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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3.칼을 베어버린 꽃잎 (9)

중앙일보 2012.01.28 01:02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드넓고 화려하던 거리는 두엄자리와 쓰레기더미가 가로막고 있었다. 금으로 치장한 수레가 달리던 길을 퀴퀴한 시궁쥐가 차지하고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다녔다. 이따금씩 흐느적거리는 사람들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섬에 숨어든 무인정권에 의해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세계적인 대제국 몽골 황제의 백성이 된 지 어언 십여 년이나 되었지만 몰골들이 말이 아니었다. 누더기 차림에 누렇게 뜬 얼굴, 퀭한 눈들은 유령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칭기즈칸은 반지에 힘이 정의라고 새겼소
임진년 대구 부인사 대장경 경판, 도대체 누가 태운 거요?
그때 별동대를 이끌고 내려간 장수가 나였소
대구에 도착하기도 전, 총사령관의 전사 소식을 듣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소

 내딛는 발걸음마다 푸석푸석하게 부서져 가는 허물 같은 도시였다. 태자는 두 눈 똑바로 뜨고서 흐느적거리는 그림자들을 노려보았다. 화가 치밀었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가. 왜 이렇게 하염없이 죽어 가고 있는 것인가. 떨쳐 일어날 수는 없었는가. 산발적인 반란 말고 세상을 뒤엎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그런 혁명 말이다. 역시 지도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백성의 무리는 저절로 뭉쳐지지 않는다. 지도자가 없으면 한낱 먼지처럼 흩날리다가 사라질 뿐이다.



 대략 300만 명쯤 되는 저 먼지 같은 본토 백성들을 누가 하나로 모아 엮을 것인가. 고려 조정과 무인들은 이미 저들을 포기했다. 냉정히 말해서 지금 고려는 강도에 있는 30만의 섬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몽골군에 의해 죽거나 잡혀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누가 본토에 남은 저들의 밥이 되어줄 것인가. 누가 저들의 옷이 되어주고 집이 되어줄 것인가. 지도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거늘.



[일러스트=이용규]




 진실로 나는 바란다. 황제가 아니라도 좋다. 강도 30만 백성의 왕이 아니라 고려 모든 백성들의 왕이 되기를. 무인정권은 내가 부왕의 뒤를 잇는 걸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화도와 본토의 백성들을 전부 아우르는 왕이 되겠다고 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몽골과의 관계정립이 문제되기 때문이다. 항복이냐, 정면승부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전쟁은 늘 선택을 강요하는 법이니까.



 나는 안다. 몽골과의 정면승부는 곧 멸망이라는 사실을. 그걸 아는 이가 어찌 나뿐이겠는가. 국제정세와 현실정치에 눈이 밝은 이라면 누구라도 안다.



 그래서 항복하려 한다. 자존감도 없느냐고? 없다. 자존감 더 붙들고 있다간 나라가 죄다 결딴나게 생겼다. 이제 적개심 따위도 더는 갖지 않으려고 한다. 몽골군도 무인정권 실세들도 내가 어떻게 맞서볼 상대가 아니다. 기회를 봐가며 최종 승자가 될 쪽에 빌붙는 게 상책이다. 나는 지금 그 승자에게 빌붙으려고 잠행하는 중이다.



 역참을 겸한 주막집에서 내시는 말라비틀어진 말 두 필을 빌렸다. 고려의 내시는 환관이 아니었다. 궁궐에서 비서 역할을 하는 요직이었다. 역관 출신인 이 내시는 꽤 건장한 편이었는데, 그가 잔등에 오르자 말이 후들후들 다리를 떨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정없이 말을 몰았다. 얼마 전에 그 혼자서 이미 답사한 적이 있는 길이었다.



 한 시진을 더 달렸다. 무장한 몽골군들이 이중 삼중으로 경계 서고 있는 관청 앞에 다다랐다. 짤막한 몇 마디 몽골말로 통과의례를 마쳤다. 관청 마당에 둥그런 흰색 천막집 몇 채가 보였다. 해체해서 말에 싣고 다니기도 하는 몽골 전통가옥이라 했다. 걷어 올린 포장 사이로 조잡한 침상과 가재도구가 보였다. 참으로 볼품없는 야만인의 집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뾰족모자에 비단 두루마기 차림의 관리가 대청마루에 앉아서 죄인들을 심문하고 있었다. 태자와 내시를 본 그는 서둘러 심문을 마쳤다. 몽골 옷과 먹을 것을 받아 든 죄인들이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노인 내외와 손녀딸로 보였는데 열서너 살쯤으로 보이는 손녀의 배가 유난히 불룩했다.



 “어려운 걸음을 하셨습니다. 대몽골제국 지방장관 토야올시다.”



 키가 장대처럼 커다란 관리가 구릿빛 얼굴에 웃음을 머금었다. 야만인치고는 선한 인상의 다루가치에게 태자는 목례를 했다.



 토야 다루가치는 태자와 내시를 천막집으로 안내했다. 시중드는 고려 여인이 말젖과 육포를 내왔다. 태자는 목이 마르던 참이라 말젖을 입에 댔는데 가히 즐길 만한 게 못 되었다. 언젠가 먹어본 양젖과 달리 비위가 상했다. 다루가치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껄껄 웃더니 차를 내오라고 했다.



 “사람은 고기를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세져서 우리처럼 승리자가 되는 겁니다. 고기는 동물이 풀을 뜯어먹어서 살찌운 영양식이 아닙니까. 고기를 먹으면 풀을 먹은 거나 다름없지요. 풀을 직접 씹어 먹거나 우려먹는 건 동물들이나 하는 짓이랍니다.”



 그는 육포와 말젖을 양손으로 붙들고 시범을 보였다. 왼손 검지에서 은가락지가 빛을 발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토야 다루가치는 정리가 잘된 사람이었다. 이미 내시와 만나 의견을 조율한 바가 있으므로 너절한 얘기는 잘라버렸다.



 “강화도로 파천하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섬에 갇혀 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최이 집정의 강박으로 마지못해 천도하게 된 부왕께서는 몇 년 버틸 요량이셨지요. 이 전쟁은 고려 쪽 승산이 전혀 없습니다. 전쟁을 빨리 종식시키고 개경으로 환도하는 길을 묻습니다.”



 태자의 말을 내시가 통역했다. 몽골 역관이 다시 그 말을 받았다.



 “고려 조정이 출륙(出陸)하면 됩니다. 육지로 나와 조공을 잘 바치면 전쟁은 종식됩니다.”



 토야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아시겠지만 결정권자가 최이 집정입니다. 그는 절대 출륙하지도 조공을 바치지도 않으려 합니다.”



 “그럼 방법이 없지요. 자객을 보내 최이란 자를 제거할 생각도 했지만 제2, 제3의 최이가 출현할 텐데요 뭘.”



 “그럼 엊그제 화약으로 급습한 자들이…?”



 태자가 놀라며 물었다.



 “뭔 얘기요?”



 내시는 최이 부자의 수레가 폭파된 일을 자세히 일렀다. 다루가치는 그 일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반군들의 소행이겠지요. 우리 관청도 몇 번이나 당했답니다. 고려인들 참 용맹스럽더이다. 내 동료 다루가치들 수십 명이 반군들에게 잡혀 죽었어요. 땅이나 파먹던 백정들이 어떻게 그렇게 병장기를 잘 다룰 수 있는지 놀랍습니다. 뛰어난 지도자만 있었더라도 우리 몽골이 넘볼 수 없었을 겁니다.”



 토야는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백성이 아무리 훌륭해도 지도층이 무능하면 소용없다는 얘기였다. 그가 얘기한 백정(白丁)이란 고려의 일반농민을 가리켰다. 가축 잡는 이들은 화척이나 양수척으로 불렸다. 불교국가인 고려는 육식을 잘 하지 않아서 도축하는 직업이 따로 없었다. 여진족 포로나 거란족 귀화인이 그 일을 도맡았다. 몽골 침략으로 고려인들은 육식하는 식성이 늘었다.



 “무능한 조정 맞습니다.”



 태자는 눈을 감았다 한참 만에 떴다. 지금 고려의 실세들은 백성들 생존권 하나 보장해 주지 못하면서 쥐어짜기만 했다.



 “위대한 칭기즈칸은 반지에 힘이 정의라고 새겼소.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천하가 당당한 힘의 정의 아래 하나가 될 때까지 싸울 것이오. 아시겠지만 이 세상에는 비겁한 힘들이 너무 많소.”



 “그래도 어쨌든 폭력이고 약탈입니다.”



 태자가 천하통일 전쟁의 본질을 지적했다.



 “우리는 항복하면 살생하지 않소.”



 “과중한 공물은 뭡니까?”



 “국가가 조세를 걷듯 제국으로서 조공을 받는 것뿐이오. 지금은 그것이 천하의 법이오.”



 그것이 그들이 만든 천하 법이라니 패전국 왕자로서 할 말이 없었다.



 “백성들의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몽골과 사이 좋게 지낼 수는 없겠습니까?”



 “백성들의 고생?”



 토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대들이 백성들 겪는 고생을 알기나 하느냐는 투였다. 토야는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내시가 통역했다. 충격적인 얘기였다.



 아까 다녀간 노부부와 어린 여자애는 배가 너무 고파서 인육(人肉)을 먹은 자들이라고 했다.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먹고 흙까지 파먹었지만 주린 배는 채워지지 않았다. 먹는 흙이 있긴 했지만 곡물과 적당히 섞어서 먹어야지 흙만 파먹다가는 속을 버리고 만다. 그래서 손댄 것이 굶주려 죽은 사람 시신이었다. 시신을 가마솥에 넣고 삶아서 곰탕으로 만들어 먹었다. 그렇게 먹은 시신이 이미 여럿이었다.



 “난 중국 놈들이 인육을 먹는단 얘기는 들어봤어도 고려인들이 인육 먹는다는 건 처음 들었소이다. 이렇게 맑은 청자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문명인들이 사람을 먹다니요. 하도 신기해서 그들을 불러오라 했소. 사정을 들어보니 딱했지요. 그 꼬마 여자애가 글쎄 임신을 했는데 오죽이나 배가 고팠겠소. 부모는 나이가 사십밖에 안 되었는데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폭삭 늙어버린 거였소. 당신들이 버린 그들에게 내가 해준 건 몽골 옷 한 벌씩에 말고기 몇 근이었단 말이오.”



 토야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청자 물병을 더듬었다. 태자는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야만인들도 구제하는 고려 백성을 고려 조정은 버렸다.



 “그래서 내가 항복하기로 결심한 거랍니다!”



 태자는 거의 고함을 치다시피 했다.



 “하하하, 왕자 하나가 항복한다고 해결될 건 아무것도 없소.”



 토야 다루가치는 오만한 얼굴로 돌변했다. 그는 태자를 왕자로 격하시켜 불렀다. 천하에 황제국은 오직 몽골뿐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태자는 한없이 왜소하고 무기력한 자신을 절감했다. 자신이 아니라 부왕이 항복한다 해도 백성들이 편안해질 수 없었다. 최이 집정이 항복하고 개경으로 돌아와야 뭐가 돼도 되는 일이었다. 그래야 제대로 공물을 걷어갈 수 있었다. 고려가 공물만 잘 바치면 몽골이 군사를 파견할 이유가 없었다. 전쟁이 종식되는 것이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태자는 애원하듯 물었다.



 “나는 빛의 종교, 경교를 믿는 사람이오. 토야라는 이름 자체가 빛을 뜻하오. 왕자에게 빛의 실마리를 주리다.”



 토야 다루가치가 반지를 가리켰다. 동그라미 안에 십자가 돋을새김이 또렷했다. 태자가 처음 접하는 십자가였다. 빛의 종교, 경교라는 용어만큼이나 생급스러웠다. 하지만 실마리를 준다는 말에 태자는 솔깃했다.



 “어떤…?”



 “최이란 자를 설득하시오!”



 “그는 절대로 내 말을 듣지 않소. 부왕 말씀도, 그 어떤 대신의 말도.”



 실망한 태자는 냉수를 달라 해서 마셨다. 곱고 새하얀 손이 눈부셨다.



 “최이는 교활한 자요. 정권유지를 위해 강화천도네, 판각불사네, 온갖 구실과 명분을 끌어대는 그 자에게 고려인들이 왜 찍소리도 못하고 복종만 하는 건지 모르겠소. 문신들이야 그렇다 쳐도 불교계는 왜 그러는 거요?”



 “최이 집정은 독실한 불잡니다. 유력한 스님들 상당수가 집정의 도움을 받고 있다오.”



 “그래서 권력화된 종교는 가짜인 거요. 중생의 소망과 멀어져 버리니까. 승군들만 모아도 수만 명일 텐데 우리 몽골군이나 무인들과 맞서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경판을 새기면서 우리가 물러가기를 바라고 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소이다. 우리는 절대 안 물러가오. 팔만대장경을 두 벌 세 벌 새기더라도 끄떡 안 할 거요. 그러니 고려가 총력을 기울여 하는 판각불사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오. 개나 닭, 소가 웃을 일 아닌가 말이오.”



 토야는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고려는 불국토요. 살생의 칼 대신 진리의 경판을 택한 건 부처님 가르침과도 딱 들어맞습니다. 그대는 문명국 고려인들을 야만인 취급하지 마시오. 칼은 절대 진리의 말씀을 이기지 못하오! 칼은 부러지고 녹슬어도 진리의 말씀은 천년만년 가도 더욱더 빛나오. 전쟁에 맞선 진리의 표상으로 말이오.”



 모처럼 태자가 당당하게 말했다.



 “인정하오. 일견 타당한 면이 있소.”



 토야가 고분고분하게 나왔다. 태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서 내시에게 되물었다. 내시가 같은 말을 반복한다.



 “…당신들이 그토록 부처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다면 내 하나 묻겠소. 임진년 대구 부인사 대장경 경판, 누가 태운 거요?”



 토야가 진지하게 물었다. 태자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었기 때문이다. 몽골군 별동대가 대구까지 쳐 내려가 부인사 대장경 경판에 불 지른 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입이 부르트도록 성토해 온 만행이었다.



 “당신들 몽골군이 태웠지 않았습니까? 수십 년간 만백성이 공들인 그 성물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었잖습니까?”



 태자는 준엄하게 따졌다. 그러자 토야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때 별동대를 이끌고 내려간 장수가 바로 나요. 대구에 도착하기도 전, 살리타이 총사령관의 전사 소식을 들은 나는 곧바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소. 우리 몽골군은 대구에 가본 적도 없단 말씀이오. 내가 모르는 일이거늘 당신들 맘대로 덮어씌우고 꼭두각시놀음을 하느라 생난리니 정말 우스꽝스럽소이다.”



 태자는 혼란스러웠다. 토야가 거짓말하는 걸로 보이지는 않았다. 태자가 머뭇거리자 토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신 차리시오!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대 우리 몽골군은 그때 대구에 내려가지도 못했소. 설령 대구까지 갔다고 해도 경판을 왜 태우겠소. 우리 몽골도 불교국가요. 나처럼 경교를 믿는 이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경교는 불교와 아주 유사한 종교요. 무엇 때문에 경판들을 불태우겠소? 승군과 싸우다가 절집 자체를 불태울 수는 있겠지만 일부러 산속까지 쳐들어가서 경판을 불사를 이유가 없소!”



 토야는 얼굴이 창백해진 태자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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