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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러다임 탄생의 고통 불가피 … 국민이 누굴 뽑느냐에 ‘국운’ 달려

중앙선데이 2012.01.29 01:35 255호 6면 지면보기
중앙SUNDAY가 연중기획 ‘한국사회 대논쟁’을 시작한다. 본격 토론에 앞서 가진 첫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불확실성의 시대’가 시작됐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왼쪽부터 정진성(서울대)·하성근(연세대)·정용덕(서울대)·문용린(서울대) 교수, 김종혁 중앙SUNDAY 편집국장, 유관희(고려대)·김호섭(중앙대) 교수. 조용철 기자
김종혁 국장(사회)=격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2012년 임진년은 한 시대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오랫동안 지구촌 경제질서를 형성해 왔던 신자유주의는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있고 이를 근거로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물론 유럽 국가들까지 다 함께 휘청거리고 있다. 올해는 또 미국과 중국·러시아·프랑스 등 주요 국가에서 정치 리더십의 교체가 예상된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거기에다 김정일 사망 이후의 불확실성까지 겹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한마디로 우리 앞에는 과거의 사고방식과 틀로는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난제들이 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중앙SUNDAY가 한국사회과학협의회와 함께 ‘한국사회 대논쟁’을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올 한 해 내내 2주일에 한 번씩 한국사회가 당면한 핵심 쟁점들을 놓고 격론을 벌여 보자. 토론 주제에 성역은 없다. 사람들의 가슴에 와 닿는 문제라면 무엇이든 논의하자. 토론자는 한국사회과학협의회가 선정할 것이다.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전문성이 높은 학자들을 발굴해 줬으면 한다. 또 진보와 보수, 소장파와 경륜 있는 교수들을 안배해 토론의 균형을 갖췄으면 좋겠다. ‘한국사회 대논쟁’이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을 제대로 버무린,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토론회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오늘은 첫 모임이어서 주요 학회장들을 몇 분 모셨다.
 

연중 기획 한국사회 대논쟁 ①불확실성 시대

정용덕(서울대 교수) 한국사회과학협의회장=첫째 화두는 아무래도 ‘불확실성의 시대’로 잡아야 할 것 같다. 세계적 행정학 학술지인 거버넌스는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2012년 새해 특집을 냈다. 거기서는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시작된 세계경제의 침체가 해소될 전망은 별로 없고 해법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지난 30년간 국제경제질서를 지배했지만 더 이상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신자유주의 이전에 있던 복지국가 모델도 아니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국제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좀 비관적인 것은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와서 정착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당분간 힘들고 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결론은 우울하지만 현재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 세계 주요 국가들의 리더십이 바뀐다. 정치적으로는 불안하지만 그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데 촉진제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4월에 총선이 치러지고 12월에는 대선이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1년 내내 정치적 담론이 전개될 것이다.

김호섭(중앙대 교수) 정치학회장=우리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한데 더 중요한 건 예측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냐, 아니면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냐다. 예를 들어 올 연말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거가 치러진다는 건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예측할 수 있는 불확실성이다. 하지만 북한은 다르다. 북한은 예측할 수 없고 그것은 고스란히 한반도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진다. 정치학자의 입장에서 올 한 해 북한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크게 우려된다.

하성근(연세대 교수) 경제학회장=경제는 더하다. 경제는 뭔가 불확실해지면 활동이 위축되고 움츠러든다. 예전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기관의 부실 문제였다. 지금은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가는 상황이다. 그것도 일부 국가가 아니라 미국·유럽 국가들이 엉켜 있다. 세계경제를 이끄는 앵커 역할을 하던 미국·유럽이 오히려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가의 부실 문제로 갔으니까 해결이 더 어렵다. 초(超)국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제조직이 나서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마당에 선거까지 겹쳐 있어 예측이 어렵다. 게다가 한국은 대외적 불확실성에 약하다. 외풍에 약한 체질이라 외부 요인에 의해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관희(고려대 교수) 경영학회장=경영학의 입장에서 지적하고 싶은 건 리더십의 부재다. 조직을 연구하다 보면 그 조직의 성패와 건강성은 90% 이상이 리더에게 달려 있다. 리더가 방향을 제시하고 심어 주면서 끌고 나가는 게 중요하다. 결국은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그런데 한국은 대통령이 소신을 가지고 국가를 이끌기 어려운 시스템으로 돼 있다. 단임제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2년만 지나면 벌써 레임덕 이야기가 나온다. 차기가 누구냐 하면서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걸 반복한다. 올해 전 세계 76개국의 리더십이 교체된다고 한다. 경제도 불안하고 한국은 대외의존도도 높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해외 악재가 들어오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리더가 갈 길을 보여 주면서 국민을 통합해 불확실성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우리의 정치 리더들이 국민을 어디로 끌고 갈 건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 10~20년 동안 우리가 살길은 이거다, 우리는 이렇게 매진하자’ 이런 걸 얘기해야 한다. 이념 논쟁을 벌이면서 복지에만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이니 총체적인 국력을 집결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리더십은 분명했다. 배고픔을 해결하자, 새마을운동을 하자, 중화학공업을 건설하자 하면서 방향을 제시했다. 그때는 적어도 국민이 갈피를 못 잡고 그러지는 않았다. 조선시대의 임진왜란은 국가적 재난이고 대표적인 불확실성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이라는 리더가 나와 12척의 배로 국가를 살려 냈다. 불확실하더라도 뛰어난 리더가 있다면 걱정할 게 없다.

사회=리더십은 결국 우리가 다음 세대를 어떻게 키워 내고 있느냐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교육 문제는 어떤가.

문용린(서울대 교수) 교육학회장=한국의 자본주의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지뢰가 심어졌다. 그중 하나가 양극화다. 양극화를 그냥 경제적인 빈곤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교육학자의 입장에선 소외, 그중에서도 청소년세대의 유례없는 소외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청소년들은 역사상 부모세대와 가장 유리된 세대다. 최근의 학교폭력도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 묻혀 있던 지뢰가 터지는 거다. 부모는 맞벌이하면서 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애들은 경쟁하고 출세하고 성공해야 하고, 그런 상황이 계속 심화되다 터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대학생들이 길거리로 나섰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부모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학교 제도에 묶여 있다가 그런 거다. 한국의 상황이 더 심각한 건 이념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감, 보수 교육감 하면서 서로 싸우는데 그 이념 싸움의 포탄은 교육계로 떨어지고 있다. 장관은 누가 되든 기존 틀을 많이 못 바꾼다. 하지만 교육감은 다르다. 무상급식을 하겠다면 할 수 있다. 이념과 진영 싸움이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악화돼 온 청소년 문제와 접목되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하기로 따진다면 교육계가 제일 심하다. 대학생 반값 등록금 문제가 어떤 식으로 종결될지 예측 가능한가.

사회=청소년들의 기본적인 소외 문제가 좌우 이념 갈등과 맞물리는 파괴적 상황을 언급했는데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대책은 없나.

문용린=일본도 전교조는 아직 합법화되지 않았다. 정치적 이념 논쟁이 있더라도 교육계는 가장 마지막이 돼야 한다. 미국 교원노조도 우리처럼 활성화는 안 됐다. 유럽도 교육은 보수적 영역으로 놔둔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을 이념으로 이용한다. 보수는 과거에 유신 같은 걸 교육으로 정당화하려 했고, 진보도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교육과 교과서를 건드린다. 세금이 안 걷히면 교과서에서 납세교육 시키자고 하는 식이다. 정치권의 압력으로 교육계가 엉망이 됐다. 교육은 건드리지 말자는 협약이라도 맺으면 좋겠다. 교 육을 바꾸려면 법에 따라 교육자들이 바꾸게 하자.

사회=나중에 ‘한국사회 대논쟁’의 세부 항목으로 그걸 토론해 보자. 여성 문제는 어떤가.

정진성(서울대 교수) 여성학회장=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통칭되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소통방식이 많이 거론된다. 그런데 인터넷이나 SNS상에서 성평등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똥녀, 동안 열풍, 다이어트 등 여성과 관련한 것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다문화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해마다 베트남에서만 1만 명의 여성이 결혼을 하러 한국에 들어올 정도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이 ‘왕따(집단 따돌림)’ 같은 학교폭력의 대상이 되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모르겠다. 단일민족을 자랑하는 한국사회가 맞는 최초의 시험이 될 것이다. 다문화 문제는 여성 문제이자 청소년 문제이고 동시에 교육 문제다. 좀 다르긴 하지만 탈북자도 2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껴안지 못하고 있다. 탈북자의 80%는 여성이다. 또 탈북 청소년들은 자기가 북에서 왔다는 걸 숨기고 싶어 한다. 말하면 왕따를 당하니까 차라리 옌볜(延邊)에서 왔다고 한다. 같은 민족끼리 왜 이렇게 됐나.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가 정착됐고 민주주의도 안정화됐다. 이제는 다문화가정·탈북자 같은 사람들을 체제 속으로 잘 통합시킬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여자들은 결혼 안 하고 출산도 싫다고 하는데 이런 걸 개인의 문제로 돌릴 수 없다.

문용린=우리의 다문화 문제는 미국 흑백인종 갈등보다 더 심각하다. 기본적으로는 머저리티(majority·사회주류)의 시각이 문제다. 피부색이 다를 뿐 그들은 한국인인데 그걸 안 받아들인다. 북한에 핵폭탄이 있다면 남쪽에는 다문화 핵이 있는 거다. 교육은 지금 어른들이 이해 못하는 청소년의 세계가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데, 거기에 도화선까지 달려 있다. 교육계의 또 다른 도화선은 급격한 학생 수 감소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대학교까지 빈 학교가 늘어난다. 교육자로서 내가 꼭 하고 싶은 얘기는 입학사정관제다. 현재 입학방식이 약 6000개다. 서울에서 대학설명회 4~5군데 등록하면 등록비만 70만원이다. 대학에서 자기 학생들 뽑는데 왜 전형료를 받느냐는 불만이 많다. 1년에 40억원을 버는 학교도 있다. 애들 면접했다고 교수들이 200만원씩 수당을 받는 게 옳은가.

김호섭=한국 사회가 젊은 세대를 허용해야 한다. 서구와는 달리 우리 젊은이들은 정치에도 적극 참여하고 그 수단으로 SNS를 사용한다. 젊은 세대는 정당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를 하려고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헝그리(hungry)에서 앵그리(angry)로 변했다는 것이다. 배고픔은 해결됐는데 화가 나 있다. 공평함(fairness)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의 공평은 기회의 균등이다. 신자유주의와도 연관 있지만 결과적으로 루저(loser·패배자)들이 많이 생겼다. 젊은 루저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그들이 불만을 정치적 행위로 표출하고 있다. 사회가 이들의 불만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한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젊은 세대의 불만은 논리나 합리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대학생들은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해 불만이지만 중소기업은 구인난이다. 중소기업은 안 가면서 취직 안 된다고 불평하고, 등록금은 반값으로 하자면서 교육 품질은 신경 쓰지 않는다. 돈 더 줄 테니 품질을 올려 달라는 얘긴 결코 없다. 하지만 사회의 격변과 변동이 반드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논리적인 혁명이 어디 있나. 비논리적인 사회적 에너지가 쌓여 폭발하면 혁명이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불만이 쌓여 가는 위기의 사회다.

정진성=젊은이들의 불만은 결국 장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온다. 그래서 결국 복지 문제이고 노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옛날에는 노인이 되면 좋든 싫든 자식들이 짊어지고 갔다. 요즘은 그런 의식이 사라졌다. 늙어도 개별적으로 살아야 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정비되지 않으면 다들 불안하다. 그러니까 기를 쓰고 대학을 가려 하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관희=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먹거리가 있으면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이냐의 문제다. 현재 한국은 중화학과 전자로 먹고산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1970년대 초·중반까지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화공·전자·기계과를 갔기 때문이다. 요즘은 똑똑한 학생들이 다 의대로 간다. 우리나라 성형외과 의사들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실력 있는 의사들이 국가적 성장동력이 되게 해야 한다. 개인적으론 영종도 같은 곳에 대규모 메디컬 클러스터(단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지역은 건강보험을 없애고 특화된 법인을 만들어 좋은 의사들을 데려다 놓으면 중국사람들이 무지하게 올 거다. 그 주변에는 생명공학과 카지노 같은 도박단지를 만들어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누군가 물꼬를 터 줘야 하는데 그걸 못 한다.

정용덕=민주사회에서 선거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공공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한데 87년 이후 지금까지 선거 과정이 합리적인 정책대안을 걸러 내는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지역 등 정서적인 것에 의해 선거가 좌우된다. 불행하게도 올 총선·대선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복지국가로 가느냐, 영미식의 신자유주의 최소국가로 가느냐, 혹은 또 다른 제3의 길로 가느냐의 패러다임을 합리적으로 가려내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핵심적인 내용이 올 선거 과정에서 걸러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선거 때 헌법 개정을 공약에 넣는 후보가 있었으면 한다. 5년 단임제는 순기능도 있었지만 역할을 마쳤고 4년 중임제 공약이 나왔으면 한다.

김호섭=유권자들이 그저 누가 싫어서 그 반대편을 찍는다면 그 사람도 역시 1년 이내에 무너질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진짜로 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다. 독일도 분단국가에서 통일을 이뤘지만 북한은 예측 불가능 국가다.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걸 위해선 국민의 좋은 선택이 필요한데, 나는 국민이 누굴 뽑느냐는 것이 국운(國運)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성근=큰 흐름으로 볼 때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국민이 인기영합주의가 아닌 리더십을 선택할 수 있도록 언론도 역할을 해야 한다. 달콤한 것을 준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걸 어떻게 줄 수 있고 부담은 누가 지는지를 따져야 한다.

유관희=좀 다른 차원인데 우리 사회에는 아날로그세대와 디지털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정치적 헤게모니는 아날로그세대가 쥐고 있다. 디지털세대는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왜 정당이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차기 대통령이 디지털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지 혼란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교수지만 젊은 교수들의 수업에 들어가면 다르다. 칠판이 아니라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학생들과 사이버공간에 들어갔다가 교실로 돌아온다. 나는 기껏해야 프레젠테이션만 하는데 말이다. 학생들이 내게 수강 신청을 해 주는 게 고마울 정도다. 한쪽은 입체적으로 돌아다니는데 다른 쪽은 백묵이나 화이트보드에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차원이 다르다. 서로 차원이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정치·경제에서 만나니 소통이 안 되고 부닥친다.

김호섭=경제적 양극화 못지않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디지털은 앞에 가서 키득대면서 게임하는데 아날로그는 그걸 이해 못 한다. 기술이 다르다 보니 의식 자체가 달라진다. 하지만 디지털을 대표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을 대표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아날로그가 그걸 이해는 해야 한다. 디지털·SNS·유튜브를 이해하지 못 하면서 최고의 리더십을 갖기는 힘들 것이다.

정용덕=사회과학은 과연 얼마나 사회를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인가. 박원순·안철수 현상 같은 건 디지털·SNS 등이 복합작용한 건데 기존 사회과학의 단선적 방식에 의한 설명과 예측은 불가능하다. 어디가 처음이고 끝인지도 없고 갑자기 발현해 눈덩이처럼 커지고 그러다가는 없어지기도 하는 ‘복잡성’의 현상이다. 이처럼 복잡한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선 사회과학의 역할이 중요한데 우리가 얼마나 거기에 충실해 왔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유관희=경영학을 반성해 본다면 경영학이 기업들의 편만 들면서 그들을 대변했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 기업들의 세습경영에 문제가 있는데 왜 그걸 비판하지 않았는지, 투명하지 못한 경영을 왜 신랄하게 파헤치지 못했는지,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에 대해 왜 관대했는지 등이다. 또 약자인 중소기업의 편에 서서 잘못된 것은 고치고 건전한 기업생태계로 만들려는 노력도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사회=그런 측면에선 언론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 불확실성이 가중될수록 사회과학이 중요하다. 자칫하면 공동체 자체가 붕괴될 지경까지 돼 버렸다.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이 각자 과거를 반성하면서 앞으로 ‘한국사회 대논쟁’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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