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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전화 한 통이 날 살렸다

중앙일보 2012.01.17 03:00 종합 8면 지면보기
안현수씨가 16일 창원시 집에서 10년 후 계획표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송봉근 기자]
17일은 대학생 안현수(20)씨에게 특별한 날이다. 스무 번째 맞는 생일이기도 하지만 1년 전만 해도 이날은 자기 삶의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했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고2 때부터 안 씨는 스무 살까지만 세상을 살겠다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계속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 “가족과 친구, 선후배들, 나도 누군가에겐 큰 의미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죠.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합니다.”


한때 자살 꿈꿨던 안현수씨

 2008년 5월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할 때 ‘스파이’로 몰려 시작된 왕따. 반의 껄렁한 친구들은 다음 날부터 그를 교실 구석으로 몰아넣고 구타했다. 견디다 못한 그는 상담교사를 찾아 도움을 구했지만 상황은 악화됐다. 교실에 찾아온 교사가 “이 반에는 왕따 없느냐”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후 안씨는 누구와도 말을 섞을 수 없는 외톨이가 됐다. “괴롭힘보다 힘들었던 것은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는 외로움이었습니다.”



 절친했던 친구들조차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학생들이 두려워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해 여름 안씨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뛰어내리기 직전 걸려온 친구의 전화가 그를 살렸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11월 안씨를 스파이로 몰았던 친구의 거짓말이 밝혀지면서 괴롭힘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에겐 아물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



 대학에 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인기피증으로 낯선 이들과는 말도 못 했다. 2010년 가을 군대에 갔지만 입영 일주일 만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돌아와서는 삶의 목표도 없이 밤낮 게임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우연히 게임을 통해 알게 된 형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게 됐다. 30~40대의 인생 선배였던 그들은 안씨의 얘기를 차분히 들어줬다. 새벽 늦게까지 전화기로 고민을 들어줬고 안씨를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이들도 있었다. 그는 “세상의 작은 부분만 보고 자살을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안씨는 스스로를 바꾸기로 했다. 폐쇄적이었던 성격을 개선하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선 이들과 얘기하는 것이 어색했다. 한 번은 SNS를 통해 알게 된 친구의 동생이 동급생들에게 괴롭힘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해법을 제시해줬다. 친구가 그 학교의 선배 일진을 찾아가 동생을 괴롭히는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도록 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씨는 어느새 남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누구나 아픈 기억 하나쯤은 안고 살더군요.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제 삶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달 안씨는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세워 창원시 청안동 자신의 방 책상 위에 써붙여 놨다. 매일같이 ‘24살 CPA 합격, 27살 미국 유학, 30살 MBA 취득’이라는 말을 되뇌고 있다. 본지에 소개된 진진연씨의 기사(2011년 12월 30일자 1면)도 그에게 힘이 됐다. 안씨는 “기사를 보고 ‘나는 내가 좋다’는 생각을 마음속 깊이 각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씨의 서랍 속엔 뜯지 않은 편지가 있다. 힘들 때 보기 위해 자신에게 쓴 편지다. “이 편지를 보고 있는 순간이면 또 아주 힘들 때인가 봐. 그런데 하나만 기억하자. ‘이 또한 지나가리라(유대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 ‘다윗왕의 반지’편에 나온 말)’ 넌 잘할 수 있어! 지금은 힘들어도 결국엔 너를 더욱 자라게 해주는 약이 될 거야. 힘내자 현수야 파이팅!”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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