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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론자들이 말하지 않는 것

중앙선데이 2012.02.05 01:21 256호 2면 지면보기
다시 재벌개혁 시즌이다. 덩달아 영화 ‘돌아온 장고’의 주인공들도 돌아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의 재벌개혁론자들이 대거 무대의 전면으로 복귀했다. 오자마자 마구 총질을 해대는 것도, 외치는 레퍼토리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출자총액 제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 규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징벌적 손해배상, 계열분리 명령, 소액주주권 강화, 중소기업 보호, 경영권 세습 억제 등등.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그때는 재벌을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며 몰아붙였지만 지금은 ‘양극화의 주범’이라 지칭하는 게 다를 뿐이다. 양극화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야 누가 나무라겠는가. 1인당 소득은 2만 달러를 넘었지만 과거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사람은 1%가 채 안 된다는 설문조사가 허다하다. 99%는 삶이 팍팍해졌다는 얘기다. 1%의 방종을 규제해 양극화의 심화를 막겠다는 심정이 이해되는 까닭이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다. 돌아온 장고들이 정말 고민해야 할 건 이 대목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자신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어떻게 했는지를 돌이켜보라. 그때도 재벌개혁이 정권 차원의 과제였고, 장고들의 활약상도 눈부셨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들이 그토록 기대를 걸었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출총제는 유명무실했고, 지주회사 규제는 대폭 풀렸으며, 순환출자 금지는 도입되지 못했다. 왜냐? 분위기에 휩쓸려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댔기 때문이다. 사실을 호도하거나 부작용을 과장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장 엔진이라는 재벌의 순기능까지 말살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순기능은 살리고 부작용만 정확히 없앨 정밀한 정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투자가 부진하고, 성장동력이 사라지고, 외국 기업에 인수합병(M&A)될 가능성만 높아졌다. 노무현·김대중 정부가 재벌개혁의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돌아온 장고들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실패한 레코드를 다시 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걸 쓰는 건 그래서다. 우선 재벌이 양극화의 주범이라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양극화의 주범은 세계화, 그중에서도 금융 세계화다. 장고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재벌이 주범이라고 강변한다. 재벌에 책임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과 주범이라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굳이 따지자면 금융 세계화 시스템을 고스란히 수용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게다가 재벌을 강력 규제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지니계수만 봐도 1997년 0.264에서 2007년 0.295로 올라갔다. 그만큼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의미다. 반면 재벌 규제를 완화한 이명박 정부에선 0.288(2010년)로 낮아졌다. 재벌이 주범이 아니라는 또 다른 증거다.

재벌 규제를 완화했더니 경제력 집중이 더 심해졌다는 주장도 그렇다. 장고들은 “4대 그룹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년 전 43%에서 51%로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틀린 얘기다. GDP는 부가가치 개념으로 매출액과 맞비교해선 안 된다. 비교하려면 국내 전체 기업의 매출액과 하는 게 맞다. 재벌 규제가 한창이던 2001년 30대 그룹의 매출액은 전체 기업의 41.2%였다. 하지만 2009년엔 38%로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가 재벌을 규제하지 않아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다’며 그것을 재벌 규제의 명분으로 삼는 장고들의 주장은 명백히 과장됐다. 출총제 부활도 잘못된 주장이다. 원래는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게 맞다. 하지만 예전에는 계열사 간 출자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출총제를 시행했던 거다. 노무현 정부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현직에 있을 때 “출총제는 거칠고 무식한 제도”라고 비판했던 이유다.

재벌개혁론자들이 말하지 않는 게 어디 이뿐이랴. 몰라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알면서도 말을 않는 눈치다. 그렇다면 장고들의 속내는 명백하다. 1%와 99%의 편 가르기를 통한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일 거다. 그래서 의문이다. 나라 경제를 망치고라도, 국민을 속여서라도 선거에 이기는 게 그들이 원하는 것일까. 잘못된 정책의 후유증은 역시 국민 몫으로 돌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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