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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뜯지 풀 뜯겠느냐며 건물주도 개업 말렸죠”

중앙선데이 2012.02.05 00:43 256호 14면 지면보기
최정동 기자
16년째 음식 장사를 해 온 박혜수(45·사진)씨는 지난해 6월 강남 한복판에 ‘가로비’라는 채식 뷔페를 열었다. 박씨는 “‘채식 붐’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뚜렷한 트렌드라 생각했다”고 창업 동기를 설명했다. 가로비는 우유·달걀은 물론 벌꿀도 쓰지 않는 순수 채식 전문식당이다. 60석 규모로 30여 가지의 채식 메뉴를 제공한다.

채식 뷔페 ‘가로비’ 박혜수 사장

박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개점 6개월 만에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전단지 한 번 뿌린 적 없지만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다. 최근에는 대형 백화점으로부터 입점 제의를 받기도 했다. 박씨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 백화점 입점은 이른 것 같지만 이런 제안이 들어오는 걸 보면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젊은 층이 많은 강남, 그중에서도 고깃집이 즐비한 골목에 채식 뷔페를 연다는 건 모험이었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 입주한 빌딩 주인까지도 ‘젊은 사람들이 갈비를 뜯지 풀을 뜯겠느냐’며 만류했다. 그만큼 채식은 노인이나 환자들처럼 특정한 사람들이 한다는 편견이 강했다. 하지만 박씨는 오히려 젊은이들이 새로운 채식 인구로 떠오를 것이라고 봤다. ‘송이버섯 탕수육’ ‘콩까스’ ‘냉 파스타’처럼 젊은이들을 위한 메뉴 개발에 주력했다.

가로비의 메뉴에는 이 밖에 각종 채소·과일 샐러드를 비롯해 콩불고기·밀강정·두부스테이크 등이 있다. 튀김·고기·면·빵 어디에도 동물성 재료는 안 쓴다. 기름도 식물성이고, 김치에도 젓갈을 넣지 않는다.

반응은 좋은 편이다. 지난달 27일 점심 학원 친구 2명과 이곳을 찾은 안세라(24)씨는 “채식당에 온 건 처음인데 맛은 물론 포만감도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일행인 허지선(22)씨는 “1년 전부터 다이어트를 위해 종종 채식을 한다”며 “가로비 같은 채식당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체 손님도 늘고 있다. 박씨는 “연말 연초에 식당을 통째로 빌려준 경우만 다섯 번 있었다”며 “처음에는 왜 이런 데서 모임을 하느냐며 불평하던 손님들도 밀로 만든 고기나 감자전분으로 만든 양장피를 맛보고는 감탄하며 돌아간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박씨가 외식업에 뛰어든 데는 모친 최청자(68)씨의 영향이 컸다. 최씨는 국내 최초의 커리전문점 ‘델리’ 창업주다. 1984년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1호점을 낸 뒤 직영 점포를 12개까지 늘렸다. 사람들이 즉석 카레밖에 모르던 시절, 커리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은 일종의 틈새시장이었다. 박씨는 “커리전문점이 대중화된 것처럼 채식 뷔페도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한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식 식당 운영이 쉽지만은 않다. 일반 식당과 달리 값만 따져 재료를 구할 수 없는 게 문제다. 박 사장은 “기름·식빵 등 핵심 식재료는 베지푸드나 요기헛처럼 비건식품만 취급하는 전문업체에서 구한다”며 “일반 재료도 식자재 납품업자에게 채소, 과일, 스파게티 면류는 꼭 이러저러한 걸로 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한다”고 말했다. 주요 재료인 채소와 과일·콩의 가격이 들쭉날쭉한 게 골치 아프지만 어떻게든 구색을 갖춰 가격에 비해 만족도를 높이는 게 박 사장의 노하우다.
스스로도 1년 전부터 채식을 하고 있는 박씨는 “여건이 되면 채식 아카데미를 만들어 채식 보급에도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또 뷔페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저렴한 채식 도시락 판매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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