 진짜 괜찮다”란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를 들었다. 이들의 열정이 깃든 작품은 지금도 온라인 커뮤니티(blog.naver.com/gymc1)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내친김에 단편영화제 도전하자 결의





 “저와 같은 40대 여자들은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좀처럼 없어요. 하지만 영상 작업을 하며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주부의 위치를 넘어 ‘장민지’의 영역을 확장한 것 같아요.”



 장민지(42)씨는 삶의 고비를 넘어가는 중년 여성의 모습을 ‘긴 하루’란 작품에 담아냈다. 뇌성마비장애를 앓고 있는 홍미숙(38)씨는 김미화씨와 함께 ‘바람난 미수기’란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홍씨는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니 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간 것 같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장애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Yes, I can!(예스 아이 캔)’을 감독한 최윤희(55)씨는 “카메라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보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며 “다음 작품에서는 노숙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에게 인정받은 것 또한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김봉미(46)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휴대폰 영화 촬영 과제를 받았는데,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며 “아이 앞에서 잘 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친 주부들은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라고 믿는다. ‘주부영상동아리’를 결성해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고, 공부와 작품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단편영화제에 도전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또 지역 아동센터나 이주민센터에서 미디어 교육 봉사활동을 하자는 데도 뜻을 모았다. 일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중년이 되어서 비로소 활기찬 제2의 인생을 찾은 주부영상동아리 회원들이 힘찬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주부영상동아리 2기 모집 안내



고양시와 인근에 거주하는 주부라면 남녀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총 12명을 모집한다. 홈페이지(www.gymc.or.kr)에 신청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20~29일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설명회를 열고 등록을 받을 예정이다. 참가비는 18만원이며 교육은 3월부터 시작한다.

▶ 문의=031-960-9752





<강미숙 기자 suga337@joongang.co.kr/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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