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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웰다잉 가르치자

중앙선데이 2012.02.05 01:49 256호 30면 지면보기
3년 전 아주 가까운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간암을 시작으로 여기저기 전이된 온갖 암이 친구를 괴롭혔다. 암 선고를 받던 날부터 투병생활은 4년간 이어졌다. 친구는 그날 아무렇지 않은 듯 이렇게 말했다. “나, 간암이래. 좀 크다는데. 10㎝쯤 된다네….” 그 후 몇 차례 수술과 항암 치료가 계속됐다. 친구는 절망하지 않았다. 도시생활을 정리한 뒤 가족 모두 강화도 마니산 자락으로 이사했다. 결혼 10년 만에 얻은 어린 두 자녀를 위해,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행도 다녔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죽음 또한 삶의 연장임을 어찌하랴. 친구의 죽음은 봉사와 희생의 삶만큼이나 품위를 잃지 않은 웰다잉(well dying)이었다. 공부방과 나눔의 집을 운영하며 결손가정 아이들을 셋이나 맡아서 키웠다. 낡고 좁은 20평 아파트에서. 마지막 2개월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뼛속까지 전이된 암은 누워 있기조차 힘들게 했다.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죽음에 대해 얘기해야 했지만 몇 차례나 말문을 열지 못했다. 뼈만 남은 친구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몰래 눈물을 훔쳤다. 친구는 농담을 던지며 미소 짓곤 했다.

조용철 칼럼

어디서 그렇게 초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나왔을까? 친구 집을 방문한 여름의 마지막 주말, 우리는 어렵게 죽음을 얘기했다. 아이들이 컸을 때 들려줄 아빠의 영상메시지를 다음 주에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좀 더 빨리 죽음을 준비했으면 좋았을 것을. 요즘엔 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자들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중병에 걸린 이들의 웰다잉에 대한 호응도 높아지고 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청소년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배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치열한 생사관이 있길래 애플이란 기업을 중흥시키고 ‘아이폰 혁명’을 주도했을 것 같다.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눈앞의 멋있는 삶을 꾸리게 만드는 추동력이다.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그가 연설한 내용의 3분의 1은 웰다잉에 관한 것이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무엇인가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그는 열일곱 살 이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정말 할 것인가’ 끝없이 자문했다고 한다. 56세에 끝난 그의 인생 스토리가 100세 인생 못지않게 감동적인 이유다.

한때 우리 청소년 사이에선 ‘시체놀이’라는 게 유행했다. 이름만으로도 끔찍한데 하나의 놀이문화로 퍼져 나갔다. 컴퓨터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은 갈수록 잔혹한 게임에 빠져들고 있다. 학교폭력과 자살, 심지어 살인은 잔혹한 게임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빌려간 10만원을 갚으라는 친구를 목 졸라 살해한 고교생이 곧바로 PC방에 달려가 밤새 게임을 했다지 않은가. 시체놀이나 목 조르기 장난을 하는 학생들이 생명의 무게를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청소년들에게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할 방법은 없을까. 내가 어떻게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면 자살이나 학교폭력은 급감할 것이다. 인디언 부족들은 아이가 자아의식을 가질 무렵, 숲 속에서 몇 날이고 홀로 지내게 했다고 한다. 삶과 죽음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누구나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겠는가.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죽음 또한 삶의 일부이고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교육도, 웰다잉에 대한 인식도 너무 부족하다. 미국에선 초등학교부터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늘 죽음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만일에 대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학생들은 죽음에 관한 책이나 시, 음악을 통해 죽음을 느끼고 배운다. 장례식장과 묘지를 방문하고 생사관을 토론한다. ‘죽음 교육’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동양의 유교 사상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지만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공생의 지혜를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독일의 가톨릭 신부인 알폰스 데켄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 고난을 이겨나가는 방법”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죽음에 대한 교육을 시작하자. 학교폭력의 가해자에게는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권유하는 방안도 검토해 보자. 그러면 생명의 고귀함도 인생의 가치도 조금씩 깨닫게 되지 않을까. 웰다잉의 교육 효과를 한번 믿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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