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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힘

중앙선데이 2012.02.05 02:42 256호 1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많이 알고 많이 이룬 사람들의 현란한 수사와 자기 자랑보다는 촌철살인의 유머 한마디가 우리를 훨씬 더 행복하게 해준다. 사람을 화나게 하거나 감동시키는 것보다 웃기는 일이 실은 훨씬 어렵다. 필자가 희극인을 선망하고 존경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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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인간의 감정표현과 행동 가운데 가장 복잡한 메커니즘 중 하나다. 호흡과 생리기능을 관장하는 해마체, 시상하부, 편도에서부터 감정중추인 변연피질, 지성담당의 전두엽, 감각과 운동 중추인 후두엽, 추체로 등이 모두 작용한다.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감정, 신체와 정신이 함께 녹아있는 것이 웃음이다. 뇌세포가 스펀지처럼 변하는 뉴기니의 쿠루병은 아무 이유 없이 간헐적으로 웃어대기 때문에 웃음병(laughing sickness)이라고도 한다. 바이러스 감염으로 단백질이 변형된 프리온이 뇌의 뉴런을 전체적으로 헝클어버린 탓이다.

병들어 이유 없이 웃는 뇌도 문제지만, 경직된 환경에서 완고한 이성에만 의지하는 바람에 유머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면 지루하고 숨이 막힌다. 유머에 반응해 파안대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일단 변화할 여지가 있다. 인간에게 엄격한 잣대만 들이대는 사람은 웃을 여유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지함이 부족해 세상을 우습게만 보는 형과 반대로 엄숙하게만 사는 형으로 사람을 나눈 바 있다. 사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고통스럽거나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웃음으로 넘긴다면 힘을 얻기도 한다. 운명 앞에 무력하면 끝내 희생자로 남겠지만, 운명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과 우월성을 되찾아주는 게 유머의 힘이다.

희극은 대개 무언가 부조리하고 상식적이고 앞뒤가 맞지 않아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때 반전 때문에 놀란 후 ‘아, 그랬구나’ 하며 안도하는 단계로 정리된다. 약한 노예들을 학대하고 때리면서 웃는 로마시대의 비열한 희극과 신랄하게 웃기되 폭력적이지는 않은 희극의 에토스(ethos 극적 설득력)를 지닌 풍자는 많이 다르다. 걸리버 여행기, 돈키호테 허클베리 핀 동물농장 같은 고전 소설이나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 ‘보랏’ 같은 최근의 영화들은 시대와 공간이 바뀌어도 고품격으로 우리를 웃긴다.

최근 부자와 권력자들에 대한 조롱이 온라인, 매스컴 등을 가리지 않고 넘쳐나고 있다. 강자가 약자를 우스갯거리로 삼는 것은 역겹지만, 약자가 강자를 조롱하는 풍자 앞에 대개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물론 농담에 관대한 분위기가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자신을 조롱해서 모욕당했다며 글쟁이나 개그맨을 고소하는 재벌회사나 정치인의 존재는 독재 국가에 비해 역설적으로 우리가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니 일단 풍자의 대상이 되어 웃음을 선사하는 잘난 이들을 너무 심하게 괴롭히지는 말자.

하지만 개그맨의 팬클럽에는 가입해 활동할 의사가 있으나,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고 고소를 남발하는 사람들은 그리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봉건시대에도 민중이 진심으로 귀애하는 대상은 탐관오리나 부자들이 아니라 가진 것 없는 떠돌이 광대였고, 소리꾼이었고, 재미있는 얘기를 읽어주는 전기수(傳奇<53DF>)들이었다. 양반들이 멸시한 광대들의 마당놀이와 판소리와 옛이야기 책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자부심이자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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