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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중국의 미국 따라잡기

중앙일보 2012.02.01 00:00 종합 28면 지면보기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1. 2005년 1월. 중앙일보는 새해 기획으로 주한 4강 대사 릴레이 인터뷰를 게재했다. 미→중→일→러의 순으로 하루에 하나씩. 그러자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미국대사 다음으로 중국대사 인터뷰가 나갔기 때문이다. 일본대사를 제쳤다는 점에 리빈(李濱) 당시 주한 중국대사는 거의 감격 수준이었다고 한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의 패배 이래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일본을 누르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참고로 본지가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요국 대사 릴레이 인터뷰를 게재했을 때의 순서는 미→러→독→일→중의 순으로 중국이 꼴찌에 자리해 있었다.



 #2. 지난해 11월 말 한·중 언론인 모임인 ‘한중특파원클럽’이 탄생했다. 각계 인사가 참석해 모임 발족을 축하했다. 중국대사관에선 장신썬(張森) 대사를 대신해 수석관원이자 참사인 천하이(陳海)가 나왔다. 그러나 이튿날 참석자를 전하는 한국 언론에 천하이는 ‘부대사’라 표기됐다. 중국대사관에선 지금도 천하이를 외부에 소개할 때 부대사라 말하기를 좋아한다.





한데 재미있는 건 이 부대사란 말이 국제법적으로는 없는 용어라고 한다. 어떻게 된 걸까. 문제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오래전부터 부대사란 말을 써 왔던 데 기인한다. 현재 미국대사관의 공관차석(Deputy Chief of Mission)이자 공사참사인 마크 토콜라는 한국에서 부대사라 불린다.



‘부대사’라는 말에는 뭔가 좀 더 있어 보인다. 중국대사관이 천하이를 부대사라 호칭하는 데는 ‘미국도 하는데 중국이 못할 게 무엇이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국 내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일본은 제친 지 오래고, 이젠 미국을 따라잡는 게 목표다.



중국의 야심을 북돋운 건 물론 2008년 뉴욕발(發) 금융위기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부대사’ 호칭을 쓰기 시작한 게 2008년 이후의 일이다. 이때부터 한국에서 미국과 동등한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중국의 은근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중국의 여러 지인들로부터 ‘한국이 미국에도 이렇게 대하나’라는 푸념 섞인 말을 들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2010년 초 ‘21세기엔 중국이 미국을 넘어 일등국가가 되자’는 주장을 담은 책 『중국몽(中國夢)』이 출간돼 화제가 됐다.



이 책의 저자인 류밍푸(劉明福) 중국 국방대학 교수가 중국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을 소개해 눈길을 끈다. 그에 따르면 미·중 싸움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결투식이다.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다 보면 ‘둘 다 패자가 된다(兩敗俱傷)’는 것으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두 번째는 권투식. 무정한 사각의 링에 올라 치열하게 난타전을 벌이다 보면 승패가 갈리겠지만 이 역시 얻는 건 상처뿐인 영광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류밍푸 교수가 중국에 권하는 건 세 번째 육상경기식이다. 육상 중에서도 단거리가 아닌 마라톤이 좋다고 한다. 서로 목표를 향해 달리자는 것이다. 그는 골인 지점인 42.195㎞를 시간으로 환산해 90년을 대입시킨다.



그의 셈법에 따르면 처음 30년을 투자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추월한다. 그 다음 30년을 더 노력해 종합국력에서도 미국을 따라잡는다. 마지막 30년을 더 달리면 중국의 1인당 GDP가 미국을 넘어서 마침내 21세기가 끝날 무렵엔 중국이 세계 1등 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중국인다운 여유 있는 시간 계산이다.



영국이 청으로부터 홍콩을 99년 조차할 때, 영국은 그 99년을 영원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나라 중국 입장에서 그 99년은 찰나(刹那)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였는지 모른다. 실제로 중국은 홍콩을 더 빨리 회수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복 시점을 99년 조차가 끝나는 때인 1997년으로 맞추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영국을 추월하고 미국을 따라잡자’는 ‘초영간미(超英美)’ 구호를 부르짖은 게 약 반세기 전인 1958년 대약진(大躍進)운동을 벌이면서였다. 당시 ‘15년 안에 영국을 추월하고, 20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자’던 마오쩌둥의 성급함은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남기는 참담한 실패로 끝난 바 있다.



그러나 한낱 ‘구호’ 정도로 여겨지던 말이 이젠 실현 가능한 ‘현실’로 다가서는 느낌이다. GDP 규모에서 중국은 2006년 영국을 추월했고, 2010년엔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 이젠 미국을 따라잡을 일만 남았다.



 골드먼삭스는 2003년 예측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해를 2041년으로 잡았다. 그러나 지난해엔 그 시점을 2027년으로 14년이나 앞당겼다. 그만큼 중국의 추월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미국 추월의 해’를 2019년으로 예상한다.



그런가 하면 국제통화기금(IMF)은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이 2016년에는 세계 GDP의 18%를 차지해 미국(17.7%)을 따돌릴 것이라고 한다. 올해 미국 대선의 승리자가 누가 되든 그가 미국을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통치하는 마지막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중국의 미국 따라잡기 운동의 여러 형태 가운데 하나를 ‘천하이 부대사’라는 말에서 읽는 듯하다. 주한 4강 대사 인터뷰에서 중국대사 인터뷰를 가장 먼저 싣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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