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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판결 났건만 … 여론재판 된 ‘부러진 화살’

중앙일보 2012.01.28 00:00 종합 16면 지면보기
영화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된 김명호(55)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 테러사건’ 논란이 전 국민이 참여하는 공개 재판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이 난 사건이지만, 관련자들이 무차별적인 폭로와 주장을 쏟아내면서 여론에 의한 ‘4심 재판’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슈추적] 석궁 테러사건 ‘4심 재판’ 양상



 사건 당사자인 김 전 교수와 ‘석궁 테러사건’의 변호인이었던 박훈(46) 변호사는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내놓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수사당국이 증거를 조작했다거나, 피해자인 박홍우(60) 의정부지법원장이 거짓 증언을 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김 전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피해자의 조끼와 속옷에서 혈흔이 발견됐는데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는 것은 수사기관이 증거를 조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석궁을 들고 간 자신의 행위도 ‘정당방위’라며 합리화했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여론에 대해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박 변호사도 최근 인터넷 블로그를 개설하고 재판 속기록 등을 공개하며 “사법부 차원의 조직적인 증거 조작”이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박홍우 부장판사의 복부에 난 상처는 석궁으로 난 게 아니다. 화살이 발사됐지만 박 부장판사의 복부에 맞지 않고 강한 물체에 맞아서 화살 끝이 뭉툭해지고 부러지듯 꺾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석궁 테러사건’의 시발점이 됐던 김 전 교수의 교수 지위 확인소송(민사) 주심 판사였던 이정렬(43·사법연수원 23기)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25일 “최초 결심(結審) 후 판사 세 명의 만장일치로 김 교수 승소로 합의가 이뤄졌었다”고 폭로해 실정법 위반 논란을 일으켰다. 법을 집행해야 할 판사가 오히려 법을 어긴 셈이다. 법원 내부에선 “‘합의는 비공개로 한다’는 법원조직법을 알면서도 이를 어긴 이 부장판사를 법관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영진(54·14기) 수원지법 부장판사도 26일 코트넷에 올린 글에서 “피해자의 증언과 상처가 있고, 의사 진단서, 목격자들이 있는데 흉기가 증거물로 제시되지 않았다고 무죄가 선고될 수는 없다”며 논란에 가세했다.



 관련자들의 무차별적 폭로와 주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여론재판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서는 “ 재심(再審)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싸움 당사자들뿐 아니라, 심판까지 링 위에 올라 난타전을 벌이는 꼴”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수도권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3심제 를 부정한다면 사법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며 “이런 여론재판이 공산주의의 인민재판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다.



한편 경찰청은 다음 달 20일까지 25일간 전국에서 석궁에 대한 일제점검을 한다고 27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3월 서울에서 열릴 핵안보 정상회의를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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