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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화백의 세계건축문화재 펜화 기행] 터키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박물관

중앙일보 2012.01.26 00:00 종합 27면 지면보기
종이에 먹펜, 41×58㎝, 2012


1453년 4월 6일 새벽, 오스만제국의 우르반 대포가 콘스탄티노플 성벽에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세계 최대 신형 대포로 직경 75㎝, 무게 500㎏의 돌로 만든 포알을 쏘았습니다. 명중률은 낮았지만 엄청난 파괴력과 큰 소리에 방위군을 공포에 떨게 하였답니다.

터키의 절묘한 선택
‘소피아 대성당’을
박물관으로 부르는 까닭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은 난공불락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10여 만 명 오스만제국군의 공격에 7000명에 불과한 비잔티움군의 처절한 저항은 5월 29일까지였습니다. 천년 역사를 자랑하던 동로마 제국의 수도는 침략군에 짓밟혔습니다. 겁에 질린 시민들이 도망간 곳은 탈출을 위한 해안이 아니라 소피아 대성당이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 대천사 미카엘이 적들을 쫓아낼 것”이라는 전설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간절히 기도하는 그들에게 들이닥친 것은 대천사가 아닌 침략군의 창칼이었습니다.



 대성당은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6년 공사 끝에 537년 완성한 기념비적 건축물이었습니다. 직경 31m의 중앙 돔은 높이 56m로 세계 최대 규모였고, 황금 모자이크 벽화는 화려함의 극치였습니다. 천년 동안 기독교의 자존심이었던 대성당의 벽화에 회칠이 덮이고, 첨탑이 추가되어 이슬람 모스크로 바뀐 뒤 다시 500년 세월이 흐릅니다. 1500년간 수많은 지진을 견디어낸 건물은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1923년 오스만제국이 망하고 터키공화국이 수립되자 서구 각국은 대성당의 복원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터키는 성당도 모스크도 아닌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논란을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매년 방문객 2000만 명 중 아직도 아야 소피아 성당이라 부르는 분이 더 많답니다.



김영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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