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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고픈 대로만… 돌쟁이 딸 민주, 딱 20대 때 나 같네요

중앙선데이 2012.02.05 02:36 256호 19면 지면보기
김병현(가운데)이 1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의 훈련장에서 수비 연습을 하고 있다. [넥센 히어로즈 제공]
지난달 31일. 미국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캠프에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김병현(33)을 만났다. 팀 훈련에 합류한 지 이틀 만에 수염이 꽤 자라 있었다. 그는 턱수염을 만지며 “그새 늙었나 보네”라고 농담했다.

애리조나 캠프서 만난 풍운아 김병현

김병현에 앞서 미국 프로야구를 개척했던 박찬호(39·한화 이글스)는 “김병현은 도인 같다”고 말했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김병현은 세상을 다 산 영감처럼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겹다”고 했다.

지난 3년 동안 김병현은 달라졌다. 그는 왜 달라졌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괴짜 또는 풍운아, 사고뭉치로까지 불렸던 20대의 김병현을 30대의 김병현이 돌아봤다.

김병현은 “이제 갓 돌을 지난 우리 딸 민주, 이 아이를 보면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아무 말도 못 알아듣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갓난아기. 내 20대가 꼭 그랬다”고 했다. 그는 “돌아보면 나는 자의식이 참 강했다. 야구 하나만 보고, 나 하나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김병현은 만 스무 살인 1999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했다. 계약금 225만 달러의 초특급 대우를 받았고, 이듬해부터 4년간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콜로라도 로키스에서는 선발 투수로 괜찮은 성적을 냈다. 9년 통산 54승 86세이브를 기록했고, 2000만 달러 이상의 누적수입을 올렸다.

김병현의 피칭은 강렬했다. 1m78cm의 작은 키, 미국에선 아주 낯선 언더스로 투구폼으로 그는 시속 150㎞ 이상의 강속구를 뿜어냈다. 뿐만 아니라 예측불허로 휘는 프리즈비(frisbee·원반) 슬라이더는 빅리그에서 명품 구종으로 손꼽혔다. 작은 동양인이 던지는 ‘마구(魔球)’에 빅리그 거인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는 20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언더스로 투수로 꼽혔다. 대단한 부와 명예를 이뤘다. 하지만 그 이상의 풍파도 겪었다. 취재진과의 마찰, 보스턴 팬들을 향한 ‘손가락 욕설’, 몇 차례 이어진 팀 이탈 때문에 그는 문제아로 찍혔다. 메이저리그 시절 “은퇴 후 만화가게 주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엉뚱한 말에는 사람과 어울리기 어려워하는 고민이 묻어 있었다. 김병현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는 영리하고 착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김병현은 “어린 나이에 겪은 (문화)충격이 상당했다. 한국에서 보낸 학창 시절과 달리 미국에 가니 아무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칭찬과 격려만 했다. 그러다 결과가 안 좋으면 냉정하게 돌아선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 그래서 더욱 야구에만 매달렸는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학창 시절 운동만 하느라 사회적 성장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폐해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최고의 기량을 뽐냈던 김병현도 예외가 아니었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세상은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과 부딪힐수록 그는 숨기만 했다.

김병현은 “미국에서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나 자신과 영어로 대화했다. 혼잣말로 묻고 답했다. 남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고 야구만 생각했다. 야구는 생각할수록 생각할 것이 더 많아진다. 야구에 대한 집착, 일종의 강박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도 혼자 생각만 하니까 미국 사람들이 ‘야구 끝나면 야구 생각 좀 그만해. 쉴 때는 쉬란 말이야’라고 충고했다. 그때는 그 말도 들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풍운아는 2007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김선우·서재응·최희섭이 그랬듯 국내 구단에 복귀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그는 또 예상을 벗어났다. 야구에 미련이 없는 듯 잠행을 계속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뽑혔지만 출국 때 여권을 분실하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문제아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김병현은 “야구만 하고 살았다. 그런데 야구를 하지 않으니 야구 이외의 세상이 보이더라. 야구가 인기 없는 종목이었다면 난 평범한 운동선수일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야구는, 김병현은 아무 것도 아니다. ‘만약 전쟁이라도 나면 야구가 무슨 소용일까’라고 생각도 했다”며 웃었다. 박찬호가 말한 ‘도인’ 기질이 언뜻 보였다.

김병현은 서른 살이 넘어서야 자연인이 됐다. 남들처럼 연애를 했고, 2010년 3월 한경민(31)씨와 결혼해 지난해 딸 민주를 얻었다. 그에게 소통해야 할 상대,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김병현은 “나와 내 아내가 아이의 창조주다. 없던 생명이 나와 아내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예전의 내가 보인다. 사람들이 날 어떻게 봤을지 이해하게 됐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야구를 떠나 남들처럼 살아보니 나 말고 챙기고 배려해야 할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다. 김병현에겐 이제 인생이 먼저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인생에 야구가 있을 뿐이다.

김병현은 다시 야구가 하고 싶어졌다. 지난해 일본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다가 국내로 돌아왔고, 지난달 넥센과 총액 16억원에 계약했다. 팀에 합류한 지 며칠 만에 어린 후배들과 무척 친해졌다. 훈련할 때보다 웃을 때가 더 많다. 남편이자 아빠가 된 김병현은 이제 나이만큼 성숙해 가고 있었다.

그에게 “아이가 커서 마운드에서 공 던지는 아빠를 알아보면 좋을까?”라고 물었다. 김병현은 “아니다. 훗날 딸아이가 ‘아빠, 예전에 야구선수였어? 야구 좀 했네?’ 정도로만 알아주면 좋겠다”라며 웃었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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