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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적, 부패 … 최우선으로 대응해야 할 기업 리스크

중앙선데이 2012.02.05 02:14 256호 24면 지면보기
메르세데스-벤츠로 유명한 독일 자동차그룹 다임러는 2010년 각국 정부에 막대한 액수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미국 사법당국에 의해 기소됐다. 1998년부터 10년간 최소 22개국에서 이 회사 제품이 관용차로 채택되도록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뿌린 혐의다. 궁지에 몰려 유죄를 인정한 다임러는 9360만 달러의 형사 벌금과 9140만 달러의 민사 합의금 등 모두 1억8500만 달러(약 2068억원)를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내기로 합의했다.

딜로이트와 함께하는 위기관리 비법 ⑦ 리스크 인텔리전스 경영

밀실에서 건넨 검은돈으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반칙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우선 엄청난 벌금과 합의금만으로도 회사는 막대한 금전적 손실을 봤다. 더 뼈아픈 것은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온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명성과 평판이 하루아침에 땅에 떨어진 것이다. 뒤늦게 뇌물 공여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책을 내놓았지만 사후약방문이었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기업은 각종 비리와 부정을 저지를 만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게 유명 기업들의 검은돈 스캔들이다. 회사 자산을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경비를 과다 청구해 이익을 챙기는 단순한 유형에서부터 뇌물수수, 회사 자금 횡령, 핵심 기술·정보 유출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과학기술 발전과 시대적 변화에 맞춰 수법도 갈수록 지능화하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패 관행들을 기업의 리스크 관리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성장지상주의에 매달려 페달을 힘껏 밟아야 하는 상황에서 웬만한 과속과 신호위반은 눈감아주었던 것이 기업은 물론 사회 전반의 분위기였다. 어쩌다 적발되더라도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이기 일쑤라 큰 문제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부정부패가 발각될 경우 가해질 유·무형의 손실 수준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커지고 있다.

근래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관심사로 떠오른 미국 해외부패방지법(FCPA)이 대표적 사례다. 70년대 닉슨 대통령의 불법 도청 사건인 ‘워터게이트’를 계기로 제정된 이 법은 미국인이나 미국 기업, 기타 경제활동 주체가 사업상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으로 외국 정부 관료나 공기업 임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것을 금했다. 제정 이후 오랜 기간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상태였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미국 법무부가 나서 2000년대 중반 이후 담당 인원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면서 법 집행을 강화해 왔다. 지난 10년간 FCPA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 건수는 연 평균 두세 건에 불과했던 것에 반해 최근에는 연간 70여 건으로 급증했다. 수년 새 FCPA 규정 위반으로 처벌받은 기업 명단에는 지멘스와 존슨&존슨·IBM 등 업종별 대표 기업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이 법의 처벌 대상이 미국 기업에 국한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 본사를 둔 기업이더라도 미국 증시에 상장돼 있으면 법이 적용된다. 일본의 대형 플랜트엔지니어링 회사인 JGC는 나이지리아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과정에서 나이지리아 정부 관료와 국영 석유공사 간부에게 뇌물을 준 것이 적발돼 2억2000만 달러의 제재 합의금을 물어야 했다. 프로젝트에 컨소시엄 형태로 함께 참여한 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의 3개 사 역시 각각 수억 달러의 벌금과 합의금을 납부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한국IBM과 LG-IBM은 한국 정부가 발주하는 컴퓨터 조달사업권을 따기 위해 주요 정부기관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건넨 것이 적발돼 IBM 본사가 1000만 달러 이상의 부당 이득금 및 제재금 부과 처분을 받았다. 부정이 저질러지는 지역과 무관하게 처벌이 따른다는 사실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규제의 칼날이 매서워지면서 부정과 불법에 대한 기업의 인식도 변화를 맞고 있다. 정도를 벗어난 방법으로는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이윤을 늘릴 수 없다는 사실이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국내나 국외 할 것 없이 법 위반 사실이 적발될 경우 거액의 벌금은 물론 심할 경우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관련 임직원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뇌물을 포함한 적당한 반칙을 기업경영의 관행으로 용인해 주던 사회적 통념이 급격히 사라지는 추세다.

2006년 독일 검찰은 뮌헨의 지멘스 본사와 간부들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전·현직 간부들을 체포했다. 검찰은 횡령과 뇌물수수, 자금 세탁, 탈세 등 다양한 부패 의혹에 관해 조사했다. 그 결과 과거 수년간 러시아와 나이지리아·리비아 등지에서 거액의 뇌물을 뿌린 사실이 드러났다. 지멘스의 한 간부는 그리스 지사에 재직할 때 지사 수입의 10%를 뇌물로 썼다고 증언했다. 수사 결과가 알려지면서 지멘스의 경영진은 전격 퇴진했고 노키아와의 무선기기 부문 합병 계획은 연기됐다. 2년 뒤인 2008년 12월 지멘스는 부패 의혹에 대한 법적 절차가 독일 뮌헨과 미국 워싱턴에서 같은 날 종결됐다고 발표했다. 워싱턴DC 연방법원에서 진행된 소송에서 지멘스는 내부 통제 실패와 FCPA 위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미국과 독일 정부에 약 10억 유로(약 1조4700억원)의 벌금을 내는 선에서 소송을 끝냈다. 이는 당시 기준으로 한 기업이 금전 매수 거래와 관련해 낸 벌금으로선 사상 최대였다.

기업 비리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38개국이 참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약에 따라 기업 관련 부정부패 방지를 위한 법령이 각국에서 속속 도입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98년 제정된 ‘국제 상거래에 있어서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을 최근 적극 적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 영국은 기존 뇌물 처벌 법규에서 더 나아가 외국 공무원뿐 아니라 일반인에 대한 뇌물 공여를 일절 금하는 강력한 뇌물방지법을 제정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금융 규제 및 개혁을 골자로 한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벌금 처분이 가능한 비리 정보를 제보한 사람에게 벌금액의 10~30%에 달하는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부정·비리에 대한 제보와 신고를 독려한다. 국내에서도 공익 목적의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 과태료나 벌금 처분이 내려질 경우 최고 10억 원의 보상금을 제보자에게 지급하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지난해 9월 시행됐다.

국제부정감사인협회(ACFE) 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기업 매출의 5%가 조직 내 부정행위로 유출된다고 한다. 부정행위와 부패는 수익 감소뿐 아니라 기업의 명성과 고객 충성도, 자본조달 능력과 브랜드 파워, 핵심 인재 유지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부패에 따른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부문별 현황 파악을 통해 잠재적 부패 요소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주어진 산업의 특성과 영업 환경, 해외법인의 운영 실태, 회계 및 자금의 투명성, 내부 통제의 유효성 등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윤리경영에 대한 미션과 비전, 실행 가이드를 마련하고, 적용시키며, 이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링과 교육훈련을 통해 확고한 문화로 정착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권우철 공인회계사와 공인내부감사사, 공인정보시스템감사사 등의 자격증이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딜로이트 기업리스크자문본부 상무로 기업 리스크 관리, 내부 감사, 상시 모니터링 분야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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