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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1호는 남자1호를…" 짝 찾는 '밤의 여왕'

중앙일보 2012.01.20 00: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성우 김세원은 한국 라디오 방송의 살아있는 역사다. 한때 ‘밤의 여왕’으로 불렸던 그는 “50년 가까이 녹음을 해왔지만 원고를 처음 만나는 순간은 늘 새롭고 긴장된다”고 했다. [김효은 기자]
여자 1호는 짝을 찾고 싶다. 남자 1호를 만나 사랑을 하고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분신을 찾고 있다. 여자 1호의 짝은 ‘방송’이다. 마이크 앞에서 반세기를 보낸 성우 김세원(67)은 “방송에 목숨을 걸었다”고 했다. 어른들에겐 음악방송 ‘밤의 플랫폼’으로, 젊은이들에겐 SBS ‘짝’의 내레이터로 익숙한 그 목소리. 1세대 성우로 현역을 지키고 있지만 “아직 목이 마르다”는 여자 1호, 김세원이다.


마이스터를 만나다 ③ SBS ‘짝’ 내레이션 성우 김세원

“이들은 모두 첫 키스의 경험이 없다.”



 10일 서울 목동 SBS 스튜디오. ‘짝’의 모태솔로 특집편을 녹음하는 김세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어머, 첫 번째 문장부터 과감하네.” 내년이면 방송 데뷔 50년이지만 갓 탈고를 마친 원고를 보면 흥분된다. 싱글 남녀가 1주일간 애정촌에 살면서 짝찾기에 열중하는 이 프로그램은 진행자가 없다. 시청자들은 김세원의 내레이션을 통해 참가자들의 속마음을 읽고, 복잡하게 얽힌 사랑의 화살표를 이해한다. 출연자를 1호, 2호로 지칭하는 김세원의 내레이션이 화제다.



 -곳곳에서 패러디가 되고 있다.



 “‘짝’ 덕분에 요새 바빠졌다. 같은 포맷의 내레이션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4~5곳에서 받았다. 대부분 거절했는데, MBC 무한도전 ‘짝꿍’편은 ‘짝’을 패러디한 것이라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목소리를 입힌 적은 생전 처음이었다. 남편과 낄낄거리면서 봤다. 광고 제의도 많이 받았다.”



싱글 남녀의 짝 찾기인 SBS ?짝?의 한 장면.
 -‘짝’은 예능과 교양의 경계선에 있다.



 “다큐멘터리보다 한 톤 높여서 녹음한다. 젊은 사람들의 감각에 맞추려고 스피드도 신경 쓴다. 끝음을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진다. 출연자들의 심리를 집어내야 하고, 제 3자 관점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진이 빠질 정도로 힘든 작업이다.”



 -사랑에 상처받은 출연자들을 엄마처럼 위로해주는 느낌이다.



 “출연자들이 다 자식 또래다. 착실하고 괜찮은 사람인데 외모 때문에 외면 받는 걸 보면 안타깝다.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관을 엿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다. 출연자들과 비교하면 나는 너무 쉽게 결혼해 준 것 같다.”(웃음)



 ‘짝’은 김세원이 8년 만에 맡은 고정프로그램. 2003년 EBS 이사장을 맡으면서 공백이 있었다. 2010년, ‘짝’의 남규홍 PD는 6개월 전 기획단계에서 김세원을 ‘찜’했다. 남 PD는 “간결하면서도 지적인 느낌이 있는 김 선생님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자칫 오락으로 치우칠 수 있는데 무게중심을 잡아주신다”고 했다.



 김씨는 1964년 TBC(동양방송)의 전신인 RSB(서울라디오방송) 성우 1기로 입사했다. 70년대 라디오 ‘밤의 플랫폼’을 진행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품격 있는 목소리로 ‘밤의 여왕’이란 애칭도 얻었다. 이후 ‘김세원의 영화음악실’ ‘당신의 밤과 음악’ ‘김세원의 가정음악실’ 등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라디오 DJ 시절에 인기가 대단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하면 기사님이 놀라서 뒤돌아볼 정도였다.”



 -한결 같은 목소리를 유지하는 비결이라면.



 “피로는 금물이다.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목소리는 타고난 것보다 노력이 더 중요하다. 모든 것은 ‘연기’다. 톤, 빠르기, 감정에 따라 다른 색깔을 낼 수 있다. 목소리도 늙는다. 느려지고 청량감도 떨어진다. 이를 벌충하려면 대본 분석에 집중해야 한다.”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내레이션을 했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방송은 내 인생의 엑기스이자 내 존재의 증명사진이다. 매일 새롭다. 몸이 허락하는 한 은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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