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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려는 복지 공약

중앙일보 2012.02.06 00:02 종합 36면 지면보기
남윤호
정치부장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은 뷔페 같다. 요즘 여야가 연일 쏟아내는 복지공약이 그런 인상을 준다. 뭔가 맛있게 먹었다는 만족감보다 맛은 둘째 치고 일단 잔뜩 먹었다는 만복감이 더 남는 그런 뷔페 말이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려 하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복지공약을 무조건 퍼주기라고 매도할 생각은 없다. ‘무슨 돈으로 감당할 테냐’ 하며 재원 문제로 시비 걸 의도도 없다. 실제 우리의 복지지출은 더 늘릴 여지가 있다. 우리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의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약 20%)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를 좀 더 높인다고 나라가 거덜나진 않는다. 물론 ‘성장은 포기하고 나눠먹기만 하자는 거냐’며 목청을 높이는 분도 있다. 그러나 천천히 가더라도 서로 나누며 가자는 사람이 더 많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게 민주주의 아닌가.



 게다가 복지도 설계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산업으로 키울 수 있다. 세계은행 등의 통계를 보면 경제와 복지는 양립 가능할 뿐만 아니라 상관관계도 지닌다. 1999~2007년 미국·일본·독일·한국 등 7개국의 사회·경제지표를 보면 복지지출과 경제적 성과는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몇 달 전 방한한 로버트 캠벨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도 “선진국에서 2002년의 복지지출 증가세가 2003년의 경기 회복을 이끌었다”고 했다.



 이처럼 복지의 양적 확대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효율과 품질이다. 이왕 돈 들일 바에야 제대로 효과를 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도 물량공세에 정신이 팔려서인지 이를 챙기는 사람이 안 보인다.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여당의 ‘맞춤형 복지’에서도 그런 문제가 훤히 드러난다. 말은 그럴듯하다. 수요자 사정에 맞춰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도와주겠다는데 누가 반대하겠나. 그런데 뭐든 맞춤형으로 하면 손이 많이 가는 법이다. 맞춤형 복지엔 대규모 인력과 행정조직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비대해진 관료조직이 먹고사는 돈 역시 복지비용의 일부다. 정교한 맞춤형 복지를 할수록 역설적으로 복지지출의 연비(燃比)는 떨어질 수 있다. 행정 실무경험자면 다 아는 내용이다.



 정치인들이 이를 모른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그들도 선거를 여러 번 치르면서 정치자금이 어떻게 새는지 다 겪었을 거다. 100을 보내 실제 50만 전달돼도 성공이라 하지 않나. 전달률이 30~40%인 경우도 다반사라 한다. 나머지는 중간에서 줄줄 샌다는 얘기다. 복지도 다르지 않다. 전달체계의 효율성을 높이지 않으면 맞춤형 복지란 이상적 슬로건에 불과하다. 맞춤형이란 표현은 아마도 현실감 떨어지는 학자가 입력시킨 듯한데, 차라리 왕년에 돈 좀 뿌려 본 정치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정부의 효율은 또 어떤가. 복지의 확대는 곧 큰 정부를 의미한다. 의도하든 않든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공공부문의 효율은 어떻게 담보할지, 철밥통 체질은 어떻게 뜯어고칠지, 민간의 자생력은 어떻게 키울지…. 꼭 해결해야 할 선결 과제가 수두룩한데도 여야의 공약에선 답을 찾기 어렵다.



복지공약의 메뉴판이 이 모양인 것은 글로벌리스트보다 로컬리스트의 목소리가 더 크기 때문 아닌가 싶다. 바깥 세상 돌아가는 데엔 별 관심 없고, 안에서 우리끼리 잘해보자는 사람들 말이다.



 앞으로 고령화가 더 심해지면 우리 경제는 만성적인 수요 부족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복지비를 더 내야 하므로 예전처럼 공공사업을 통 크게 할 수는 없다. 결국 규제를 없애고, 개방을 더 과감히 함으로써 시장의 이노베이션을 촉진하는 게 정도(正道)다. 하지만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정부, 그리고 편협한 로컬리즘으론 그게 어렵다.



 그러다 보니 먼 앞날이 잘 안 보인다. 10년, 20년 뒤 우리나라는 과연 지금의 어느 선진국과 비슷해질 수 있을까. 또 우리는 30년쯤 뒤 다음 세대에 어떤 수준의 삶을 안겨줄 것인가. 양으로 승부하는 여야의 복지공약 뷔페엔 찾을 수 없는 메뉴들이다. 빈 접시 들고 서성이는 유권자는 어디에서 배를 채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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