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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 해양주권 지킨 이승만 평화선

중앙일보 2012.01.28 00:00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일주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지난 18일은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 일명 평화선을 선포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었다. 6·25전쟁으로 경황이 없던 대한민국의 수산자원을 싹쓸이해 갔던 일본에 대해 해양주권 전쟁을 선포한 날이다.



 평화선을 선포한 1952년 1월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때였다. 우남은 안과 밖으로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일명 ‘이승만 라인’을 선포했다. 여기서 말하는 타이밍이란 1952년 초부터 가동될 ‘미·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말한다. 이 조약으로 일본은 태평양전쟁 패전국 지위를 벗어나 명실상부한 세계국가로 거듭나는 권리를 회복하게 된다.



 우남은 국제정치학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독도는 물론이고 대마도도 원래 우리 영토임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서너 달 전에 탈고한 ‘Japan inside out(일본내막기)’에서 그는 과거부터 내려오는 ‘한국과 일본 간의 명확한 해상경계’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대마도와 이키섬을 우리 영토로 하는 해양경계선을 말한다. 우남은 집권하자마자 사흘 뒤인 1948년 8월 18일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다. 다음 해 1월 8일의 연두 기자회견에서 재차 일본의 대마도 반환과 임진왜란까지의 배상을 요구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진짜 이유를 우남은 간파하고 있었다. ‘독도에서 밀리면 대마도도 위험하다’는 일본의 위기의식을 우남은 알아차린 것이다.



 국제법상 영토취득의 권원에는 선점(occupation)·시효(prescription)·공인(recognition)과 실효적 지배 등이 있다. 우리의 독도 영유권은 선점이나 시효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인의 관점에서도 별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일본이 일본 남부 오가사와라(小<82D9>原: 소립원) 군도를 1862년에 미국으로부터 일본 영토라고 공인받을 때 근거로 내놓은 지도가 바로 ‘삼국접양지도(하야시시헤이(林子平) 제작) 프랑스어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부터 오가사와라 군도를 공인받게 한 이 지도에 독도와 대마도가 한국 영토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이승만의 평화선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영토취득 넷째 권원인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의 독특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는 많은 독도 사랑 NGO들이 있다. 그런데 독도의 ‘실효적 지배’의 계기를 만들어준 ‘이승만 라인’에 대해 언급하는 단체는 거의 없다. 이승만의 역사가 바로 서야 대한민국 역사가 바로 설 것이다.



김일주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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