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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 내리고 머리털까지…진시황도 챙겨 먹어

중앙선데이 2012.02.05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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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보의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알아보는 제철 수라상 <9> 다시마

1995년 오키나와를 여행한 적이 있다. 오래 사는 사람들의 식생활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장수 식품 중 하나로 다시마가 들어 있었다. 중국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봉래(蓬萊)에서 구했던 불로장생약이 다시마라는 설도 있다. 다시마는 부기를 내리고 뭉쳐 있는 혹을 다스린다고 한다. 모발에 영양분을 주어 머리털 뿌리를 탄탄하게 해주어 머리털을 잘 자라게 한다. 무기질 속에 포함된 요오드는 동물의 발육 및 신진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요오드가 부족하면 체내 지방의 연소를 저해해 대사장애와 태아발육 불량 등의 원인이 된다.



다시마를 먹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시대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사마(多士麻)·곤포(昆布)·해대(海帶) 등으로 불려왔다. 식용으로 기록된 것은 8세기다. “신라에는 해인(海人)이라는 잠수를 전업으로 하는 집단이 있어 이들이 다시마를 따서 배 위에서 건조시켜 저장용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또 『당서(唐書)』의 ‘발해전(渤海傳)’에는 “발해 남쪽 바다에 다시마가 있고 이것을 당나라에 수출한다”고 했다. 여기서 남쪽 바다란 연해주 남쪽의 해안, 곧 함경도라는 설이 있다.



발해 다시마는 동아시아에 명성을 떨쳤다. 720년부터 약 200년 동안 모피·꿀과 함께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다. 이렇듯 다시마에 대한 외국의 선호는 조선왕조가 개국되고 나서도 이어졌다. 1429년(세종11)에는 명 황제의 요청에 따라 곤포 400근을 중국으로 보냈다. 갑상선 비대증이나 고혈압 등을 예방해 주는 식품으로 존중되고 있었던 까닭이다.



일찍이 우리 민족이 즐겨 먹었던 다시마는 갈조류(褐藻類)에 속하는 2~3년생의 바닷말이다. 한조(寒朝)의 간조선(干潮線, 24시간 중 가장 낮은 물 높이까지 빠져나간 때의 썰물 상태) 부근에서부터 4~5m 정도의 깊은 곳까지의 바위 위에 붙어 생육한다. 그런데 조선왕조에서 민호(民戶)에 부과한 진공은 이름이 달랐다. 다사마(多士麻)란 이름으로 전라도의 강진·광양·무장·부안·영암·해남에서, 곤포(昆布)란 이름으로 함경도의 명천·길주·경성에서 이루어졌다. 남쪽 것을 다사마라 하고, 북쪽 것을 곤포라 한 까닭은 북쪽 것이 남쪽보다 두껍고 폭이 넓은 양질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허균도 『도문대작』(1611)에서 “북해산(北海産) 곤포가 가장 좋다”고 했다. 바닷물이 차가운 북쪽의 생육조건이 더 합당하다는 것이다.



궁중으로 진공된 다시마는 중국 사신 접대 때 일상식이나 연회식의 소선(素膳)으로 올랐다. 궁중의 일상식이나 연회식에도 쓰였다. 먼저 일상식을 보자.

튀각(鬪藿, 투곽)이란 말이 문헌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사십이집』(1787)이다. “다시마를 기름으로 지진 것을 투곽(鬪藿)이라 하는데 이것은 소식(素食)의 찬이 된다”고 했다. 튀각은 옷을 입히지 않고 기름에 지지는 것이다. 다시마에 후추와 잣을 싸서 매듭으로 묶어 기름에 지지는 것을 송초전방(松椒煎方)이라 했다. 또 다시마만을 기름에 지져내는 것을 해대전방(海帶煎方)이라 했다(『옹희잡지』, 1800년대 초).



송초전방은 다시마에 후추와 잣을 쌌지만 다시마가 주인공이 아니라 잣(松)과 후추(椒)를 주인공으로 삼은 듯하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 시기에는 ‘매 자반(結佐飯, 매듭자반)’이란 명칭으로 바뀌어 “기름에 지진 다음 설탕과 잣가루를 뿌려 먹는다”고 했다. 일종의 튀각이다.매듭자반이란 명칭에서 암시하듯 궁중에서 소선의 하나였던 튀각과 부각류는 모두 자반(佐飯, 보존성이 있고 맛이 진한 밑반찬 무리로 밥 먹을 때 도와주는 찬)에 속했다. 기록상으로는 『원행을묘정리의궤』(1795)에서 처음 보인다.



자반은 빠르게 확산됐다. 1830년께에는 경성에 자반만 파는 자반전(佐飯廛)이 있을 정도로 대중화됐다. 이곳에서는 다시마튀각과 다시마부각도 팔았다. 다시마는 탕거리가 되기도 했다. 1795년(정조19) 윤2월 9일 석수라에서 혜경궁 홍씨(정조대왕의 어머님)께 올린 수전지(水盞脂)가 그것이다. 수전지는 다시마가 주재료가 된 경우지만 완자탕 등에서는 국물을 맛있게 하기 위한 부재료로도 쓰였다.다음으로 연향식에서 보면 편증(片蒸)이나 숙편(熟片)을 다시마로 만들어 소선(素膳)의 하나가 됐다. 반듯반듯하게 자른 다시마에 간장 등의 양념을 넣고 무르게 국물 없이 바짝 졸였다. 그리고 잣가루를 고물로 묻혔다. 이들은 대개 녹두녹말로 만든 국수와 한 조가 되어 올랐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질 좋은 다시마를 물행주로 닦아 부드럽게 한 다음 반듯하게 잘랐다. 여기에 대구포·광어포·홍어포·오징어포·문어포·전복포·건치·쇠고기포 등과 잣을 합해 말아 쌌다. 이것은 술안주로 진찬과 진연 등의 잔칫상에 올랐다.이렇듯 조선시대에는 왕에서부터 민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시마를 먹었다. 그 후손인 우리는 과연 다시마 찬품을 얼마나 계승,발달시키고 있을까.






다시마부각

우선 다시마를 반듯반듯하게 자른다.되게 지은 찹쌀밥을 더울 때 다시마의 한쪽 면에만 붙여 햇볕에 말린다. 기름에 지져 낸다.



김상보 대전보건대 전통조리과 교수. 사진 수학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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