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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영재 해외로 내모는 한국 교육

중앙선데이 2012.02.05 01:46 256호 31면 지면보기
제가 제일 처음으로 음악계의 관심을 받은 것은 정확히 10년 전, 이탈리아 베르첼리에서 열리는 비오티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2002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제가 한국에서만 공부했던 학생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훌륭한 한국 음악가들은 여럿 있었지만 국내 음악교육 아래에서만 성장한 전례는 없었으니까요. 당시 저는 한 번도 유학 경험이 없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갓 입학한 1학년 학생, 그야말로 순수 국내파였습니다. 그런데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처럼 그 뒤로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는 한국 학생들이 대거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바이올린과 피아노 분야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며 무수히 많은 저의 동료들이 한국에서만 수학했음에도 국제 콩쿠르에 나가 당당히 상위에 랭크되었습니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음악평론가 노먼 리브레히트가 한국인 다섯 명이 상위 입상한 지난해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관람하며 “이제는 한국이 음악계에서 가장 ‘핫(hot)한 놀이방(nursery)’이 아니냐”고 질문할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개개인의 성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한국 음악교육의 강세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1993년에 설립된 저의 모교, 한예종의 공이 혁혁했습니다. 졸업생의 시각으로 보는 이 학교의 가장 큰 강점은 예비학교와 영재 과정, 그리고 차별화된 입학시험입니다. 예비학교란 일반 초·중·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대학교의 교과과정을 예비로 연수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영재 과정이란 중학교 3년부터 고교 2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입학생을 선발해 내는, 쉽게 말해 자질을 갖춘 학생이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대학 입학의 특혜를 주는 제도입니다. 국제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많은 동료들과 저 자신이 이 두 과정의 대표적 수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별화된 입시 과정은 더 광범위한 혁신의 산물입니다. 지정된 과제 곡을 지극히 제한된 시간 내에 연주한 뒤 결과를 받는 여타 대학 입시와는 달리 한예종에서는 과제 곡 선정에서부터 많은 자유를 허용하고 20~40분이란 긴 시간을 통해 학생을 평가합니다. 또 정원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절대평가 원칙을 둬 합격 최대 인원에 상관없이 평가 기준에 합당한 학생만 선발토록 했습니다. 세계 음악계가 원하는 기준치에 더욱 근접한 음악도들을 선발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사실 한예종이 지닌 근본적 특수성, 즉 교육부가 아닌 문화관광부 산하의 교육기관이 갖출 수 있는 유연성에 기인합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다른 음악대학에서는 아직도 음악교육의 특수성이 완전히 무시됩니다. 특히 대학교수는 개인 지도를 할 수 없다는 법의 잣대가 음악에서도 적용되는데,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수준의 선생님들이 으레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음을 감안하면 원칙적으로는 한국에 있는 음악도들이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최상급 교육을 접하는 데 한계를 지니는 셈입니다. 조기 교육이 가장 중요한 음악에서 이를 극복하지 못한 학생들의 상당수가 이 점이 자유로운 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기도 하고요. 물론 이것은 교육자의 입장에서도 큰 손실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법이 금지하는 개인 지도를 어쩔 수 없이 하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동안 끊임없이 빈발해 온 예능계 입시 비리가 이 법안의 유지에 가장 크게 한몫했다고 합니다. 몇몇 교수들의 불공정한 행태가 많은 폐단을 낳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공정하고자 구현해낸 방법들이 거꾸로 예술성을 묵살하는 도구가 됐습니다.

겉으로 비춰지는 국내 음악교육의 긍정적 변화와는 무섭도록 무관하게, 아직도 전국의 음악대학 입시생들이 학생과 시험관 사이에 막이 쳐진 시험장에서 마르고 닳도록 연습한 과제 곡 앞부분을 무사히 쳐 내는 것을 지상 목표로 삼아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최근 한국 음악계가 거둔 성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한 한 학교의 성공 사례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더 많은 학생들이 더 좋은 음악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음악교육의 특수성이 먼저 인정되면서도, 교육자들의 양심을 기본으로 하는 제도적 혁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손열음 1986년 원주 출생. 뉴욕필과 협연하는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이다. 올해 열린 제14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2위를 했다. 음악듣기와 역사책 읽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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