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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71명 동안거 끝낸 설악산 신흥사 가보니

중앙일보 2012.02.06 00:16 종합 31면 지면보기
지난 석 달간 설악산 신흥사에서 동안거에 들었던 스님들이 5일 해제 법회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용맹정진을 마친 스님들이 권금성 인근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신준봉 기자]


백담사 영진 스님
굳게 닫혀 있던 선방(禪房) 문이 열리면 선승들은 비로소 3개월간의 긴 잠, 화두 삼매경에서 깨어난다. 6일(음력 1월 15일)은 전국 100여 개 조계종 선원(禪院)이 치열했던 한겨울 정진을 일제히 마치는 동안거 해제일이다. 각자의 화두를 붙잡고 생사의 번뇌를 끊고자 스스로를 가파르게 몰아세웠던 스님들은 드디어 비좁은 방에서 놓여나 산문을 나선다. 공부를 점검 받기 위해 스승을 찾기도 하고, 한줌의 깨달음을 중생과 나누기 위해 거리로 나서기도 한다. 만행(萬行)의 길이다.

3평 독방서 하루 한 끼 … 2시간 눈 붙이며 화두 매달려



 불교 조계종 3교구 본사인 강원도 설악산 신흥사는 참선하기 좋은 수행공간이라는 자부심이 높은 곳이다. 1분의 오차도 없이 시간 계획에 따라 뒷바라지를 한다는 것이다.



 신흥사에는 일반 선원인 향성(香城)선원과 승려 교육기관인 4년제 기본선원이 있다. 같은 교구 소속인 미시령 너머 백담사에는 무문관(無門關)인 무금(無今)선원이 있다. 지난해 11월 향성선원에 14명, 기본선원에 46명, 무금선원에 11명 등 모두 71명의 스님이 동안거에 들었다. 전국적으로는 2000여 명이 안거에 들었다.



 선원 가운데 나오는 문이 없다고 해서 무문관이란 이름이 붙은 곳은 특히 수행 강도가 높은 것으로 악명 높다. 무금선원도 마찬가지. 백담사 유나(維那·선방의 우두머리) 영진(永眞·57) 스님이 들려준 무문관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고달파 보였다.



 우선 무문관 안에는 정해진 수행 시간이 없다. 스님들은 세 평 남짓한 독방에 각각 갇힌 채 하루 두어 시간만 눈을 붙이며 말 그대로 초인적으로 화두에 매달린다고 했다. 공양은 오전 11시 한 차례만 제공된다.



3개월간 문밖 출입은 금지된다. 덕분에 햇볕 한줌 쬘 수 없다. 공양을 들이는 공양구 말고는 모든 문이 닫혀 있다. 때문에 잘못해서 방 안으로 날아들어온 파리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 파리는 곧 죽는다고 한다. 영진 스님은 “이곳에서는 파리의 죽음도 안타깝다”고 했다. 세상을 등진 데다 분별하고 분간하는 마음까지 철저하게 몰아내려는 ‘이중의 싸움’을 하는 스님들에게 미물이나마 파리의 죽음마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무문관에서 3개월을 나고 나면 스님들은 보통 체중이 7, 8㎏ 가량 빠진다. 스님들은 건강 유지를 위해 방 안에서 절이나 요가를 한다. 반드시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거가 끝나고 나면 스님들은 대개 제대로 말을 못한다고 한다. 성대가 쇠약해진 탓이다.



 왜 이런 극한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것일까. 산중 암자에서의 이런 노력이 뭇 중생들에게 어떤 보탬이 된다는 걸까.



 영진 스님은 “풀 한 포기를 뽑으면 그 영향이 달나라까지 미친다는 말이 있다. 부처님은 2600년 전 수 많은 중생에게 진정한 행복과 인생의 의미를 제시하려는 위대한 원력(願力)을 세웠다. 이런 고행을 통해 올곧은 수행자가 하나라도 나온다면 사회의 목탁으로, 소금처럼 귀하게 쓰이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식 해제일은 6일이지만 스님들은 5일 해제 법회를 마지막으로 뿔뿔이 길을 떠났다. 신흥사 조실 무산(霧山·80) 스님은 법어(法語)에서 “해제는 해방이 아니다. 더 큰 고행이 남아 있다. 명산 대찰이나 천년 고찰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지 말고 어촌 주막의 주모, 절에서 밥 해주는 공양 보살, 서울 시청 앞 노숙자가 스승이요 팔만대장경이라는 생각으로 만행을 하라”고 당부했다.



 부처는 절이나 경전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저자 거리, 중생의 삶 안에 있다는 가르침이다. 해제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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