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남 부자 주문해 먹는 떡집 "주식 오를땐…"

중앙일보 2012.01.20 04:02 Week& 18면 지면보기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서울 대치동. ‘사교육 열풍’을 대표하는 강남에서도 대표적인 부촌이다. 하지만 은마아파트 상가 지하 1층에 내려가면 분식집·반찬가게·떡집 따위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강남 개발을 상징하는 동네이지만 상가 풍경은 대형 재래시장처럼 푸근하다.


33년째 대치동 은마상가 지키는 낙원떡집 김애한 사장
주식 오를 땐 시루떡 ‘대박’ … 외환위기 땐 송편으로 버텼지

설 연휴를 앞둔 이달 중순. 은마상가 지하 1층 176개 점포 중에서 가장 활기 찬 곳은 단연 떡집이었다. 뿌연 김이 가득한 떡집 안에서 털털대는 기계 소리에 맞춰 기사(떡 기술자)들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 이 상가에는 떡집이 열한 곳이나 있다. 그중에서도 낙원떡집 앞이 제일 붐볐다. 낙원떡집은 은마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1979년부터 33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마상가의 터줏대감이다. 여기 주인장 김애한(63·사진)씨를 만나 지난 세월을 들었다. 그는 떡 얘기를 했지만, 강남 개발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글=홍지연 기자



# 80년대 강남 신흥부자들이 단골



1979년 겨울. 은마아파트가 들어섰다. 4424세대의 대단지였다. 2만 명 가까운 사람이 한꺼번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다. 지금은 빌딩에 가려 안 보이는 봉은사가 보일 정도였다. 그 겨울 김애한씨도 언니 애자(71)씨와 함께 은마상가에 들어왔다. 건강 문제로 교편을 떠났던 김씨에게 언니가 떡집 동업을 제안했던 것이다.



 “장사는 처음이라 불안했지만 상가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파트 주민, 상가 상인 모두 생기가 넘쳤어요. 다들 새 동네에서 새 출발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힘을 얻어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아파트 단지가 크니 상가도 컸다. 은마상가에만 점포가 538개 들어왔다. 처음엔 떡집이 세 곳 있었는데, 그 중에서 낙원떡집과 풍년떡집 두 곳이 아직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굳이 둘 중에 좀 더 오래된 집을 꼽자면 낙원떡집이다. 풍년떡집보다는 낙원떡집 김애한 사장의 장사 경력이 더 오래됐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이 되면서 은마아파트 주변에 고층 아파트가 속속 들어섰다. 우성·미도·선경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지금의 대치역을 중심으로 신흥 상권이 형성됐다. 당시 은마상가는 지금으로 치면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지하 식품매장 같은 분위기였다. 강남 신흥부자들이 한껏 멋을 내고 은마상가까지 와서 장을 보고 갔다. 운동화 끌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성에서 돈 자랑 말고, 미도에서 직업 자랑 말고, 선경에서 학벌 자랑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깐깐한 강남 사모님’이 은마상가 단골이 되면서 떡도 덩달아 수준이 올라갔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괜찮으니까 맛있는 떡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에 맞춰 떡 재료도 최고급만 썼다. 김씨는 그때부터 경기도 이천산과 여주산 쌀만 고집하고 있다. ‘강남 부자가 주문해 먹는 떡집’이라는 소문이 강남 너머까지 퍼졌다.



1 낙원떡집 김애한 사장의 아들 김형기(31)씨가 가게 안쪽에서 가래떡을 뽑고 있다. 주문이 쏟아지는 설 대목, 주문량을 맞추려면 새벽 2시부터 떡을 만들어야 한다.




# 연예인·정치인 많이 들러 … 낱개포장 떡 등장



90년대 들어서는 시루떡이 잘나갔다. 연일 ‘주식 대박’이 터지면서 허구한 날 잔치와 축하연이 열렸다. 은마상가 떡집은 아침마다 증권사로 시루떡 배달을 나갔다. 은마상가 떡집이 낙원동 떡 상가를 추월한 것도 이맘때였다. 낙원동 떡집 기사들이 은마상가 떡집으로 견학을 오기도 했다.



 유명인사도 많이 찾아왔다. 김지미씨는 80년대 후반부터 단골이 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을동 국회의원도 자주 들렀다. 지금은 연예인이 많다. 송윤아·박경림씨 모두 김씨 가게에서 아이 돌떡을 했다. 차승원씨도 수시로 장을 보러 온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터졌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시루떡 주문은 쭉 빠졌다. 그나마 떡집은 피해가 덜했다. 명절 송편과 떡국, 아이 백일떡·돌떡, 결혼할 때 이바지떡 등등…. 경기가 나빠졌다고 해도 사람들은 꾸준히 떡을 찾았다.



 2002년 가을 대치동 옆 도곡동에 타워팰리스가 들어섰다. 타워팰리스 입주가 시작되자 인근 지역 아파트 시세가 크게 출렁였다. 79년 입주 당시 은마아파트 101㎡(31평)형은 2139만원이었다. 89년 1억원을 넘긴 뒤 십 년간 1억원대를 유지하던 가격이 2006년 10억원을 돌파했다. 그때 은마상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파트 입주 시점부터 장사를 했던 가게들이 우르르 점포를 팔고 나갔다. 대신 떡집이 늘어났다. 은마상가 떡집 이름이 알려진 데다,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창업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대여섯 개 정도였던 은마상가 떡집은 2005년 12개가 됐다.



 낱개로 포장된 떡이 등장한 것도 이맘때였다. 젊은 사람들이 간편한 식사대용으로 한두 개씩 떡을 사가던 게 이제는 유행이 됐다. 떡도 혼자 먹는 시대가 시작됐다.



2 낙원떡집 건너편에 있는 ‘영광상회’ 배요셉(71) 사장이 가게 천장에 매달아 말리던 영광굴비를 들어 보였다. 강남의 대표 부촌, 대치동 은마상가 지하에서 여느 재래시장과 비슷한 분위기로 설을 준비하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3 ‘깐깐한 강남 사모님’이 인정한 은마상가 낙원떡집의 이바지떡. 강남지역뿐 아니라 부산·울산·대전 등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온다.




# 전국 곳곳서 주문 … 일본인 단체 관광코스



요즘 낙원떡집의 주력 상품은 이바지 떡이다. 부산·울산·인천·대전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주문이 온다. 고급 떡을 생산한다는 이미지 덕분이다. 서너 해 전부터는 일본인 단체 관광객도 은마상가에 들어와 관광을 하고 간다.



 그래도 수입은 예전 같지 않다. 떡 소비 자체가 크게 줄어 지금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대목 때만 반짝 바쁠 뿐이다. 명절을 낀 1주일 동안엔 평균보다 열 배는 거뜬히 판다. 김씨도 설 대목을 앞두고 1주일 전부터 새벽 2시에 출근한다.



 “저기 흰 코트 입은 여자 손님 보이죠? 중소기업 사장님이신데, 아주 오랜 단골이에요. 명절 전이나 행사가 있으면 꼭 10말(88㎏)씩 떡을 했었는데 요즘엔 절반으로 줄였더라고요.”



 요즘 은마아파트 주민은 은마상가를 잘 찾지 않는다. 그들은 은마상가로 오지 않고 가락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대신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으로 이사를 간 옛 단골이 잊지 않고 찾아온다. 김씨는 “엄마 손 잡고 떡 사러 오던 여자아이가 얼마 전 시집가 자기 아이 돌떡을 맞추러 와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논밭 사이에 아파트 하나 달랑 있을 때부터 여기서 떡 빚으며 살았어요. 제 삶의 절반 이상을 이 6평 남짓한 떡집에서 산 셈이죠. 뭐가 달라졌느냐고요? 글쎄요. 다 똑같지 않나요?”



 33년이 흘렀다. 잘나가는 떡의 종류가 달라졌다. 아파트 시세가 달라졌고, 동네 사람도 바뀌었다. 그래도 명절 앞둔 떡집의 넉넉하고 흐뭇한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