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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못하고 … 대한민국 국회 압수수색 당하다

중앙일보 2012.01.20 00:00 종합 4면 지면보기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19일 국회 본관에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 부속실과 비서관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 수 사관이 압수수색한 물품을 담은 박스를 들고 국회의장실을 떠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국회의장실이 19일 아침 검찰 수사관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 사상 초유의 현직 국회의장실 압수수색이었다. 수색 공간은 의장 비서실로 한정됐지만, 근원이 박희태 의장이라는 점에서 국회의장실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이나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박 의장이 드나드는 집무실 바로 문 앞에서 근무하는 측근의 책상까지 수색했다. 압수수색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맡았다.

‘돈봉투’ 수사팀 20분 전 알려
한나라도 반발 목소리 못 내
박희태 사퇴 결의안 카드 고민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의 집무공간이 사법당국의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이날 국회에선 누구도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여야 원내대표는 민주통합당이 제출한 ‘국회의장 사퇴촉구 결의안’을 놓고 고민 중이었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추락할 대로 추락한 대한민국 입법부의 위상이 그대로 드러난 날이었다.



 압수수색은 오전 8시20분부터 이뤄졌다. 검찰 관계자들은 국회 본관 3층으로 들어서자마자 3~4명씩 두 개조로 나눠 각각 304호와 327호로 들어갔다. 304호는 비서실로 이봉건 정무수석과 함은미 보좌관의 자리가 있다. 327호는 조정만 정책수석실이다. 세 사람은 2008년 전당대회 당시 캠프 핵심 실무자였다. 수색은 철저한 통제 속에서 3시간40분 동안 이뤄졌다. 의장실 관계자는 “검사가 직접 지휘하면서 컴퓨터와 서류 등을 뒤적였다”며 “의장실에선 USB와 CD, 문서 10여 장을 가지고 나갔다”고 밝혔다. 검찰은 오전 8시쯤에야 윤원중 사무총장에게 압수수색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박 의장은 이날 출근하지 않았다.



 검찰은 박 의장의 당선을 위해 돈봉투를 배달했거나 살포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박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40)씨와 안병용(54·구속기소) 한나라당 은평갑 당협위원장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함에 따라 물증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정점식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박 의장이 해외순방에 나선 상황에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예우에 맞지 않다고 판단해 귀국 이후로 시점을 늦췄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이 마무리되는 대로 조 비서관 등을 소환할 방침이다.



 박희태 의장의 거취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미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한 만큼 황우여 원내대표의 대응이 주목된다. 황 원내대표는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 마냥 기다리기에도 난처한 입장이다. 그래서 황 원내대표가 박 의장 측과 물밑 조율에 나섰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 의장이 계속 자발적 사퇴를 거부할 경우엔 한나라당이 ‘사퇴촉구 결의안’에 공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신용호·박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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