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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쿤, 의원 매수 성공 … 쑨원 누르고 총통선거 압승

중앙선데이 2012.02.05 02:00 256호 29면 지면보기
민국 시절 중국 전역에는 크고 작은 토비가 없는 곳이 거의 없었다. 관군과 구분이 모호할 정도였다. 규모가 가장 컸던 홍창대(紅槍隊)의 경우 두령(가운데 말 탄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약 80만 명을 동원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김명호 제공]
1923년 10월 5일 중화민국 제5대 총통선거가 베이징에서 열렸다. 군경이 의사당으로 통하는 길을 봉쇄하는 바람에 보기에는 살벌했지만 실제로는 순조로웠다. 차오쿤(曹<9315>·조곤) 측 선거대책본부는 차량 180대를 동원해 매수에 성공한 의원들을 의사당까지 실어 날랐다. 의원 소개장을 지참한 방청객들도 선거에 적극 협조했다. 남녀 할 것 없이 모욕적인 몸수색을 당하고, 일단 입장하면 방청석을 뜰 수 없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몇 시간에 150원이면 거꾸로 매달려 있어도 남는 장사였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55>

의장도 돈값을 했다. 출석자가 400명에 불과하자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믿을 만한 의원들을 다그쳤다. “누구를 찍건 상관없다. 동향이나 같은 당 의원들을 출석만 시켜라. 대가는 5000원이다. 밖에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다.” 돈맛을 안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2시간 만에 의석이 꽉 찼다. 들것에 실려 나온 사람도 있었다. 593명이 투표를 시작했다.

10년 전 위안스카이(袁世凱·원세개)를 총통으로 선출할 때도 투표에 참여했던 의원 한 사람이 말년에 재미있는 구술을 남겼다. “위안스카이는 무장 군인을 동원해 국회를 포위하고 의원들을 협박했다. 14시간 동안 밥은커녕 물도 주지 않았다. 차오쿤도 국회를 포위했지만 위안스카이 때 배를 곯았던 것에 비하면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향기로운 차를 아무리 마셔도 뭐라는 사람이 없고, 오찬도 최고급이었다. 간식도 쉬지 않고 나왔다. 6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차오쿤이 의원들을 돈으로 매수했다며 난동 부리는 의원도 있었지만 아무도 동조하지 않았다. 평화로운 하루였다.”

총통 취임 직후 정복 차림을 한 차오쿤. 사진 찍기를 싫어했는지 사진이 별로 없다.
개표 결과 차오쿤이 480표를 얻어 총통에 당선됐다. 남방의 혁명세력을 상징하던 쑨원(孫文·손문)은 18표에 그쳤다. 사람 이름 대신에 ‘五千元(오천원)’과 ‘三立齋(삼립재)’를 쓰거나 쑨메이야오(孫美瑤·손미요)에게 한 표를 던져 차오쿤을 조롱한 의원들도 있었다. 五千元은 의원 매수금액 중 가장 적은 액수였고, 三立齋는 차오쿤의 대선기구 중 하나였다. 차오쿤은 껄껄대고 웃었지만 쑨메이야오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두통약을 찾았다.

쑨메이야오는 비적 두목이었다. 총통선거 5개월 전인 5월 6일 새벽 2시50분 상하이를 출발한 특별열차가 산둥(山東)성 린청(臨城) 인근에서 1000여 명의 토비(土匪)에게 습격당했다. 중국인 외에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 등 5개국의 여행객과 외국 기자들이 타고 있었다. 미국 적십자회 대표와 대통령 고문, 중국 주재 프랑스대사관 참사 등 중요 인물도 적지 않았다.

토비들은 저항하는 영국인 한 명을 사살하고 외국인 39명과 중국인 200여 명을 산채가 있는 천연의 요새 바오두구(抱犢<5D2E>·포독고)까지 발가벗겨서 끌고 갔다. 인질들은 두목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통역을 대동하고 나타난 쑨메이야오는 수염이 덥수룩했지만 소년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청년이었다.

쑨메이야오는 “너희들은 인질이 아니라 포로”라며 쑨원이 조직한 흥중회(興中會)나 동맹회(同盟會) 회원, 농민폭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 사람, 40무(畝) 이하 토지 소유자와 의사·무당·공장기술자·예술가는 당일로 풀어줬다. 일가친척이 잡혀온 경우 한 명만 남게 하고 부자와 형제는 아버지와 형만 인질로 삼았다. 부부가 잡혀온 경우도 부인은 석방시켰다.

인질들 중에 공포는커녕 꿈에 부푼 미국인이 한 사람 있었다. 며칠 전 차오쿤을 인터뷰한 상하이의 영자신문 밀러스리뷰 편집인 포웰이었다. 쑨메이야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이와 고향을 물었다. 수호전의 주인공 쑹장(宋江·송강)과 같은 고향이며 나이는 25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포웰은 오싹했다. 차오쿤의 의원 매수를 묻어버리고도 남을 세계적 특종감이 눈앞에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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