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예인 홈쇼핑 신화' 홍진경 "잘못 만들면…"

중앙일보 2012.02.06 00:00 경제 4면 지면보기
지난달 10일 홈쇼핑 GS샵에서 방송된 ‘엄앵란의 꽃게장’은 40분 동안 2000세트가 동났다. 이달 1일 세 번째 방송까지 모두 매진을 기록해 1만2000세트가 팔렸다. 올 들어 총 판매액이 7억원에 이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꽃게장은 영화배우 엄앵란(76)씨가 회장으로 있는 ‘주식회사 엄앵란’의 제품이다. 이 회사는 GS샵에서 2009년부터 김치·만두를 판매했다. 3년 동안 누적 매출 100억원을 넘겼다. 엄씨는 10년 넘게 홈쇼핑에 게스트로 출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사업에 진출했다. 홈쇼핑과 연을 맺은 건 1990년대 말이었다. 주식회사 엄앵란의 송정기 이사는 “시원한 입담을 가진 살림꾼 이미지로 자주 출연했다. 그렇게 경험을 쌓은 후 내린 결론이 사업을 직접 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J Report] 홈쇼핑 점령한 연예인
홈쇼핑 톱10 중 넷이 연예인 상품 … 얼굴값은 매출의 10%



마침 엄씨는 1979년부터 18년 동안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경력이 있다. 손맛 덕에 장사가 꽤 잘됐다. 여기에 바탕해 2009년 자본금 2000만원으로 회사를 차리고 딸·조카·조카며느리를 대표·임원으로 기용했다. 첫해 17억원이었던 매출은 빠르게 늘어났다. 엄씨의 조카이기도 한 송 이사는 “레시피부터 생산까지 모든 과정에 이모(엄앵란)가 일일이 관여하는 점이 성공 비결일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연예인이 장악한 홈쇼핑=홈쇼핑에 ‘셀레브리티 브랜드’, 그러니까 연예인의 이름을 단 상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과거 홈쇼핑은 연예인이 부업 삼아 게스트로 출연하는 곳이었다. 나이 지긋한 원로 배우가 입심을 과시하는 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홈쇼핑은 연예인들이 ‘잭팟’을 터뜨리는 곳으로 바뀌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까지 판매액이 잇따라 경신되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매출 10대 상품 중 넷이 연예인 이름이 붙은 상품이었다. ‘하유미 팩’으로 불리는 수분 마스크가 600억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1위를 지켰다. 방송인 현영(의류·330억원), 탤런트 김성은(의류·107억원), 코미디언 정형돈(돈가스·100억원)이 뒤를 이었다.



 다른 홈쇼핑도 마찬가지다. GS샵·현대홈쇼핑·CJ오쇼핑·롯데홈쇼핑에서 판매 중인 셀레브리티 상품이 20여 종에 이른다. 탤런트 이미숙·이휘향·김혜자·선우재덕, 모델 변정수, 코미디언 컬투·김병만·김지선씨 등이 각자 이미지에 맞는 제품들에 이름을 붙였다. 두 달 전엔 컬투·김병만·정형돈이 홈쇼핑 3사에서 돈가스 제품을 내놔 화제가 됐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 연예인 중에 직접 회사를 세워 사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엄앵란씨와 모델 홍진경씨가 전부다. 대부분의 연예인은 생산 업체가 브랜드·제품을 개발하는 단계에서 참여한다.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담당하고 홈쇼핑 방송에는 게스트로 출연하는 식으로 계약을 한다. 한 홈쇼핑의 상품개발자(MD)는 “연예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상품 매출의 10%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한다. 기존의 단순한 상품 모델 개념과는 다르지만 ‘사업가로 변신했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하유미 팩’의 성공은 중소기업·연예인 홈쇼핑 진출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2002년 설립 후 대형 화장품 업체들의 생산을 담당했던 주식회사 제닉은 기술력은 있었으나 판로를 제대로 개척하지 못해 고전하던 회사였다. 섬유공학을 전공한 유현오 대표가 얼굴에 붙여도 흘러내리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 수분 팩을 개발했고 ‘온도 감응성 상태변화 및 하이드로겔 제조방법’으로 특허권도 취득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대기업·피부과에서도 외면당했다.



 그러던 회사가 2008년 탤런트 하유미를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셀더마 하이드로겔 시트’란 제품이었다. 하씨의 조언을 들으며 상품을 개발해 화제가 됐다. 이 상품을 현대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임홍준 MD는 “패키지 디자인을 하씨가 직접 고를 정도로 관여도가 높고, 모든 방송에 직접 출연하면서 제품에 애정을 과시했다”고 설명했다. 제닉은 누적 매출 1800억원을 돌파하는 ‘성공 신화’를 썼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엔 방송인 ‘최화정 클렌저’를 출시했다.



 주식회사 홍진경은 이 같은 ‘연예인 돌풍’의 원조로 꼽힌다. CJ오쇼핑에서 2005년 김치 판매를 시작한 후 한 해 평균 2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CJ오쇼핑의 손종우 MD는 “애초의 예측을 깨고 극적으로 성공한 사례”라고 소개했다. 수퍼모델의 이미지와 김치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엔 연예인 상품도 소비자에게 낯설었다. 홍진경씨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김치를 일일이 담가 홈쇼핑사를 찾아다녔지만 방송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CJ오쇼핑 임원의 눈에 띄어 첫 방송을 했고, 매진 행진을 이어갔다.



 ◆“제품 나쁘면 연예인도 무효”=이처럼 성공한 제품의 공통점은 크게 둘이다. 우선 연예인은 이름만 빌려주지 않는다. 개발 단계에서 깊이 관여하고, 지속적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한 홈쇼핑 관계자는 “방송 시간에도 늦고, 제품에 전혀 관심이 없는 연예인도 꽤 있다”며 “이런 경우 초기엔 관심을 끌다가도 곧 판매량이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최근엔 홈쇼핑·생산업체·연예인의 삼각 구도를 이어주는 업체도 생겼다. “생산 업체들이 홈쇼핑에 물건을 가져가면 이미지가 맞는 연예인부터 찾자고 나온다”고 하소연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도 있다. 중견 탤런트와 2010년 제품을 내놓았던 한 화장품 업체는 1년도 안 돼 연예인을 교체했다. 처음 계약했던 탤런트가 재계약하며 몸값을 올려 불렀기 때문이다. 이 제품을 담당했던 MD는 “연예인 이름을 상품에 못 박아 내보냈던 만큼 계약을 못해 이름을 뗀 데 따른 타격도 컸다”고 털어놨다.



 성공에 또 하나의 필수 요건은 제품의 질이다. 연예인을 내세워 이슈화에 성공한 후엔 입소문이 뒷받침돼야 한다. 실제로 하유미팩은 초기에 무료 체험 행사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진행했지만 반품률이 5%로 같은 카테고리 제품에 비해 낮았다.



 홍진경씨는 최근 연예인들의 ‘홈쇼핑 러시’ 현상에 대해 “연예인이라고 해서 편하게 사업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일침을 놨다. “조금이라도 잘못 만들면 더 큰 죄인이 되는 게 연예인 제품”이라는 것이다.





셀레브리티 브랜드



유명인들의 이름을 상품에 활용하는 것. 미국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가수 제니퍼 로페즈의 화장품, 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의 향수 등이 나타났다. 한국은 홈쇼핑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돼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유행을 타고 활성화됐다. 셀린느·루이뷔통 등도 배우 송혜교, 영화 감독 소피아 코폴라 같은 유명인과 함께 디자인한 제품에 그들의 이름을 붙여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