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엣지는 행복합니다

중앙일보 2012.02.01 00:00 종합 17면 지면보기
마약탐지와 헌혈 봉사로 꼬박 9년을 보내고 새 주인을 기다리는 ‘공혈견(供血犬)’ 엣지. 엣지는 3일 은퇴식 후 새 주인에게 입양돼 여생을 마치게 된다. [김도훈 기자]


경기도 성남시 하탑초등학교 5학년 손원정(12)군이 지난달 30일 서울대 동물병원 이관구 수의사에게 보내온 편지. 손군은 “엣지에게 필요한 것을 사주라”며 5만원도 보내왔다. [정원엽 기자]
“‘엣지’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어요. 마음 착한 엣지가 주인이 없으면 안락사를 맞는다는 걸 알고 계속 울었어요. 제 꿈은 수의사입니다. 선생님이 엣지를 살려주시면 제가 더 나은 수의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헌혈견으로 은퇴 … 입양 안 되면 안락사 예정
본지 보도 나가자 100여 명 “내가 입양할래요”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손원정(12)군이 지난달 30일 서울대 동물병원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 손군은 “엣지에게 필요한 것을 사주라”며 현금 5만원을 함께 전달했다.



 이처럼 ‘공혈견(供血犬) 엣지가 입양자를 찾는다’(1월 25일자 2면)는 본지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31일까지 서울대 병원에 입양을 묻는 전화가 수백 통 걸려 왔다. 입양 신청서도 100건을 넘어섰다. 신청자는 초등학생부터 전직 국회의원까지 다양했다. 해외에서도 연락이 쇄도했다.



미국 뉴욕총영사관에 근무하는 한 외교관은 e-메일로 “엣지의 입양상황을 알고 싶다”고 물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동물보호단체에서도 서울대 동물병원에 입양의사를 전해 왔다.



 서울대 동물병원은 지난달 30일 엣지의 입양신청을 마감했다. ▶대형견을 키운 경험이 있고 ▶견사와 마당이 있으며 ▶가족이 동물을 좋아하는지 등을 따져 입양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입양자는 면담과 현장실사를 거쳐 2일께 확정되고 3일엔 엣지의 은퇴식이 열린다.



 공혈견 제도에 대한 항의도 있었다. “국가와 다른 개를 위해 봉사한 엣지를 안락사시켜서는 안 된다” “동물의 피를 뽑는 것 자체가 동물학대”라는 의견들이었다. 이에 대해 서울대 동물병원 부원장 황철용(수의학) 교수는 “엣지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다른 개들을 살리기 위해 헌혈을 해야 한다”며 “공혈견에 대한 윤리적 관리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답했다.



 엣지의 견생(犬生) 3막은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동료 공혈견들의 어려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서울대의 경우 엣지 은퇴 후 공혈견은 7마리가 남는다. 그중 ‘수리’는 은퇴 시기를 넘기고도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공혈에 적합한 개의 연령은 2~7세이지만 수리는 열 살이 넘었다. 수리마저 은퇴하면 긴급혈액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수리가 그저 언제 올지 모르는 후임만 기다리고 있는 이유다.



 공혈견이 부족한 이유는 기증된 개들이 ‘해부실습용’으로 쓰인다는 헛소문이 퍼지면서 정부기관과 일반인의 공혈견 기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황 부원장은 “지금까지 기증견들이 실험용으로 사용된 전례는 한 건도 없다”며 “지난 14년간 질병으로 죽은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분양됐다”고 해명했다.



 공혈견 관리 시스템 미비도 수리의 은퇴를 막고 있다. 해외에선 건강한 대형견 주인들이 자원해 정기 헌혈에 나선다. 보통 대형견의 정기검진 때 헌혈도 같이한다. 반면 한국은 반려견(애완견)의 90%가 소형견인 데다 공혈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아 혈액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대 동물병원의 한상훈 수의사는 “사람의 헌혈처럼 개도 정기적인 헌혈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대형견이 체계적으로 공혈을 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