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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의 ‘여자란 왜’] 명절·제사, 며느리의 복종 확인하는 의식인가

중앙일보 2012.01.26 04:28 주말섹션 6면 지면보기
임경선
칼럼니스트·『어떤 날 그녀들이』 저자
한 번은 트위터에 ‘제사는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신 분들은 가신 거라고요’라고 썼다가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살아계실 때 잘하자’는 취지였는데 역시나 ‘명절 설거지하기 싫어 핑계댄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정말 산더미 설거지가 하기 싫어 제사나 명절을 싫어하는 걸까? 어쩌면 고정관념부터가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제사는 어린 내게 ‘엄마의 짜증’과 동의어였다. 엄마의 짜증은 대개 시어머니의 핀잔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왜 당신이 시킨 대로 딱딱 며느리가 못 맞추느냐는 주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면 실제로 할머니가 뭐라 한 소리 안 하셔도 엄마에겐 자동적으로 예기불안이라는 편리한 장치가 작동해 그녀를 제시간에 딱 맞춰 척척 움직이게 만들었다. 폭탄이 터지기 전에 암호해제를 해낸 요원처럼 남자들이 절하고 있는 제사 상차림을 저 뒤에서 바라보며 묘하게 뿌듯하면서도 허탈해했던 그녀의 표정이 아른거린다. 마치 ‘흐흐, 사실 저건 내 작품이거든?’ 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그 엄마가 제사상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나 역시도 엄마처럼, 시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이 가장 심적으로 힘들었다. 전 굽는 팔이 아프기보다 언제 비수에 찔릴지 몰라 어깨가 긴장감으로 더 결렸다. 확 바뀐 음식, 사람들, 그리고 분위기 속에서 나 혼자만의 예기불안에 짓눌린 가운데 남편은 너무나 편하고 익숙하게 그 상황을 맞이하는 모습이 참 낯설었다. 제사는 분명 기득권자들에 대한 적응과 복종을 확인하는 의식. 그리고 그 서열 꼭대기인 시아버지의 “에미야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항상 마지막에 감미롭고 절망적인 항복을 끝내 확정짓는다. 이제 올 설도 지나갔다.



임경선 칼럼니스트·『어떤 날 그녀들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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