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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만나러 한국 왔어요” … K팝 이은 ‘K릿’ 열풍

중앙일보 2012.01.30 00:00 종합 25면 지면보기
소설가 이문열씨가 고향인 경북 영양 두들마을에서 번역가들과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문열·양뢰(중국 교수)·올리베리오 코엘료(아르헨티나 작가)·부이 판안 트(베트남 교수)·모졸 따지아나(러시아 교수)·괵셀 튀르쾨쥬(터키 교수)·권혁률(중국 교수)·보양자야(몽골 시인). [영양=프리랜서 공정식]


그들의 한국어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26일 오후 경북 영양군 두들마을. 몽골·터키·러시아·베트남·아르헨티나·중국 등에서 한국 문학을 번역하는 외국인 7명이 모였다.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주연)이 주최한 해외 원어민 번역가 연수에 초청된 이들이다.

한국문학 해외서도 관심 폭발
영양 찾은 원어민 번역가 7명



 두들마을은 소설가 이문열(64)의 고향. 이날은 ‘이문열과 함께하는 문학 기행’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이들은 조지훈(1920~68) 시인의 처가가 있던 경북 영주 무섬마을을 거쳐 두들마을에 막 당도한 참이었다.



 이문열의 단편 ‘익명의 섬’에 대해 작가와의 토론이 벌어졌다. ‘익명의 섬’은 지난해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실려 화제가 됐다. 매끈한 한국어로 토론하는 외국인들은 거침이 없었다.



 ▶괵셀 튀르쾨쥬(터키 에르지예스 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부교수·40)=‘익명의 섬’은 두들마을에서 쓴 작품인가요.



 ▶이문열=이 마을에서 쓰진 않았지만 작품 속 마을과 유사한 점은 있습니다. 가령 같은 성씨(姓氏)를 쓰는 마을에 어떤 돌출적인 인물이 산다는 설정은 비슷하죠.



 ▶모졸 따지아나(러시아 민스크 국립 언어 대학교 부교수·31)=핵심 메시지가 뭔가요.



 ▶이문열=익명성에 대한 탐구입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익명성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쓴 것입니다.



 원어민 번역가들은 이날 두들마을 내 전통 식당에서 한국 전통 음식을 맛보고, 숙소인 경북 안동 국학진흥원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도 이문열 작가를 붙들고 한국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근 한국 문학에 대한 해외 독자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일각에선 “K팝에 이어 ‘K릿(lit)’ 열풍이 시작됐다”는 진단도 나온다. 지난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계기로 한국 문학 작품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 되는 모양새다. 『엄마를 부탁해』는 지난해 미국·영국 등 31개국에 판권이 팔리며 ‘문학 한류(韓流)’를 이끌었다.



 한국 문학 작품을 선점하려는 해외 출판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지난해 프랑스의 아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 ‘필리프 피키에’가 김애란·최제훈·김이설·구병모 등의 작품에 대해 저작권 계약을 체결한 게 대표적이다. 또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 ‘드 크레센조’가 출범하는 등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확산되는 중이다.



 K팝 열풍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문턱이 낮아진 북·남미 등에서도 K릿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최인훈의 ‘회색인’ 등을 번역한 아르헨티나 작가 올리베리오 코엘료(35)는 “한국 문학은 서구 문학과 다른 경험을 토대로 쓰여지기 때문에 문학적·예술적 가치가 독특하다”고 말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출간된 한국 문학 작품은 28개 언어권 519건(2001~2011년)에 이른다. 2001년 15건에서 2011년 54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번역원은 2009년부터 해외 독자를 대상으로 한국 문학 독후감 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 대회의 응모 편수 역시 2009년 700건에서 2011년 1034건으로 증가했다.



 K릿은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까.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등을 번역한 괵셀 교수는 “한국어 독해 능력이 있는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로 번역하는 한국 문학 작품이 늘어나야 한다. 그것이 한국 문학을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해외에 알리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K릿=한국 문학을 뜻하는 조어. ‘Korea’의 첫 글자 ‘K’와 문학을 뜻하는 영어 줄임말 ‘Lit(literature의 줄임말)’을 합친 말이다.



해외독자 말·말·말



-안 모제르(프랑스), 천명관 『고래』를 읽고



“서구 문학 전통과 동떨어진 이 소설은 놀랍고 이국적이다. 문장의 리듬, 독창성, 활기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성찰이 독자를 매료시킨다.”



-린야원((林雅雯·대만),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효도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읽어봤지만 이 소설은 달랐다. 소설의 글자 하나, 구절 하나 모두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페데리고 톰바리(이탈리아), 고은 『고은 시선』을 읽고



“고은의 시를 읽으면 짧은 순간이라도 독자와 시인이 구분될 수 없는 정도로 녹아버려서 천년 후의 미래와 천년 전의 과거를 보게 된다. 그의 시를 사랑한다.”



-니키타 라자렌코(러시아), 이청준 『서편제』를 읽고



“내가 모르던 한 민족의 삶의 모습과 사고를 묘사하고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를 논하고 있다. 한국이란 나라, 한국민을 넘어서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보도록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사카타 가스미(坂田香澄·일본), 한강 『채식주의자』를 읽고



“색채를 지닌 문장은 확실히 존재한다. 『채식주의자』를 읽은 사람은 이 이야기가 가진 선명한 색채에 압도당할 것이다.”



-애마 마리아 콜(영국),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



“이 소설의 등장인물, 배경, 묘사는 이미지를 통해 다층적인 사고를 유발한다. 모든 요소가 직설적, 시적 단계에서 긴밀히 연결돼 분단이라는 주제를 체계적으로 형상화한다.”



※ 자료=2010·2011 한국문학번역원 해외 독후감 대회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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