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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과학기술은 우리끼리 하도록 놔두세요

중앙일보 2012.02.01 00:00 경제 12면 지면보기
김종갑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
미국 정부는 태동 단계의 실리콘밸리에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답변은 명쾌했다. “우리끼리 하도록 놔두세요.”(Leave us alone) ‘실리콘밸리의 아버지’ 프레더릭 터먼 스탠퍼드 공대학장은 교내에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HP 등 유수한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는 이처럼 비전 있는 민간 지도자들의 자생적 노력으로 탄생했다. 지원과 간섭에 익숙한 우리 정부, 지도력과는 거리가 있는 우리 대학이 본받을 사례다.



 시장이 커지면 정부는 줄어야 마땅하다. 사회주의 중국도 그렇게 해왔다. 한국은 산업지원 예산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정부기관들은 조직과 예산 확대를 최대의 치적으로 삼고, 이해집단들은 선거철을 맞아 무절제한 증설·증액 요구를 내놓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 부처의 부활 주장도 있다. 행정효율과 국민 부담보다는 표심을 쫓는 여야 정치권의 반응이 걱정스럽다.



 우리는 ‘과학기술입국’을 지향해야 하고, 과학기술인이 국가정책 결정에 광범위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책의 ‘구체성·효용성’보다는 ‘포장과 거대담론’ 중심이고, 따라서 디테일에 강한 기술직이 중용되지 못한다. 독일 같은 과학기술 중심 국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결국 과학기술인들은 ‘우리만의 클럽’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직 부활은 답이 될 수 없다. 냉정하게 오래 지속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먼저 일부 주장과는 달리 정부가 ‘과학기술 푸대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3.74%로 이스라엘·핀란드에 이어 세계 3위다. 규모는 미국·일본·독일·중국·프랑스·영국에 이어 세계 7위로 GDP 15위보다 크게 앞선다. 정부부담률은 28%로 미국보다는 낮지만 일본보다는 훨씬 높다. 지원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지원 성과의 제고가 관건이다.



 과학기술정책을 종합 조정하는 ‘컨트롤타워’로 대통령 직속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설립됐다. 범정부 차원의 정책 수립, 주요 사업 예산조정, 사후 평가관리 업무를 관장하고 있으나 출범 초기로서 역할 정립을 위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또한 일본과 독일처럼 교육과 과학기술 통합조직을 둔 결과 과학기술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다고 ‘제2 컨트롤타워’를 추가로 설치할 일은 아니다. 두 기관의 운영을 정상화하면 된다.



 산업기술 및 정보기술(IT) 활용·융합 사업은 수요 부처들이 맡도록 4년 전 조직개편이 있었다. 산업의 다기화 추세로, 이제 기술이나 IT를 단일 부처가 전담해서 공급하기는 불가능하다. 중요성이 낮아져 부처가 폐지된 것이 아니라 ‘범정부 사업’으로 격상된 것이다. 미국·일본·독일·중국 등 거의 모든 국가들도 같은 이유로 부(部) 단위 전담조직을 두지 않는다. 소관 부처들이 과학기술인 등 전문가를 중점 배치해 관리 역량을 키우는 것이 과제다.



 정부는 미래전략을 가지고 기초과학과 원천 및 응용기술을 육성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산업화를 통한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에 있다. 우리의 경제 규모와 산업여건을 반영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최종 수요자인 산업계와 국민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하고, 과학기술인 일색의 편향된 시각, 실용성 없는 ‘기술을 위한 기술개발’을 피해야 한다. 산업 분야에는 기업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어렵고, 실패의 확률은 높지만 먹거리가 될 기술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 기술개발 성공률이 높은 것은 불필요한 지원이 많기 때문이다. 민간투자를 구축하는 과도한 지원, 나눠 먹기식이나 불합리한 편중 현상을 시정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정부조직 부활·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조직 운영의 문제다. 일부의 조직 부활 요구가 계속된다면 ‘과학적 합리성’을 굳게 믿고 있는 산업계와 국민은 이들의 ‘불합리한 이기심’에 실망할 것이다. 성과 창출에 여념이 없는 대다수의 동료 과학기술인들에게도 누가 된다.



 국가 장래를 위해 17개 과학기술단체들이 뭉치고 있다.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많은 지도자들의 출현이 기대된다. 그들의 혜안과 대승적 역할에 과학기술의 중흥과 국가 백년대계가 걸렸다. 당대 최고 엔지니어 한 분의 말씀에서 희망을 본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 정부만 쳐다보고 선거철마다 조직개편 논쟁으로 허송세월 할 게 아니라, ‘우리끼리’ 잘해서 성과를 내야 합니다. 정부조직으로 말하면 특허청·공정거래위원회만 있어도 경제는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



김종갑 한국지멘스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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