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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너 누구랑 싸웠니”

중앙일보 2012.01.28 00:00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도쿄 총국장
학교에 갔던 자녀가 시무룩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너 누구랑 싸웠니?”(한국 부모)



 “누가 너 이지메했니?”(일본 부모)



 “너 학교에서 선생님이 질문한 것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니?”(이스라엘 부모)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녀를 둔 한국 부모라면 “너 누구랑 싸웠니”란 말이 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만큼 호전적인 말도 없다. 표정이 어둡다고 대뜸 “싸웠니”란 말이 튀어나오는 것 자체가 어긋나 있다. 자녀로 하여금 “의견이 안 맞으면 싸운다”란 생각을 심어줄 뿐이다. 무의식 중에 호전성을 키워주는 동시에 호전성의 유전으로 이어진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야근으로 늦게 귀가한 남편에게 “어디 다녀왔어. 솔직히 불어”라고 몰아치는 것도 남편의 호전성을 배가시킬 뿐이다.



 그런 호전성에 단련되고 익숙해져 있는 한국 사람에게 일본의 느슨한 사회 분위기는 분명 이질적이다. 주초 시정연설에 나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발언을 둘러싼 일본 내 반응은 그런 점에서 흥미로웠다. 소비세 인상 법안에 명운을 건 노다 총리는 “2008년 후쿠다 당시 총리도, 2009년 아소 총리도 내 주장과 비슷한 말을 했다”고 강조했다. 야당도 여당 시절 한 말이 있으니 잘 논의해 보자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과 언론들은 난리가 났다. 호전적인 노다 총리가 야당에 선전포고를 했다고 말이다. 과거 정권의 발언을 인용한 것만으로 ‘호전적’으로 포장되는 게 일본이다. 한국 같았으면 이 정도 발언은 매우 점잖은 축에 속할 텐데 말이다.



 흔히 한국 사회의 호전성이 경제발전의 원동력과 에너지의 원천이 됐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바닥에서 치고 올라가려면 그 정도의 파이팅은 필요했고 어쩔 수 없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60대 노령기에 접어든 일본과는 상황이 다를 게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는 좋은 의미의 호전성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느낌이다. 적대감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정치도 언론도 TV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모든 걸 경쟁이 아닌 싸움과 욕설과 헐뜯기 구도로 몰아간다. SNS는 ‘S(서로)N(남)S(씹기)’의 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 ‘나 몰라라’ 저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이들도 문제다. 대기업들이 빵·커피·물티슈 같은 중소상인의 밥그릇까지 빼앗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 대기업의 원조 격인 일본 재벌들도 이렇게 심하게 하진 않았다. 대통령이 한마디 으름장을 놓자 요 며칠 일부 대기업이 부랴부랴 꼬리를 내리긴 했다지만 국민이 원하는 건 일시적 눈치가 아니라 일관된 철학이다.



 대기업 총수의 아들·딸·사위들의 무대 등장도 대기업 세습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정서와는 큰 괴리가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호전성은 더욱 에스컬레이트된다. 모두가 “너 누구랑 싸웠니”를 그만둘 날은 언제나 올까. 이스라엘 부모의 대응이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을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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