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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오남매 수재로 키운 천생 농군 구룡포 아재 그에게 게임중독아 맡긴다면 …

중앙일보 2012.02.06 00:02 종합 3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몇 년 만에 두 분을 뵈었다. 구룡포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황보태조(65)씨 내외다. 누군가는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황보씨의 자녀교육기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2001)을 기억하리라. 이들은 고향에서 자식 농사 잘 지은 부부로 유명하다. 4녀1남 중 두 명은 서울대 의대, 또 두 명은 경북대 의대, 한 명은 대구가톨릭대 약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내겐 뭣보다 맘 좋은 아저씨, 아주머니다. 그 댁과 우리 집 아이들은 모두 같은 고교를 다녔다. 겉보기엔 그저 촌부(村夫) 촌부(村婦)일 뿐인 두 양반을, 돌아가신 내 어머니는 “참 훌륭한 분들”이라며 귀히 여기고 깊이 사귀었다. 그 인연이 벌써 26년째다.



 손자가 벌써 여럿이라셨다. 그 아이들도 옛 방식대로 키우니 깨치는 게 제법이란다. 아저씨는 고등학교를 채 못 마쳤다. 막노동부터 농사일까지 평생 육체노동에서 놓여난 적이 없다. 돈도 배움도 부족했기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부부는 교육을 위해 밤낮없이 지혜를 짜냈다. 위로 네 딸은 종이인형놀이를 하며 첫 공부 단추를 끼웠다. 아이들이 인형에 ‘라리’란 이름을 붙이면 과자 봉투에 적힌 ‘라’자를 짚어주며 절로 글자를 익히게 했다. 새 달력에 그림을 그려도 나무라지 않았다. 외려 칭찬과 격려로 자신감을 심어줬다.



아들은 딸들과 달리 인형놀이에 흥미가 없었다. 궁리 끝에 편지놀이를 시작했다. 엄마가 매일 집에서 키운 농산물을 팔러 읍내에 갈 때마다 먹고 싶은 과일 이름을 적어 내면 그대로 사주마 했다. 아들은 그림책에 있는 과일 이름을 비슷하게 ‘그려’ 냈다. ‘사과’란 글씨를 그리면 엄마가 정말 그걸 사다 주니 신이 났다. 몇 주 안 가 한글을 깨쳤다.



 한자 공부는 또 어떤가. 『어린이 한자』 네 권 중 셋째로 어려운 책부터 시작했다. 하루 40자씩 익히게 한 뒤 이어 더 쉬운 1, 2권을 내놨다. 초반에 힘든 고비를 넘긴 아이들은 “별것 아니네!” 하며 가볍게 책을 뗐다. 부부는 이 모든 과정을 “산모가 첫아이를 낳아 기르는 정성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함께 했단다. 땡볕 아래 하루 종일 김을 매고도, 리어카 끌고 수십 리 길 진을 빼고도.



 두 분 말씀을 들으며 새삼, 몹시 부끄러웠다. 엄마로서 내게 부족한 건 돈도 정보도 아니요 결국 정성임을 아프게 되새겼다. 무슨 일만 생기면 ‘전문가’부터 찾고 보는 게 요즘 부모들이다. 공부는 학원에, 생활지도는 학교에, 이젠 아이들 게임 시간 관리마저 정부 손에 맡기려 든다. 만약 두 분이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를 맡는다면 아마 일단 오래 관찰할 거다. 게임도 같이 하고 밥도 함께 먹으며 아이 가슴을 들여다보기 위해 사력을 다할 거다. 어떻게든 더 재미있는 일을 찾아 시간을 들여 바꿔갈 거다. 사랑과 정성보다 더 큰 힘은 없음을, 조용히 증명해낼 것이다.



이나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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