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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이디어 내도 해봐라 하는 조직”

중앙선데이 2012.01.28 22:23 255호 14면 지면보기
“모사드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정보 기구다.” 1970~80년대에 모사드 현장 요원이었던 가드 심론(62·사진)의 말이다. 그는 모사드를 떠난 뒤 특파원, 방송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왕성하게 저술한다. 저서로 '모사드와 신화' 등이 있다.

전 모사드 요원 가드 심론

-모사드 명성이 왜 그렇게 높나.
“72년 검은 9월단(아랍의 테러집단)이 뮌헨 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 21명을 납치했을 때 골다 메이어 총리는 모사드에 범인을 반드시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모사드는 79년 이맘때쯤 베이루트에서 주모자 알리 하산 살라메를 제거했다. 나치 전범도 아르헨티나까지 추적해 없앴다. 그런 게 유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샤박, 아만이라는 정보기구도 있다. 샤박은 국내문제·테러 등을 다루고 아만은 군정보기구다. 모사드는 주로 국외 활동을 한다. 세 기구는 긴밀히 협동한다. 그게 이스라엘 정보기구의 특징이다.”

-자체 비결이 있지 않겠나.
“모사드 요원들은 뭘 해야 하는지 잘 안다. 선발도 경쟁도 훈련도 잘 시킨다. 또 유연하고, 경직되지 않고, 오픈된 마인드다. 내부에선 어떤 ‘미친(crazy)’ 아이디어라도 말할 수 있다. ‘한번 해봐라. 괜찮을 수 있겠다’고 한다. 예산은 많고 관료주의는 없다.”

-국민의 존경을 받나.
“출범 후 처음 2~3년간 이스라엘은 순수 민주국가는 아니었다.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정보기구는 자신들이 민주주의 체제에 속한다는 점을 빠르게 이해했고 정권이 아닌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것도 알았다. 사람들은 그들이 더러운 인간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 싸운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서 다들 존경하게 됐다. 초기 벤구리온 총리는 야권 인사들도 모사드에 채용했다.”

-야당 탄압은 없었나.
“샤박이 초기 공산주의자 행동가를 추적하라고 지시를 받은 정도다. 소련 스파이로 의심했기 때문이다. 샤박이나 모사드는 정치적인 조직이 아니다. 사람이 죽은 일도 있긴 있었다. 55년쯤 온갖 불법에 연루됐던 이스라엘 해군 장교가 탈영해 유럽에 있으면서 이집트의 정보 기구에 협력했다. 잡아서 국내로 보내는 과정에서 샤박이 진정제를 투여했는데 그게 과해 비행기에서 죽었다. 그 정도다. ”

-67년 군함 엘라스가 이집트 미사일에 침몰된 것은 모사드 실패 사례 아닌가.
“당시 해군 정보기구는 이집트 해군의 미사일함이 항구에 있고 이스라엘 군함을 공격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정보 실패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낡은 배가 그렇게 가까이 가서도 안 됐다. 73년 전쟁 때도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란 정보가 많았다. 모사드가 그 징후에 대한 정보를 줬지만 군 정보기구는 전쟁이 임박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 실패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어떤가. 한국에선 가차없는 비판을 받는다.
“6일전쟁 막바지에 있던 67년 사태에 국민은 충격을 받았고 일부 전문가가 ‘경고가 없었다’고 비판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한국에선 국정원장이 대통령을 자주 독대하고 이게 곧 힘이 된다. 이스라엘은 어떤가.
“모든 정보기구의 장은 당연히 총리를 만나고 독대도 한다. 그렇다고 민주 체제에서 그게 힘이 되겠나. 임기가 총리는 2~3년, 모사드는 4~5년이다. 샤박과 아만과 다르게 모사드엔 공보관도 없다. 그들은 음지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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