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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존재 이유

중앙선데이 2012.02.05 02:08 256호 27면 지면보기
아주 오래전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 환자였다. 혼자 힘으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오랫동안 어렵게 얼굴 근육을 움직여야 힘겹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 달에 한 번 성당 사제와 교우들이 병자 방문 때 찾아가는 것이 그녀에겐 가장 큰 삶의 위로였다. 교우들이 찾아가면 그녀는 항상 아무런 말 없이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고 끝나면 감사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하려 노력했다.

삶과 믿음

그런데 하루는 그녀가 나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신부님, 저는 제 인생이 너무 보잘것없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쓸모도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는 제 자신이 몹시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자살을 하려고 여러 번 생각했었습니다. 만약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저는 늘 하느님과 부모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쓸모 있게 창조하셨다는데, 저를 어디에 쓰려고 만드셨는지….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받는 이 고통을 통해 세상에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존재 이유이고 행복입니다.”

나는 그때 한 인생의 심오한 깨달음의 소리를 들은 것에 감격했다. 또한 자신의 고통을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는 그녀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다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20년도 훨씬 지났지만 고통을 통해 세상에 봉사할 수 있다고 한 그녀의 말이 지금도 가끔씩 내 마음을 크게 울린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모든 이가 꿈꾸는 소망이다. 행복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행복은 본인의 의지와 깊이 상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행복은 인간 스스로 어떤 마음 자세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극히 주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눈에는 초라하고 비참하게 보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가치 있게 사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 바로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기쁨 속에 살게 되면 과거의 슬픔을 잊기 쉽고, 아픔 속에 살 때는 지나간 기쁨의 시간을 잊기 쉽다. 그래서 한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당연하거나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다 이유와 목적이 있다. 그러니 내 주변의 모든 것은 다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다. 다만 내가 그 의미를 깊이 느끼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할 뿐이다.

그렇기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눈을 뜨고 우리 주변을 바라보자. 그러면 우리 주변에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게 될 것이다.



허영엽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문화홍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서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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