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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깔끔 떨어도 탈

중앙선데이 2012.02.05 01:43 256호 31면 지면보기
필자가 위스콘신 대학에서 면역학 과목의 조교를 했을 때다. 알레르기에 관한 수업을 준비하던 중에 필자의 지도교수와 알레르기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별다른 알레르기를 갖고 있지 않던 필자는 그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었다. 필자의 지도교수는 적어도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이 알레르기에 시달리고 있을 거라 말했고 필자는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음 날, 수업 시작 전 필자의 지도교수는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손을 들게 했다. 놀랍게도 200여 명 가운데 70∼80%가 손을 들었다. 필자의 지도교수는 의기양양하게 필자를 바라보며 “봤지?” 하고 말했다.

알레르기와 관련된 국제기구에서 발행한 올해 보고서에선 알레르기 환자의 숫자를 전 세계 인구의 약 30∼40%로 추정한다. 알레르기와 관계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제약회사들은 치료약을 개발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지만, 아직까지 알레르기의 근본 원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알레르기 발생률이 현대사회로 오면서 현저히 높아지고 있고, 선진국일수록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서구식 생활방식이 알레르기 발생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주장이다.

1989년 영국의 데이비드 스트라챈 박사는 어릴 때 흙먼지에 노출이 적었던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이후에 ‘위생 가설’로 발전했다. 면역계가 발달하는 영·유아 시절에 흙먼지·병원균 등 여러 오염물질에 적당하게 노출되지 않을 경우, 나중에 적은 양의 이물질에도 면역계가 과민반응을 하게 돼 알레르기가 생긴다는 가설이다. 처음에는 이를 받아들이는 과학자가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꽤나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위생 가설이 설득력을 얻게 된 계기 중 하나는 92년 두 가지 유형의 T세포 발견이었다. 그중 하나인 Th1세포는 바이러스와 같이 숙주 세포 안에 사는 병원균을 공격하는 T세포 면역을 높인다. 반면 Th2세포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IgE 항체 등 여러 항체를 만드는 B세포 면역을 높인다. Th1과 Th2 세포의 활동은 항상 균형을 유지하며 면역계를 지탱하는데,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 경우 다양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유아 시절 병원균에 대한 노출이 너무 없을 경우 Th1세포의 발달이 약해지고 Th2세포가 과민하게 반응해 알레르기를 유발한다고 이 가설은 설명한다.

요즘엔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도 잇따른다. 미 애리조나 대학의 라이트 교수는 농촌지역 자녀들의 알레르기 발생 확률이 훨씬 낮았다고 밝혔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뮌헨 대학의 무티우스 박사는 각각 동·서독에서 자란 어린이들의 천식 발생률을 조사한 결과 대기오염이 훨씬 심각했던 동독 어린이들의 발생률이 훨씬 낮았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대기오염이 천식 발생을 막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음식 알레르기도 중국·인도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반면, 경제 수준이 높은 홍콩에선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알레르기의 발생에 유전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일수록 알레르기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는 가설은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더럽게 살 필요는 없다. 청결한 환경이 각종 전염병을 포함한 수많은 질병을 예방하기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말해주듯 과도한 청결은 오히려 면역체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알레르기라는 또 다른 병을 인간에게 안겨줄 수 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해도 그것이 지나치면 분명히 부작용이 생긴다.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좌우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주는 경고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편도훈 경북대 미생물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바이러스학과 종양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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