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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이 걸레빤 물을…" 10대 열광 '인소'

중앙일보 2012.01.17 00:00 종합 18면 지면보기
포털사이트의 인터넷 소설 공유 카페에는 학생들이 쓴 소설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오른쪽). 학생들은 스마트폰이나 전자사전에 인터넷 소설을 옮겨 담아 가지고 다니며 24시간 어디서나 소설을 읽는다. [김도훈 기자]


요즘 10대들 사이에선 ‘인터넷소설’이 대세다. 10대가 직접 써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학교문화가 담겼기 때문이다.

『일진, 왕따 앞에 무릎 꿇다』 … ‘인소’로 위안 받는 아이들
왕따 당하다가 지위 회복
10대들 판타지적 쾌감 즐겨
욕설·성희롱·가혹행위 가득
한 반 32명 중 28명 “읽어 봤다”



 2000년대 초반의 1세대 인터넷소설은 ‘귀여니(본명 이윤세)’의 『그놈은 멋있었다』 등 청춘 로맨스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올라오는 2세대 ‘인소(인터넷소설의 줄임말)’는 왕따·일진 등으로 소재가 바뀌었다.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 등 지금의 사회현상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특종! 일진이 왕따 앞에 무릎 꿇다』 『세계서열 0위 전따생활 시작』 등 20여 개의 인터넷소설을 읽어 보면 하나의 전형적인 줄거리가 나타난다. 서열이 높은 일진인 주인공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학을 가 왕따를 당하다 얼짱 동료를 만나 지위를 회복한다는 식이다. 일종의 판타지처럼 보이지만 일진·왕따·얼짱·자살 등 최근의 학교문화를 관통하는 코드가 내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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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가 서울 송파구의 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왕따 등을 주제로 한 인터넷소설을 읽어 봤느냐’고 물은 결과 32명 중 28명이 ‘읽어 봤다’고 대답했다. ‘스마트폰 등에 저장해 갖고 다니며 수시로 읽는다’고 답한 학생도 6명이었다. 특히 4명은 ‘공금(공유 금지) 소설’ 카페에 가입해 회원만 볼 수 있는 인터넷소설을 즐겨 읽는다고 말했다. ‘공금 소설’ 카페 회원이라는 김모(14)양은 “소설의 배경이 학교이고 우리가 쓰는 말로 우리 생각을 담아내 재미있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등으로 점철된 현실과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는 판타지적 쾌감이 인터넷소설의 인기 비결이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재미와 공격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때문에 인기를 얻는 것”이라며 “일진이 왕따를 당하는 데서 대리만족을 느끼면서도 일진이 권력을 회복하면 동경하는 심리가 동시에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소에 자주 등장하는 욕설과 과도한 표현 등은 문제다. 따돌림을 당하는 여학생이 걸레 빨던 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입술과 잇몸이 찢어져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는 섬뜩한 표현도 많다. 성추행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같은 반 학생들이 좋아했다는 대목도 있다.



 교사·학부모 등 기성세대는 학생들 사이에 파다한 인터넷소설에 대해 잘 모른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김모(29)씨는 “인터넷소설이란 게 있다는 건 알았지만 왕따 등을 소재로 한 것인 줄은 몰랐다”며 “반 아이 대다수가 왕따·일진 얘기에 빠져 있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설을 매개로 또래친구들과 문화를 공유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폭력과 부정적인 사회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교사와 학부모의 일정한 계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기대 김대유(교직학) 교수는 “학생들이 소설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한다고 해도 인소는 욕설·성희롱·가학행위 등으로 가득하다”며 “학생들이 자꾸 인터넷소설을 읽으면서 둔감해지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나 예술처럼 학생들이 몰입할 수 있는 대안 활동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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