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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알뜰하지 않은 알뜰주유소

중앙일보 2012.02.01 00:00 경제 12면 지면보기
한은화
경제부문 기자
“생각보다 싸지 않아서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네요.” 지난달 26일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경동 알뜰주유소 1호점에서 만난 이은영(34)씨의 말이다. 그는 주유소가 있는 구내에 살고 있다. 이씨뿐 아니라 이날 주유소에서 만난 대다수의 고객은 “기름값이 싸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기름값은 L당 1918원(보통 휘발유 기준)이었다. 지난해 12월 말 처음 문을 열었을 때 1843원이었으니 한 달 사이 75원 올랐다. 같은 기간 처인구의 주유소 기름값은 평균 38원 상승했다.



 치솟는 기름값에 대해 정부는 “판매물량이 많아 국제유가 상승분이 빨리 된 탓”이라고 해명했다. 정부의 말처럼 국내 기름값은 국제시장과 경기에 맞물려 있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로 국제유가가 출렁이면 국내 가격도 함께 움직인다. 정부가 주변보다 L당 100원 싼 기름을 제공하겠다고 한 알뜰주유소의 꿈은 이 같은 현실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실제로 알뜰주유소를 찾은 이날 서울시내에서는 이곳보다 더 싸게 기름을 파는 곳이 꽤 있었다. 불광동 불광주유소의 휘발유값은 L당 1908원이었다. 불광주유소 사장은 “인근에 싸게 기름값을 공급하는 주유소가 생겨 지난해 9월 가격 경쟁이 시작됐다”고 털어놓았다.



 알뜰주유소 2호점은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형제주유소로 낙점됐다고 한다. 1호점이 있는 곳처럼 이 주유소가 있는 지역도 기름값이 싸다. 억지로 가격을 싸게 맞추려다 보니 기름값이 원래 싼 지역만 골라 알뜰주유소가 들어서고 있는 건 아닌지. 알뜰하지 않은 알뜰주유소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알뜰주유소 기름 공급처인 현대오일뱅크·GS칼텍스는 알뜰주유소에 L당 40원가량 싸게 기름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정도의 가격 할인은 대형 주유소와 같은 1등급 고객도 받고 있다. 결국 알뜰주유소의 가격경쟁력은 셀프서비스로 운영해 인건비를 줄이는 수준이다. 땅값과 인건비가 비싼 지역에는 알뜰주유소가 들어설 수 없는 배경이다. 정부가 알뜰주유소 한 곳에 지원하는 돈은 2300만원이다. 뜻대로 2015년까지 1300개의 주유소가 알뜰주유소로 전환한다면 300억원가량의 돈이 든다. 잘못된 정책이라면 우격다짐으로 추진할 필요는 없다. 아까운 세금만 고스란히 낭비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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