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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크메르 루주 전범 재판’ 맡은 유엔 재판관

중앙일보 2012.01.28 01:04 주말섹션 4면 지면보기
[사진=박종근 기자]
그가 내미는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크메르 루주 전범 특별재판소 유엔 국제 재판관.’ 지난해 7월까지 광주지법 부장판사로 일하다 8월부터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유엔 재판관으로 활약하고 있는 정창호(45) 판사다. 흔히 판사라고 하면 법정 안에 앉은 법복 차림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가 활약하는 공간은 어느새 국경을 넘어섰다. 2008년 빈 국제기구대표부에 파견돼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이하 UNCITRAL)에 우리나라 대표로 유엔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전범재판에 참여하고 있다. 유엔 국제 재판관 중에서 최연소 상임 재판관이다. 국제무역법, 국제인권에 이어 개성공단 등 관심 분야도 남다르다. 최근 인천 송도에서 열린 UNCITRAL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우리나라의 전자상거래법을 세계 표준모델로 거론되게 할 만큼 국제법 분야의 한류(韓流)를 이끈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기술 못지않게 한국의 법률도 세계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기구서 일하기? ‘소통의 스킨십’ 중요합니다

기술·법제도 앞선 한국의 전자상거래



●이번에 열린 UNCITRAL세미나에서 전자상거래 분야에 대해 주제 발표를 맡았다. 배경은.



 “이번 세미나는 UNCITRAL에서 다루는 다양한 주제를 소개하고, 송도에 처음으로 개설된 UNCITRAL 아태 사무소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제안하는 자리였다. 전자상거래 부문은 2008년 오스트리아 빈에 파견됐을 때 주력해 연구했던 분야다.



●전자상거래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나라 전자상거래는 기술뿐만 아니라 법제에서도 앞서 있다. 예컨대 휴대전화 결제 솔루션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회사가 국내 기업이다. 이런 솔루션 개발은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장 실생활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새 결제 시스템에 대한 법률적 분석이 필요하다.”



●이 분야 연구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사람들이 휴대전화로 결제를 한다는 것은 은행 등 기존의 금융기관이 아닌 이동통신 업체나 모바일 결제 업체 등이 사실상 금융기관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이들에게도 어떠한 법적 지위나 책임을 인정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전자금융거래법을 통해 이들에게 금융기관과 유사한 책임을 묻고 있는데, 미국이나 유럽에는 이런 법제가 아직 없다.”



●한국의 앞선 법제를 알려 무엇을 얻을 수 있나.



 “한국의 모바일 결제 관련 법제가 유엔을 통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준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국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보다 편하게 국제사회로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UNCITRAL에서 그동안 많은 선진국이 자국의 법제를 적극 반영하려고 애써온 이유다.”



지난해 8월 크메르 루주 재판소에



●국제무역이나 전자상거래 부문에 관심이 많은데 크메르 루주 재판소로 갔다.



 “크메르 루주 재판 일을 하게 될 줄은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웃음) 우리나라 대표로 UNCITRAL 회의장에서 열심히 일한 게 유엔에도 좋은 인상을 준 것 같다. 유엔의 가장 중요한 법률 분야인 국제무역법규 제정과 국제인권재판을 모두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큰 행운이다.”



●이미 국제사법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 재판관들이 있다. 이들의 조언을 들어봤나.



 “빈에서 근무할 때 헤이그를 방문했다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송상현 소장과 옛 유고 국제형사재판소(ICTY)의 권오곤 부소장 두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두 분께서 ‘우리나라의 국제 위상이 높아질수록 한국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국제인권재판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신 말씀에 크게 공감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두 분을 뵙고 온 후에 크메르 루주 재판소 재판관 후보 등록 제안을 받았다.”



 흔히 선출 경쟁을 치러 재판관을 뽑는 다른 국제형사재판소와 달리 크메르 루주 재판소는 유엔 사무국이 각국에서 추천 받은 후보 중에서 임명한다. 정 재판관은 2008년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지난해 7월에야 유엔 측으로부터 “8월 1일부터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재판관 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 도중 그는 유엔 재판관이 된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뉘른베르크 재판소 이후 가장 주목 받는 전범 재판소라고 들었다.



 “쉽지 않은 재판이지만, 세기적 국제형사재판에 한국인 판사로서 참여한다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낀다. 이 재판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캄보디아인들은 물론 세계인권단체들이 한순간도 안 놓치고 재판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한번 짚고 넘어가자. 킬링필드 사건은 1970년대 말에 종결된 사건 아닌가. 왜 이제 와서 재판을 하나.



 “79년에 종결됐지만 크메르 루주의 1인자였던 폴 포트는 재판도 받지 않고 죽었고, 나머지 전범들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내전도 계속됐고, 크메르 루주에 관여했던 인물들이 그 이후의 정권에도 계속 관여했기 때문이다.”



●전범 재판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뭘까.



 “‘반인륜 범죄는 공소시효 없이 반드시 처벌된다는 교훈을 남겨야 한다’는 게 유엔의 입장이다. 캄보디아 국민들에게는 재판을 통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유엔과의 재판 경험을 통해 자국의 사법시스템을 강화한다는 명분도 있다. 재판의 모든 과정을 국민에게 중계해 보여주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본다. 흉악한 범죄자들도 적법한 재판 절차에 의해 변호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 적법한 증거를 통해서만 유죄가 확정되고 처벌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국가적으로는 ‘법의 지배’를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기회다.”



한국 토박이 판사로 국제기구에서 일하기



●판사로서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으니 영어 실력이 상당하겠다.



 “어려서 외국에서 산 경험도 없으니까 솔직히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구사하기는 힘들다.(웃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갑자기 외국사람처럼 영어를 잘할 수는 없지 않나. 영어 기본문장 익히고, 법률 용어의 영어표현을 외우는 식으로 준비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영어공부 못잖게 중요한 것이 적극적인 자세로 국제회의에 참여하는 것이다. 빈에 있을 때 평소에 UNCITRAL 본부에 자주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회의 주제나 한국 사법상황 등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눈 게 회의장에서도 크게 도움이 됐다. 일종의 스킨십이다.”



●국제업무에 스킨십이라니.



 “평소에 많은 대화를 나누면 내 입장과 의견을 익숙히 알기 때문에 회의장에서 내가 무슨 발언을 하는지 더 잘 알아듣는다.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것, 친밀함을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꼈다. 그들이 귀를 기울일 만한 의미 있는 콘텐트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발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많은 동료를 미리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회의 준비를 어떻게 했나.



 “기본적으로 유엔에서 배포되는 자료는 완전히, 철저하게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읽기만 해서는 잘 안 들어오니까 아예 자료를 번역했다. 일주일 회의를 위해 A4용지 50쪽 정도의 자료가 나오는데 전문을 통째로 번역했다. 그러면 내용을 이해하기도 더 쉬웠고 나중에 한국에 보고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번역을 모두 직접 했으니 수험생이 공부하듯 새벽 3~4시까지 준비를 한 적도 많다.(웃음) 번역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어떤 법, 어떤 절차에 연결되는지 파악하고 의견까지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재판 경험이 있는 내가 직접 번역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용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영어 실력도 키우고. 쟁점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입장을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었다. ”



●한국 법률 시스템이 앞서 있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은 사법부를 여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재판이라는 제도는 증거만으로 사실을 파악해야 하는 제3자인 판사가 분쟁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들의 승패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 자체로 제약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패소한 측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승소한 측도 판결 내용에 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판사로서는 이런 분쟁 당사자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항상 고민해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다.”



●판사생활에 사법협력관, 국제재판소 재판관 등 이른바 남들이 부러워할 코스를 밟아왔다. 어려움·위기가 있었나.



 “판사로서의 자부심·책임감 때문에 밀려드는 수많은 사건들 처리에 파묻혀 살았다. 민감한 사건을 맡으면 법정에서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다 의사표시가 되므로 항상 긴장 상태다. 그게 어려움일 수도 있지만, 판사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소중한 경험들이라고 여긴다.”



●판사로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판사들마다 다 방법이 있을 거다. 내 경우에는 법정에서 당사자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할지를 미리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당사자들에게 판사가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세가 재판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앞으로 계획은.



 “유엔 재판관 업무를 마치면 다시 우리나라 법원으로 복귀하겠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크메르 루주 재판소의 경험을 토대로 개성공단 관련 분쟁해결기관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 2005년 통일부로 파견돼 중국 선전 경제특구 입법과정을 연구한 적이 있다. 중국 선전의 입법 사례를 보며 이를 개성공단에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했고 입법안을 만들기도 했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좋은 툴이다. 남한은 물론 전 세계 많은 기업들이 보다 안전하게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상설 분쟁해결 기관이 빨리 생겨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남북한 법률가들이 같이 참여해야 한다. 크메르 루주 재판소가 유엔 재판관과 캄보디아 재판관이 같이 일하는 하이브리드 재판소이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경험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법관이셨던 아버지(정지형 변호사·전 서울고등법원장)께서 항상 강조한 말씀이다. 재판에서 당사자들 입장을 잘 이해하고, 증거를 열심히 검토하고, 법률을 바르게 적용하는 게 기본이라면, 국제회의에서는 유엔에서 제시하는 자료를 완전히 이해하고, 관련된 우리나라 법규나 제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타고난 능력이 엄청나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들도 가까이서 보면 역시 착실히 노력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많이 봤다. 결국 천천히, 꾸준히 기본에 충실하게 생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창호(45)=서울대 법학과 학·석사. 사법연수원 22기. 런던정경대(LSE), 홍콩대 방문과정. 2005년 통일부에 파견돼 개성공단의 법제발전 방향에 관해 연구. 2008년 2월 빈 국제기구대표부에서 사법협력관(부장판사)으로 2년간 근무. 2010년 2월 광주지법 형사항소부 재판장으로 복귀. 2011년 8월부터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 유엔 재판관.



미술·음악 관심 많은 정창호 재판관

“정신적으로 힘든 판사들 문화생활 즐겨야 심리적 여유 찾는다”




정창호 재판관은 그림과 음악 등 문화 분야에 관심이 많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재판할 때는 ‘기본에 충실하자’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일주일 내내 재판 기록만 들여다보는 생활로 과연 내가 판사로서 사람들을 설득시킬 재판관이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라도 다른 것을 하자”고 다짐했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성악가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한국 성악 홍보대사’가 따로 없다.



●그래도 궁금하다. 미술 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특별한 계기는.



 “특별히 관심이 많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2001년 영국 런던정경대(LSE) 연수 중에 내셔널 갤러리나 테이트 모던에 가곤 했는데, 그때 미술에 대해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됐다.”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를 꼽는다면.



 “평생 설악산에 계시면서 그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는 김종학 선생의 작품을 좋아한다.”



●음악에도 관심 있다고 들었다. 사법협력관으로 오스트리아에 체류한 경험이 영향을 미쳤나.



 “빈에서 지내는 동안 유럽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우리나라 남자 성악가들에 대해 알게 됐다. 특히 테너 정호윤, 베이스 심인성, 바리톤 강형규를 알게 되면서 오페라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 빈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유엔회의 참석하면서 외국과 경쟁해야 하는 힘든 입장이었는데, 우리나라 젊은 성악가들이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경쟁하면서 대단한 역할을 하는 것 보고 큰 힘을 얻었다. 이 성악가들이 다른 유럽국가에서 공연할 때는 그 나라 유엔대표단 참석자들을 공연에 초청하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한국 성악가를 더 알리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는데, 생각보다 문화의 힘은 크다. 이런 계기를 통해 유엔 대표단들과 친분을 맺기 더 쉬웠다.”



●문화 발전을 위해 판사가 할 일이 더 있을까.



 “문화 발전이라는 화두는 너무 거대하다. 난 그저 생활 속에서 문화를 틈틈이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판사들이 사람을 많이 만나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만 있어도 심리적인 여유를 되찾고 사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판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문화 발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을까.”





국제사법기구서 일하는 당당한 한국인들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 권오곤 구유고국제형사재판소 부소장 …






유엔으로 대표되는 국제기구에 진출해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뿐만이 아니다. 치열한 선출 경쟁을 뚫고 국제 사법기구의 중심에서 당당하게 활약하고 있는 재판관이 여럿 있다. 대표적 인물이 국제형사재판소(ICC·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소장을 맡고 있는 송상현 재판관(70). 송 소장은 1972년부터 2007년까지 35년간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다. 2002년 최초의 상설 국제 형사사법기관인 ICC 초대 재판관에 선출된 후 2006년 9년 임기 재판관에 재선됐고, 2009년 소장으로 임명돼 한국인 최초로 국제 사법기구 수장에 올랐다.



 유고 내전 당시 ‘인종청소(Ethnic Cleansing·25만 명 사망)’라는 명목으로 자행된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93년 설립된 구(舊)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네덜란드 헤이그 소재)에는 권오곤 재판관(59)이 부소장을 겸하며 일하고 있다. 권 부소장은 79년부터 줄곧 판사 생활을 해오다 2001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 사법기구 재판관에 선임됐으며 2008년 ICTY 상임재판관 전원회의에서 만장일치로 부소장으로 선출됐다. ICTY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의 국제형사재판소로 재판관은 유엔 사무차장급의 대우를 받는다.



 르완다 및 주변 국가에서 자행된 국제 인도법 위반자를 처벌하기 위한 기구인 르완다국제형사 재판소(ICTR·탄자니아 아루샤 소재)에는 박선기 변호사가 비상임 재판관을 맡고 있다.



 2011년 8월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ECCC) 재판관으로 뽑힌 정창호 판사까지 포함하면 국제 형사재판소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재판관은 모두 4명. 이 밖에 160개국이 가입돼 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독일 함부르크 소재)에서는 해양법 전문가로 손꼽히던 백진현(53) 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재판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백 재판관은 그에 앞서 ITLOS에서 재판관으로 재직하다 2008년 별세한 박춘호 전 재판관의 후임으로 2009년 선거 경쟁을 거쳐 선출됐다.





UNCITRAL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UN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국제무역에서 각 국가의 법률체계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법률기구. 중재와 조정, 온라인분쟁해결, 전자상거래 등 6개의 주제별로 실무작업반이 구성돼 있다. 1966년 설립됐으며 세계에서 60개국만 회원국으로 선출하고 있다.



‘킬링 필드’ 사건과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소(ECCC)



인류 역사의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사건으로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 자행된 대학살. 폴 포트(1925~98)가 이끄는 급진공산주의 세력인 크메르 루즈가 75년 미국의 비호를 받던 우파 군사정권을 몰아낸 후 3년9개월간 집권하며 저지른 살인, 고문, 강제노동 등 반인륜적 범죄를 가리킨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지상낙원을 만든다며 고위직 공무원과 대학 이상 졸업자는 물론 안경 쓴 사람과 손이 흰 사람들까지 160만 명(추산)가량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해 고문하고 처형했다. 2005년 유엔이 캄보디아에 특별재판소를 설치해 전범 피고인 10명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최초 피고인에 대한 1심 재판은 종결됐으며, 2심 판결은 2월 초순께 선고를 앞두고 있다. 다른 피고인들에 대해서도 수사·법률 검토·증거 조사 등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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