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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29) 은행 구조조정 <2> 은행 살생부

중앙일보 2012.02.01 00:00 경제 2면 지면보기
1998년 6월 2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이헌재 금감위원장이 5개 퇴출은행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즉시 이들 은행은 영업 정지됐다. DJ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은행 구조조정을 6월 말까지 끝내겠다”고 약속해 놓고 있었다. [중앙포토]


“정말로 공정하게 평가해 주십시오.” 인천 한국은행 연수원에서 은행 경영평가위원들에게 당부를 건넨 뒤 나는 다시는 이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경평위원들은 외부와 철처히 단절됐다.

5개 은행 퇴출 보고받은 DJ “원칙대로 하세요”



가족들과 딱 한 차례 통화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게 전부였다. 연원영 구조개혁기획단 총괄반장이 양승우 경평위원장에게 두어 차례 전화해 진도를 체크했다. 경평위 회의 내용은 모두 녹취됐다.



 이들이 연수원 밖으로 나온 것은 딱 두 차례였다. 첫 번째는 1998년 6월 24일, 합숙 닷새째 날이었다. 경기도 일산 국민은행 연수원에서 은행장들을 면담할 때다. 경영 정상화 계획은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자본은 어떻게 늘릴 것인지 등을 질문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충청은행 측은 자유민주연합 이인구 의원을 대동하고 와 구설에 올랐다. 국회 재정경제위원인 그는 “충청은행은 지역 은행으로 꼭 살려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계룡건설은 충청은행의 주요 주주였다. ‘분위기를 이렇게 모르나. 역효과가 날 뿐이다…’. 속으로 혀를 찼다.



 두 번째 외출은 같은 달 29일 새벽. 평가위원들은 인천 연수원에서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사무실로 이동했다. 아침 8시에 열린 임시 금감위 참석을 위해서다. 금감위는 이 자리에서 12개 은행의 평가 결과를 의결했다. 결과는 이미 25일 통보됐다. 전국을 뒤흔든 퇴출은행 명단, 살생부(殺生簿)였다.



 조건부 승인-일단 살아남은 은행은 7개였다. 조흥·상업·한일·외환·강원·충북·평화은행. 이들 은행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이 중 몇몇도 결국 얼마 안 가 퇴출의 운명을 맞고 말았지만 말이다. 즉각 퇴출을 의미하는 ‘불승인 판정’을 받은 은행은 다섯 개였다. 경기·동화·동남·대동, 그리고 충청은행. 한국 금융사 최초의 퇴출 은행 명단은 이렇게 확정됐다.



 나는 이 명단을 이미 25일 오후 삼청동 안가에서 DJ에게 보고했다.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 연원영 구조개혁기획단 부단장과 함께였다.



 “퇴출 은행 명단이 나왔습니다.”



 “네 개입니까, 다섯 개입니까.”



 “다섯 개입니다.”





 DJ는 두 장짜리 보고서를 넘겼다. 잠시 눈살을 찌푸린 것 같다. 충청은행의 이름을 봤을 것이다. 자민련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된 DJ다. 그의 부담을 나라고 몰랐겠는가. 나 역시 김용환 전 자민련 수석부총재의 추천으로 금감위원장이 됐다. ‘이런 저런 사정 따질 때가 아니다’. 나도 알고 DJ도 알았다. DJ는 곧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평가는 공정하게 했소.”



 “그렇습니다.”



 공정했느냐. 그 질문엔 자신이 있었다. 평가위원들은 원칙에 따라 은행을 줄세웠다. 금감위는 경영평가위원회의 퇴출 명단에서 단 하나의 은행을 빼냈을 뿐이다. 근로자 은행이던 평화은행이었다. 그나마 정치적 고려는 아니었다. 평화은행은 3월 말 기준 순자산이 123억원이었다. 당시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는 자산이 부채보다 많은 은행은 퇴출시키지 못하게 돼 있었다. 나로선 평화은행의 순자산이 플러스였던 것이 차라리 고마웠다. 평화은행이 퇴출됐더라면 잡음이 더 심했을 것이었다.



 만약 DJ가 이렇게 물었다면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 나머지 은행들은 살아남는 것이오.” 경영평가를 통해 들여다본 은행의 재무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비교적 건실하다고 꼽힌 조흥·상업·한일·외환 은행도 BIS 비율이 1~4%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봐야 했다.



 경영평가위원회가 ‘승인’ 판정을 내린 조흥·상업·한일·외환은행을 금감위가 ‘조건부 승인’으로 최종 판정한 것은 그래서였다.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는 경고 메시지를 준 것이다. 당시 평가에 참여한 윌리엄 헌세이커 ING베어링증권 이사가 네 개 은행에 대해 “이런 은행에 승인 판정을 해도 되는 거냐”고 따진 것도 그래서다. 물론 부실이 은행 잘못만은 아니다. 기업이 쓰러지니 은행도 덩달아 부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더 미래가 두려웠다. 기업이 살아나야 은행이 살 수 있다.



 한동안 보고서를 들여다보던 DJ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원칙대로 하세요.” 은행 불사(銀行 不死)의 신화가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등장인물



▶이인구(80)




군 출신 정치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5대 국회의원(자민련)을 지내던 98년 충청은행 구명 운동에 앞장선다. 현 계룡건설 명예회장.



하루 10~14시간 토론

4시간 이상 잔 적 없어



양승우 당시 평가위원장




1998년 6월, 국내 첫 은행 구조조정에서 판관 역할을 한 은행 경영평가위원회. 당시 평가위원장을 맡았던 양승우(63·사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장은 “엄청난 부담감 속에서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며 토론을 거듭했다”고 합숙 평가 기간을 돌아봤다.



 -열흘간의 합숙 분위기는 어땠나.



 “비장했다. 부담감이 엄청났다. 이 결과에 따라 은행이 퇴출된다, 한국 경제에 결정적 역할을 할 구조조정이다,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첫날 위원들에게 ‘중대한 일에 우리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자. 사명감을 갖자’고 당부했다.”



 -회의는 어떻게 진행됐나.



 “하루 10~14시간 토론한 것 같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기준을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자료 검토하느라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밖에 못 잤다. 그런데도 딴짓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회의 시간에 누가 잠시 나갔다 온 적도 없었다.”



 -정치적 외압은 정말 없었나.



 “외압뿐 아니라 연락 자체가 없었다. 신기할 정도였다. 내부에서도 철저히 공정을 기하자는 분위기였다. 위원들끼리 12개 은행을 하나씩 맡아 검토했는데, 이때 위원들의 소속 회사와의 거래 여부는 물론 위원들 고향까지 고려해 은행을 배분했다. 사심이 개입될 여지를 없앤 것이다.”



 -평가 뒤 은행 구조조정을 지켜본 심정은.



 “복잡한 감정이었다. 구조조정으로 많은 분이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 것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구조조정 없이는 경제가 회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은행 구조조정은 위기 극복에 물꼬 역할을 했다. 내 전문성이 작게나마 기여했다는 데 대해선 자부심을 느낀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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