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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나마나 ‘학폭위’부터 제대로 하자

중앙일보 2012.01.17 03:00 종합 8면 지면보기
초등 6학년 영민(가명)이는 지난해 11월 말 같은 반 급우 3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의 어머니는 학교마다 폭력을 전담하는 위원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교장에게 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그러자 “위원회가 열리면 매일 교육청에 보고를 해야 하고, 여러 가지로 복잡해진다”며 교장은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영민이 가족은 가해학생 가족으로부터 사과도 받아내지 못했다. 영민이의 어머니는 본지에 보내온 e-메일에서 “학교폭력 피해자를 학교가 보호해주지 않는 현실에 가슴이 찢어지는 또 다른 아픔을 겪었다”고 말했다.


멈춰! 학교폭력 ⑪ 학교 스스로 해결 길 있다



 학교마다 폭력을 전담하도록 설치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학교 측이 학폭위 개최를 꺼린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본지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분기별로 정례화하자”고 제안한다. 올 3월부터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의 폭력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게 했으나 학폭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학생부 기재’는 무용지물이 된다.



 학교폭력 관련 법률에 따르면 학폭위는 ▶폭력 예방 ▶피해학생 보호▶가해학생 선도 및 징계 ▶가해·피해 학생 간 분쟁 조정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학교 이미지가 실추된다’며 학폭위 개최를 꺼린다. 일선 교사들은 “교육청들이 학폭위 개최 건수를 교장 평가에 부정적으로 반영하는 것도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한다. 법의 취지와 정반대로 운용되는 것이다.



 학폭위의 구성에도 문제점이 많다. 학폭위는 교장을 제외하고 교감·학부모·변호사·의사 등 모두 5~10명으로 구성된다. 보통 교감이 위원장을 맡는다. 지난해 11월 법이 바뀌어 학부모가 과반수 참여하게 돼 있다. 전문가들이 회의에 불참해 회의 자체가 열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다. 이렇다 보니 학폭위가 교장의 영향력하에 놓이게 된다.



전문성이 없는 학부모들 때문에 피해학생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심각하다. 최희영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위기지원팀장은 “심각한 폭행을 당해 등교를 꺼리는 피해학생에게 학부모 위원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나도 어릴 때 이런 일을 겪어봤다. 그런데 혹시 네가 원인을 제공한 건 없니’라는 엉뚱한 말로 상처를 주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폭위가 열려도 가해학생에 대해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지난해 학폭위를 거친 가해 중학생 중 56%가 ‘봉사활동’ 처분을 받았다. 피해자 접촉 금지는 4%, 학급 교체는 1%에 지나지 않았다.



 한국에 비해 미국은 학폭위 운영을 엄격하게 한다. 심각하지 않은 싸움에 대해서도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2주의 정학 조치를 내리게 한다. 심한 싸움엔 퇴학이나 강제 전학 징계를 내린다.



성시윤·이한길 기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임의단체 성격의 선도위원회와 달리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둔 법적 기구다. 2004년 도입됐으며 교감·학부모·전문가 등 5~10명으로 구성된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위원회를 개최하고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에게 각각 필요한 조치를 결정해 교육청에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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