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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23) 김우중과 나 <7> “다 내놓겠습니다”

중앙일보 2012.01.20 00:00 종합 10면 지면보기
1999년 3월 11일 서울 롯데호텔의 전국경제인연합 회장단 취임 인사회. 김우중 대우 회장(가운데)이 김종필 국무총리(오른쪽 둘째)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때 그는 예감했을까. 넉 달 뒤인 7월 19일 “사재를 내놓고 구조조정하겠다”고 발표하게 되리란 걸. 왼쪽부터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이건희 삼성 회장, 맨 오른쪽은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중앙포토]


1999년 7월 16일. 서울 남산 힐튼호텔 펜트하우스 김우중 회장 집무실. 김태구 대우자동차 사장과 장병주 ㈜대우 사장이 무거운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나는 김상훈 금융감독원 부원장, 서근우 제3 심의관과 함께였다. 김 회장이 우리 셋을 번갈아 쳐다본다. 침통한 표정. 그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시장은 늘 꼴찌부터 삼켜 … 김우중은 그걸 외면했다



 “이 위원장. 우리끼리 얘기합시다.”



 김태구·장병주가 바로 집무실을 나갔다. 나는 김상훈·서근우를 쳐다봤다. 모두 나가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와 단둘이 마주한 것은 오랜만이다. 공직에 복귀한 이후 그를 만날 때는 항상 서근우를 대동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다. 1분이나 지났을까. 그가 토해내듯 말했다.



 “그래,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이대로 해 주십시오. 이것만 지키시면 자동차 부문은 회장님께서 맡아 정상화시킬 수 있으실 겁니다. 회장님이 아니면 살릴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나는 그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7개항의 구조조정안이 적혀 있었다. ▶자동차 사업부를 그룹의 중심으로 남기고 ▶조선·상용차·힐튼호텔 등 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며 ▶김 회장 소유의 주식 일부를 팔아 자동차 사업에 투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금감위와 대우, 양측 실무선에선 이미 검토가 끝난 상황. 김 회장은 하나 하나 소리 내어 읽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평생을 일군 기업과 재산을 팔겠다고 자기 입으로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았소. 다 지키지요. 나도 부탁이 있소. 반년 사이에 자금이 6조원이나 빠져 나갔어요. 급한 대로 자금 좀 돌립시다. 그리고 기업어음(CP) 좀 돌아가게 해주시오. 내 주식이든 계열사 주식이든 다 담보로 내놓으리다.”



 그가 사재 출연 리스트를 건넸다. 일일이 그가 매긴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모두 18조원어치였다.



 “시장 가치가 이렇지 않습니다, 회장님. 담보는 10조원도 못 될 겁니다. 그래도 힘써보겠습니다.”



 김 회장은 이날 합의한 내용을 19일 발표했다. 대우로선 일종의 극약 처방이었다. “침몰을 막기 위해 던질 수 있는 건 다 던진다”는 선장의 심정, 그랬을 것이다. 나도 “대우가 큰 결단을 내렸다”고 맞장구쳤다. 일종의 지원사격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시장은 냉랭했다. 환영은커녕 되레 ‘대우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불안감이 시장을 덮쳤다. 나흘 뒤인 23일, 주가는 71포인트 떨어졌다. 당시 낙폭으론 사상 최대였다. 김 회장이 내놓은 사재를 담보로 대우가 지원받은 돈은 4조원이었다.



 결국 서근우 말이 맞았다. 그는 회의적이었다. “이미 늦었다”며 “다음 수순을 준비하자”고 말했다. 이미 금감위는 최악의 사태를 내다보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외면하고 싶었던 결론으로 대우는 한 걸음에 치닫고 만다.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



 대우는 왜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연착륙)하지 못했을까. 대우의 채권 구조가 복잡했던 게 큰 이유다. 대우는 채권자를 접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채무의 70%가량이 수익증권 등을 통해 수십, 수백만 명의 일반 투자자들에게 전가돼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수는 심지어 해외 채무였다. 게다가 계열사 간 채권·채무도 얽히고 설켜 있었다. 서근우가 “너무 복잡해 워크아웃이 힘들 수도 있다”고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98년 11월 청와대 대우 보고서도 같은 톤이었다. 같은 달 29일 DJ와 김우중 회장의 면담을 앞두고 강봉균 경제수석실이 만든 보고서였다. 대우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이자를 갚느라 번 돈을 다 쏟아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보고서를 보지 않았다. “구해 오지도 말라”고 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 데다 자칫 내가 보고서를 읽었다는 소문이 나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어서다. “금감위가 곧 손을 쓰나 보다”는 섣부른 예단으로 시장이 출렁일 수도 있다.



 대우가 해체된 건 시간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다. 99년 7월까지 대우는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다. 자산 매각이든 외자 유치든 5대 그룹 중 꼴찌였다. 98년 5월 제출한 그룹별 구조조정 계획. 삼성·현대는 목표치의 100% 넘게, SK·LG는 90% 넘게 자구 노력을 달성했지만 대우는 고작 18.5%였다. 시장은 늘 꼴찌부터 삼킨다.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다. 대우는 그런 시장의 법칙을 외면했다. 7월 19일에야 김우중 회장이 “모든 것을 던지겠다”고 나섰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열흘 뒤인 28일, 김 회장은 영국으로 떠났다. 자포자기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음독 시도’ 루머가 들려왔다.



등장인물



▶강봉균(69)




옛 경제기획원 출신의 정통 관료. 97년 정보통신부 장관을 거쳐 98년 DJ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을 잇따라 맡는다.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뒤 정계에 입문한다.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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