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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돈 모으려 백 들고 왔다는 라가르드 … 위기 진화엔 역부족

중앙일보 2012.01.30 00:00 경제 4면 지면보기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8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해 “나는 돈을 모으기 위해 백 하나를 들고 여기에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가방을 들어보이고 있다. [다보스 AFP=연합뉴스]


올 세계경제포럼(WEF)의 막이 오른 25일 스위스 다보스 회의장 안팎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유럽 재정위기 해결책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행동에 대한 희망’이라고 했다. 그 기대감의 원천은 앙겔라 메르켈(58) 독일 총리였다. 중국의 주요 리더는 올 포럼에 불참했다. 그는 꿩 대신 닭으로 비쳤지만 유럽 위기의 해결사이니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다보스 포럼 폐막
유럽위기 손 못 댄 다보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다보스 회의장 주변엔 ‘메르켈 경제참모가 귀띔하는데, 큰 건(획기적 대책)이 준비됐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이날 전했다.



 마침내 메르켈이 연단에 올랐다. 세계 정치·경제 리더 2600여 명이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의 연설 시점도 절묘했다. 닷새 뒤인 30일엔 유럽 정상회의가 열린다. 메르켈이 정상회의를 가늠하게 해줄 발언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일었다.



 정작 메르켈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대와 딴판이었다. 그는 유럽 구제금융 확대를 일축했다. “우리 젊은이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도록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획기적 대책에 대한 기대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우리가 지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저 “재정위기를 뛰어넘어 경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메르켈의 연설 이후 다보스 포럼에서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논의는 맥이 빠졌다. 영국 BBC 방송은 “말잔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논란이 무성했지만 의견일치는 거의 없었다.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경제학) 뉴욕대 교수는 “유럽중앙은행(ECB)이 획기적으로 돈을 풀어야 현재 위기가 진정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케네스 로고프(경제학) 하버드대 교수는 “돈을 찍어내선 해결되지 않는다”고 되받아쳤다. 두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하나 있었다. “유럽 정치·경제 리더들이 너무 굼뜨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무성한 말잔치 속에서도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솔직함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유럽 사태는 세계 위기여서 어떤 나라도 전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나는 돈을 모으기 위해 작은 백 하나를 들고 여기에 서 있다”고 말했다. 순간 폭소가 터졌다. 자신이 직전에 제기한 ‘자금 5000억 달러 조성-유럽 지원’을 에둘러 강조한 셈이었다. 하지만 IMF 자금 확충도 진전이 없었다. 가장 큰 돈줄인 중국의 수뇌부가 최근 20여 년 동안 다보스 포럼에 개근하다가 올해 참석하지 않은 탓이 컸다.



 미국 뉴욕 타임스(NYT)는 “서방 리더들은 260여 차례 포럼을 열고 글로벌 이슈를 논의했지만, 비공개·비보도의 보호막 뒤에서 말만 많이 하고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했다”고 꼬집었다.



 그사이 회의장 밖에선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판하는 다보스 포럼 점령 시위대가 스위스 경찰과 잇따라 충돌했다. 또 27일엔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을 A-로, 4위 경제국 스페인을 A로 각각 두 단계 떨어뜨렸다. 슬로베니아 등급도 두 단계 낮춰 A로 평가했다. 벨기에와 키프로스의 등급은 AA와 BBB-로 한 단계씩 강등했다. 피치는 이들 나라의 전망도 부정적으로 평가해 추가 강등을 예고했다. 영국 BBC 방송은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이) 다보스 휴양지에서 휴식을 즐기는 글로벌 리더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했다”고 평했다.



닥터 둠(Dr. Doom) 경제 위기 등 비관적 결말을 정확하게 예측한 전문가. 원조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한 마크 파버다. 누리엘 루비니(경제학) 뉴욕대 교수는 2대 닥터 둠이다. 루비니는 “미 주택시장 등 자산 거품이 파멸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2005년 이후 줄기차게 경고했다. 월가 사람은 그의 음울한 전망을 무시했다. 때론 늘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불거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닥터 둠’이란 별명이 그의 이름 앞에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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