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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부자 VS 강북 부자

중앙일보 2012.01.17 05:10 Week& 1면 지면보기
#최근 강남 고액 자산가들을 상대로 한 사모펀드 투자설명회에 참석한 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설명회 내내 진땀을 흘렸다. 주식시장뿐 아니라 장외시장·채권·원자재에 대한 송곳 같은 질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재테크 지식은 웬만한 전문가를 뺨칠 정도였다. 일부는 종목 선정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요구하기도 했다.


‘뚝심형’ 강북 부자 - 상속·증여 관심 많은 수퍼리치
예금·채권 등 안정·장기 투자 선호
‘스마트형’ 강남 부자 - 금융 지식 해박한 40~50대 전문직
위험 감수, 역발상·공격적 투자 즐겨

 #강북의 한 증권사 PB(프라이빗 뱅커) 센터에 평범한 옷차림의 50대 여성이 들어왔다. 머리 모양이나 구두·가방에서는 좀처럼 부자 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선뜻 10억원을 맡길 테니 PB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단 그는 ‘10년 이상 PB로 근무한 사람으로, 여자는 안 되며, 학력은 SKY 이상으로, 특정 지역 출신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한 증권사 PB가 소개한 강남 부자와 강북 부자의 차이점이다. 강남 부자는 워낙 금융을 잘 알다 보니 PB를 가르치려 들고, 강북 부자는 자기만의 기준이 까다로워 PB의 말발이 잘 먹히질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 부자의 라이프 스타일 등을 연구한 중앙대 이혜주 교수(의류학과)는 “강남 부자와 강북 부자를 가르는 명쾌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 성향 등에서는 지역별로 특징이 있다”며 “강남 부자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스마트형’이라면 강북 부자는 나름의 투자철학과 고집을 지키면서 ‘뚝심형’ 투자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종은·이혜주 교수가 최근 부자학연구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한국의 강남과 강북의 부유층 현황에 관한 사례 연구’ 논문에 따르면 강남 부자와 강북 부자는 미묘한 차이가 난다. 강남에는 상대적으로 주부층이 많고, 자기관리가 철저하며 문화적 소양이 높다. 자산운용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띤다. 반면 강북은 보수적 성향이 짙고,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자산 증식보다는 부의 안정적 유지에 더 관심을 쏟는다.



 그렇다보니 실제 투자 성향도 간극이 있다. 주요 은행·증권사 PB들에 따르면 강북 부자들은 대체로 최종 투자를 결정하기 전까지 매우 신중하다. PB의 조언과 자신의 투자경험을 종합해 결론을 낸다. 원금 손실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예금이나 채권 같은 상품에 대한 투자 비중이 높으며, 주식은 장기투자를 원칙으로 한다. 동양종금증권 W프레스티지 우선진 강북센터장은 “1980~90년대 매입한 삼성전자·LG·SK텔레콤 주식을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는 고객도 있다” 고 말했다.



 강남은 40~50대 젊은 부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해외 유학을 다녀왔거나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이 주요 고객이다. 이들은 자산을 불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한다. 다른 투자자의 뒤를 쫓는 것이 아니라 역발상 투자를 즐기곤 한다.



 국민은행 여의도영업부 김재욱 VIP팀장은 “강남 부자는 2004~2005년 해외펀드 붐이 일기 전에 이미 투자에 나설 정도로 시장의 흐름을 앞서는 경향이 있다” 고 설명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강남·북 부자들의 이런 성향은 더욱 도드라지게 됐다는 게 PB들의 설명이다. 증시가 급락하면 ‘위기는 기회’라는 판단에 따라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강남 부자는 공격적으로 변했다. 반면 강북 부자는 리스크 관리에 더 비중을 두면서 ‘금리+α’의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수백억대의 자산을 굴리는 수퍼리치들이 강북에 더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서울여대 경영학과 한동철 교수(부자학 연구학회 회장)는 “10억원대 부자는 100억원대 부자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돈을 굴리지만, 100억원대 부자는 지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이런 수백억원대 부자들은 아직 강북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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