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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먹고 다이어트까지…서울에만 100여 곳

중앙선데이 2012.02.05 02:00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채식 붐? 늘어나는 ‘草食 남녀’

서울 역삼동에 있는 채식 뷔페 가로비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고르고 있다. 음식은 동물성 식재료를 일절 쓰지 않으면서도 육류 등 일반 메뉴의 외형과 맛을 살렸다. 최정동 기자




채식 전문점은 채식 동아리 등의 모임 장소나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도 인기다.
채식’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매니어들의 유별난 식단’ 정도로 취급받던 음식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까지 파고들어 왔다. 뷔페식당에서부터 고급화·체계화된 사찰음식 체인점, 채식 패스트푸드점까지 등장하고 있다. 수년 전까지 극소수 고객을 상대로 하던 채식 전문식당이 이젠 서울에만 100곳을 훌쩍 넘었고 전국적으로는 500여 곳에 이른다. 밑바닥에는 웰빙에 대한 열망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채식 붐에는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을 등에 업은 젊은이들의 유행이라는 점도 흥미 요소다. 늘어난 수요층을 바탕으로 채식 전문식당이 대형화· 체인화되면서 ‘채식의 산업화’가 엿보인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먹자골목. 강남역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는 온갖 외식업체가 밀집해 있다. 특히 젊은이들을 상대로 한 육류 전문점이 많다. 이들을 비집고 ‘가로비’라는 상호의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순수 채식만으로 다양한 메뉴를 구성한 ‘채식 전문뷔페’다.눈보라가 몰아친 평일 오후였지만 가로비는 손님들로 가득 찼다. 상당수가 20대 젊은이들이다. 식사를 하던 재미교포 코리 홍(22)씨는 “미국에서 채식을 하다 한국에 혼자 온 뒤에는 채식하는 게 너무 힘들어 고생했는데 최근 이 식당을 알게 돼 자주 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손님 박건주(22)씨는 지난해 봄부터 다이어트를 겸한 운동을 시작하면서 채식을 즐기기 시작한 경우다. 지방대에 다니는 박씨는 “가로비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채식 전문점이 학교나 학교 근처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1시. 신촌의 한 채식 전문식당 ‘러빙헛’을 여자친구와 함께 찾은 한승철(27)씨는 “데이트를 위해 인터넷으로 맛집을 검색하다가 이곳에 왔다”며 “채식 전문점은 처음인데, 맛도 괜찮고 건강에 좋은 느낌이라 잘 선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러빙헛 신촌지점장 김성호(30)씨는 “2009년 5월 문을 연 뒤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의식적으로 채식을 염두에 둔 사람은 물론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다양한 메뉴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2일 오전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맞은편에 자리 잡은 ‘발우공양’. 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사업단이 사찰음식 문화를 알리기 위해 직영하는 식당으로 2009년 6월 문을 열었다. 코스요리 가격이 2만5000원에서 7만원까지 하지만 예약 없이는 맛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붐빈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은 아예 시간대를 나눠 1부, 2부로 운영한다. 1호점만으로는 폭발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같은 건물에 일품·계절식을 주로 하는 2호점 ‘발우공양 콩’을 냈고, 양천구 목동에 3호점 ‘발우공양 공감’을 오픈했다.



1호점 지배인 문미영(43)씨는 “오픈 초기에는 종단 관계자가 많이 찾았지만, 요즘은 일반 고객이 훨씬 많다”며 “특히 지난해부터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면서 특별한 날 데이트코스로 활용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채식전문 패스트푸드점도 세를 넓혀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미국 등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마오즈(Maoz)’는 지난해 12월 말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1호점을 열었고 올해는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인사동점 이민욱(31) 점장은 “개점 이후 계속 손님이 늘어나고 있는데, 아직 고객의 절반은 마오즈를 잘 아는 서구인들이지만, 우리 젊은이들의 비중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채식 전문점들은 채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즐기는 동아리의 단골 회식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달 31일 가로비에서 모임을 가진 ‘한울벗 채식나라’ 회원 이성희(30)씨는 “6개월 전부터 채식을 시작했는데 평소 직장에는 도시락을 싸가는 등 불편이 많다”며 “채식 전문점이 더 생기면 채식을 막 시작했거나, 채식을 꺼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모임 주최자인 윤창렬(33)씨는 “2009년 여름부터 매주 2~3번씩 채식모임을 하는데, 최근 신입 회원 중 학생 등 젊은이들의 비중이 확연히 높다”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채식 정보를 얻게 된 것이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수요를 바탕으로 러빙헛·풀향기 등의 채식 전문식당 체인이 계속 점포를 늘려가고 있다. 주문에 따라 모든 코스요리를 채식으로 조리해주는 기존의 개별 음식점들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여의도의 중화요리점 ‘신동양’, 종로구 관훈동의 유서 깊은 사찰음식점 ‘산촌’ 등이 그들이다.



채식 전문점이 늘면서 이들에게 전문적으로 식재료를 공급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베지푸드·베지월드 등 기존 업체 외에 최근에는 채식나라·즐거운채식·채식맘하우스 등 신흥 업체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채식 전문점이 제공하는 식단은 무척 다양하다.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오징어 등 육류, 생선의 외형과 풍미를 살리는 재료가 많이 발달해서다. 육류 형태의 경우 밀과 콩 단백을 원료로 만든다. 스테이크, 커틀릿은 물론 장조림이나 소시지·육개장 등 다양한 메뉴가 가능하다. 콩고기를 이용한 햄과 삼겹살도 최근 개발돼 인기다. 식물성 재료인 곤약을 이용한 생물 오징어, 콩 단백을 이용한 오징어 진미채 등도 있다. 콩 단백과 야채를 이용한 어묵도 맛살이나 핫바의 형태로 제공된다.



이런 식재료를 이용하면 꽤 풍성한 메뉴가 나온다. 보통 즐기는 거의 대부분의 메뉴를 채식 원료만 써서 만들 수 있다. 최근 채식당들이 가족과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내놓는 콩가스(콩고기를 쓴 커틀릿)와 두개장(콩고기를 쓴 육개장), 각종 파스타 등은 이런 고민 끝에 나온 메뉴다.



프루테어리언 vs 비건

채식은 한때 유별난 이들만 즐기는 메뉴였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1999년 개봉된 로맨틱 코미디 ‘노팅힐’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조연 중 한 명인 키지아(에마 버나드 분)는 고기를 권하는 상대방을 향해 “나는 프루테어리언(fruitarian)”이라고 말한다. 프루테어리언은 육류·유제품·계란을 일절 안 먹는 비건(vegan)보다 한 수 위로, 과일조차 익어서 땅에 떨어진 것만 먹는 극단적 채식주의자다. 키지아는 심지어 요리된 당근을 보며 “당근이 살해당했다”고 슬퍼한다. 국내에 본격적으로 순수 채식이 소개된 1990년대 초의 풍경이 이랬다. 건강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았지만, 채식이 환경운동이나 동물보호 등 묵직한 이슈와 연결되다 보니 부담을 느낀 일반인들에게 넓게 퍼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초창기 채식 전문식당이 쉽게 자리 잡지 못한 이유다.



외식업 컨설턴트인 김동현(53)씨는 “5~6년 전에도 웰빙 바람을 타고 많은 채식 식당이 생겼지만 대부분 자리를 못 잡았다”며 “채식 재료의 가격이 오른 것도 이유지만, 종교적 신념이나 사명감으로 채식당을 운영하는 이들이 많아 사업적 측면을 소홀히 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하지만 수년 전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됐다. 채식을 다이어트식 또는 건강식으로 바라보는 일반인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채식당을 찾고 즐기는 게 훨씬 쉬워졌다. 자기가 있는 곳 주변의 채식당 위치와 평가를 확인할 수 있는 아이폰용 앱 ‘채식 식당’이 대표적이다.



서울대학교 채식 동아리 ‘콩밭’을 만든 강대웅(31)씨는 이런 변화를 느끼고 현실로 옮긴 사람이다. 강씨는 2009년 7월 이 동아리를 만들었다. 목표는 학교 식당에 제대로 된 채식 메뉴를 만들자는 것. 학생들 상대의 퀴즈 이벤트, 설문조사를 거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강씨는 “설문 결과 채식만 하는 사람은 5.5% 정도였지만, 채식 식당이 있다면 가 보겠다는 답변은 40%나 됐다”며 “채식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강씨와 동료들은 이후 강연회 등 활동을 통해 학교 측을 꾸준히 설득한 결과 2010년 10월 서울대 제2식당 구내에 84석 규모의 채식 뷔페가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학교 측도 하루 이용객이 200~300명을 웃돌자 지난해에는 두 번째 채식당을 열었다.



채식 베이커리 창업도 늘어

요즘 새롭게 문을 여는 채식 전문점들은 소수의 ‘이념적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해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채식 패스트푸드 마오즈의 주요 식재료는 콩 완자, 콩기름, 우유와 계란이 안 들어간 빵과 야채 등이다. 하지만 완전 채식주의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마요네즈를 이용하고 커피에는 우유를 쓴다. 마오즈코리아 김형우 운영팀장은 “우유·계란도 안 먹는 비건만 상대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좁아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현재의 메뉴로도 육식 중심의 음식문화를 바꾸자는 마오즈의 취지를 알리는 데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터넷 기업 NHN은 구내식당에 채식을 원하는 직원들을 위한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 식단을 운영 중이다. 일반식보다 비싸지만 늘 준비된 분량이 다 나간다고 한다. 일본에서 시작된 자연주의 요리법인 마크로비오틱은 주로 유기농 곡물과 채소를 뿌리와 껍질까지 모두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육류는 전혀 쓰지 않지만 환자 등 특별한 경우에는 계란과 벌꿀 등을 쓰기 때문에 비건 등 순수 채식과는 약간 다르다. 외식업 컨설턴트 김동현씨는 “1년 전부터 채식 뷔페나 베이커리를 해보려는 창업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가로비는 김씨가 컨설팅한 첫 사례다. 오는 3월 명동에는 그가 컨설팅한 462.8㎡(140평) 규모의 채식 베이커리가 생긴다. 커피전문점을 창업하려다 김씨의 제안으로 채식 베이커리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홍대입구역 근처에 채식 뷔페와 베이커리를 열고 싶다는 문의도 접수된 상태라고 한다.  



이승녕·김경희·노진호 기자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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