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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대권, 그 영욕의 문

중앙일보 2012.02.07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열린우리당이 소멸되던 2007년 8월 5일,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었다. 불과 4년 전, 100여 명의 추종자들이 백년정당을 맹세하던 그 자리, ‘산 자여 따르라’를 목놓아 불렀던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정통진보를 자처하며 대권을 향해 돌진하던 수하의 장수가 새 명패를 내걸자 너도나도 투항한 뒤였다. 홀로 남은 대통령이 일갈했다. ‘정치를 제대로 못 배운 불량 자제들이 바깥 친구들과 내통한 탓이다’고. 대통합민주신당은 대통령을 제명했다. 집권여당을 청와대의 엄호부대로 격하시켰던 노무현식 말정치에 대한 보복이었다. ‘환희의 맹세’를 ‘증오의 결별’로 변질시키고야 마는 한국 정치의 순환구조 속엔 화려한 승자를 비운의 지도자로 만드는 독배가 들어 있다.



 한나라당에 새 명패가 걸린 2012년 2월 3일,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다. 그런데 정말 대통령이 그곳에 있는지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드물다. 새누리가 유치원 이름인지 교회 이름인지 설전이 오고 갔을 뿐, 대통령은 자연 제명된 건지 도무지 관심이 없다. 집권 초기 한밤중에 달려가 전봇대를 뽑거나 경찰서를 불시 방문하던 그 의욕적 지도자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는 꺼졌다. 재벌 2, 3세의 외식사업을 책망하고 대기업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을 역설해도 실세들의 비리 파문에 묻혀 힘이 실리지 않는다. 이 생사가 교차되는 순간에 학교 폭력 방지 대책을 세우라는 영(令)이 모기 소리처럼 흘러나올 뿐이다. 유권자가 기대했던 정치도덕과 경제능력이 4년 만에 바닥을 드러내자 집권여당은 다시 ‘증오의 결별’을 준비 중이다. 이번에도 유력한 대권주자가 나섰다. 사상 최대의 압승을 기록한 화려한 승자를 비운의 무덤으로 보내는 작업이 진행 중인 이때,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다. 그냥 있다.



 5년마다 반복되는 ‘정치실종’ 상황은 사실상 집권세력이 자초한 것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지독한 정치실종은 민주화 이후 초유의 현상처럼 보인다. 우리당 해체 비대위가 활동할 때만에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가만있질 않았다. 한·미FTA를 선언했고, 종부세에 대못질을 했고,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2020년대 한국의 청사진도 그려놨다. 변양균 사건에 묻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청와대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내곡동 사저 문제, 측근비리, 선관위 홈페이지 공격에 아연실색한 시민들은 보수세력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접었다. 심기일전할 최소한의 입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고 궁색해졌다. 거기에, 야풍 쓰나미가 몰려오는 총선 정국에 어찌 움직여볼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청와대 인사들과 정부관료 모두 난파선에서 뛰어내릴 궁리만 하고 있는가. 새해가 한 달여 지나도록 국민의 힘을 북돋울 어떤 정치적 발언도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 비대위 한 달 동안 감동 드라마는 없었다. 광화문 광장에 모두 엎드려 실정(失政) 단죄를 읍소해도 모자랄 판에, ‘공공장소에서 흡연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불량 고교생 반성문인가? 흉흉한 민심을 외면한 오만, 서민 생계를 내팽개친 무지, 정책능력 부족, 독단적 행보가 한나라당의 대중적 이미지라는 것을 알고는 있는가.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사과는 여러 번 했으나 그 뒤 변한 게 없다는 것을 시민들은 알고 있다. 현정권은 사업정부, 수주정부였다. 4대강 사업, 원자력발전소, 자원외교, 보금자리 주택, G20 정상회의, 겨울올림픽 등 수주와 발주에 온 힘을 뺀 대신 사회발전에 꼭 필요한 단계별 조치들, 한국 사회의 고질적 현안들을 조금도 해소하지 못했다. 공정사회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CEO출신 정권이 골목상권을 거의 망가뜨리고, 건설업체를 절반이나 부도내고, 중소기업을 결딴낸 까닭을 모르겠다. 벼랑에 몰려서야 복지보따리를 풀어놓는 그 근시안적 정치동네로 젊은 세대는 결코 회귀하지 않는다. 5년 전 진보정권은 소리는 컸고 허약했다. 지금 보수정권은 할 바를 잃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정권교체가 일어나도 한국 정치의 운명적 굴레인 저 영욕(榮辱)의 순환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임을. 민주화 이후 출현한 네 차례의 정권이 피할 수 없었던 부침의 순환, 상승과 추락의 곡예, 그리고 결국 화려한 승자를 비운의 무덤으로 인도하는 저 영욕의 문이 한국 정치에 내장되어 있음을 말이다. 총선은 출중한 장수의 등극을 위한 당파적 축제이며, 대선은 그를 결국 한국 정치의 허기진 제단에 제물로 바치는 거국적 축제임을 말이다. 그 불가항력적인 순환구조에 저항하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운명이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집권 1년을 남긴 이명박 대통령, 권력 실세들이 퇴진하고 기반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1년 세월을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은, 지금 청와대에 있다. 그냥 있다. 이 영욕의 순환구조를 바꿀 가능성은 없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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